이자상씨가 아가를 데리고 나간 자유 시간에, 시간에 대해 쓰다
이발랄씨에게는 2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자상씨가 이발랄씨를 집에 두고, 잠시 아가와 근처에 있는 시댁에서 보내기로 한 시간은, 원래는 3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발랄씨는 이자상씨가 이유식 먹은 그릇과 분유 먹은 젖병을 설거지하고 가기를 원했고, 이자상씨는 흔쾌히 승낙했다. 젖병솔까지 써서 꼼꼼히 설거지를 마친 뒤(-20분), 이발랄씨와 이자상씨는 간단한 짐을 챙기고 (기저귀, 쪽쪽이, 치발기, 손수건, 천 기저귀) 아가 옷을 입히고 (마스크, 모자, 잠바, 양말) 새로 당근한 유모차에 아가를 태우려다가 시간이 많이 걸려서 포기하고 힙시트에 안은 채, 이자상씨는 아가와 엘리베이터에 탔다.(-10분)
마침내, 이발랄씨는 한입 베어먹은 파이 모양을 한 자유 시간을 얻었다. 제일 먼저, 아가가 저녁에 먹을 이유식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냉동 한우 소고기의 핏물을 빼는데,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핏물을 빼는 동안 아가가 먹을 보리차를 끓이는 것이다. 그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천재네) 지금 분유 포트엔 물이 얼마 안 남았고, 보리차는 다 떨어졌다. 그래서 핏물을 빼는 시간 동안 보리차를 끓여놓고 식히면 아가가 돌아올 때쯤엔 마실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 이발랄씨는 이유식에 넣을 양파와 무를 손질하고, 냉동한 표고버섯 큐브를 하나 꺼내 밖에 두었다. (-30분) 그러고 나자, 2시간이 남아있게 된 것이다.
20대 중반에 취직도 안되고, 졸업유예를 걸어놨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하루가 참 길었다. 연애를 하고 남자 친구와 매일같이 데이트를 해도 시간이 남아돌 만큼 말도 못 하게 길었고, 이렇게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루했다. 이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은데, 나한테만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육아휴직 중인 지금은 시간이 너무 없다! 육아가 끝난 밤에 자유시간이라도 가질라치면 잠잘 시간과 체력 한 조각을 내어놓아야 한다. 그래서 모처럼 이런 대낮의 자유 시간이 생기면, 마치 케이크 시트를 쌓듯 한 겹 한 겹 레이어를 쌓는다. 이유식을 만들면서, 보리차를 끓이고, 이발랄씨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브런치에 글을 쓴다. 이중에서도 이발랄씨에게는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20대 중반에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이발랄씨가 서른아홉이 되어서 알게 된 것은 글을 쓰지 않으면 뭔가 머리가 아프고, 생각의 앙금?이 정리가 안되어서 머리에 뭔가 '덩어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덩어리가 생기면,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어차피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인데 착한 이자상씨를 원망하게 되고, 인생에 대한 다크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 덩어리가 생기기 전에, 글을 주기적으로 쓰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다. 쓰고 보니 어린 왕자가 화산 청소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린 왕자가 살던 별에는 두 개의 화산이 있다. 주기적으로 화산을 청소를 해주면 아침밥을 데울 때 쓰기 좋지만, 안 그러면 폭발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문득 어린 왕자 책을 사서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쓰면서 자꾸 시계를 본다. 마치 굉장히 맛있는 타르트를 먹으면서, 타르트가 줄어드는 것을 바라보는 초조한 기분이다. 때마침 지금 이발랄씨가 듣고 있는 음악도, 선우정아의 타이밍이다. 이유식은 보글보글 잘 끓고 있다. 미처 빠지지 않은 핏물을 걷어주고 부엌 식탁으로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빛이 푸르스름한 회색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오늘 하루가 이렇게 가는 것이 아쉽다.
하늘에 손톱 같은 달이 떠오를 시간에, 이발랄씨는 문득 오늘 본 아가의 엄지손톱에 대해서 떠올린다. 아가의 엄지손톱은 이제 많이 커졌다. 아가의 손은 아직도 여전히 단풍잎처럼 작지만 그래도 조금씩 자라 간다. 이발랄씨가 고군분투하며 하루를 살아내는 동안, 아가가 여물어간다. 이발랄씨의 시어머니는 아가를 볼 때마다 잘 '여물었다'는 말을 쓴다. 이발랄씨는 여문다는 말을 땅에서 자란 열매 말고, 사람에게 쓴 적이 없다. 잘 여물었다는 말이, 이발랄씨는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혼자 글을 쓰며, 덩어리가 빠져나가자 문득 이발랄씨는 머리로 알던 것을 마음으로 깨닫는다. 여물게 한 것은 이발랄씨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걸. 그리고 이발랄씨는 아가가 여무는 것을 보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는 걸.
소고기 이유식을 맛을 보고, 약간 비린맛이 나는 것 같아 양파 두 조각을 더 넣은 뒤 다시 자리에 돌아온다. 하늘은 더욱 짙푸른 색으로 변해있고, 이발랄씨는 또 시계를 본다. 이제 1시간 30분 남았다. 지금 이발랄씨가 만들고 있는 이유식은 소고기 무 표고버섯 양파의 조합이다. 덩치가 큰 무가 뭉그러질 때까지 시간을 들여서 익힐 것이다. 그러면 소고기와 무에서 단맛이 우러날 테고 간을 하지 않아도 맛이 있는 이유식이 만들어지겠지.
여기까지 쓰고 보니 생각해보니 아가가 여무는 시간 동안, 이발랄씨의 마음도 여물어갔다. 사회적 자아로 서른 아홉 해를 살다가, 너무 늦은 나이에 너무 어렵게 엄마가 되었다. 사실 엄마라는 자리가 어색하고 어려우면서도, 그렇다고 내색하지는 못했다. (엄마가 어렵다는 글은 맘카페에 새벽에 올리는 글 말고 실제로 얘기를 꺼내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원래 그런 걸까) 누워있던 아가가 뒤집고, 이발랄씨를 보고 웃고, 엄마라고 말하는 시간 동안 이발랄씨도 엄마로 여물고 있었다. 아가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무겁고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던 연약했던 마음이 더 단단해지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온기와 빛깔로 변해갔다. 이건 이발랄씨만의 소중한 발견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없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이제 한 시간이 남았다. 하늘은 이제 검게 변해 버렸지만 2시간 전보다 마음은 훨씬 덜 초조하다. '덩어리'가 드디어 없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