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 39절~41절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심란한 일이 있을 때는 말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요즘 붙잡으려고 하는 말씀이 땅에 속한 형체에 대한 말씀이다. 요즘 진리가 흔들리고 있는 세상이다 보니, 사람과 동물 사이의 질서도 흔들리고 있지만, 사실상 성경에서는 사람과 동물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사람은 동물보다 우월하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서 강아지나 고양이가 사람의 자식이 될 수는 없다.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동물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은 다스리라고 하신다. 이것도 창세기와 잠언에서 몇 번 나오는 말씀이다. 사람은 동물보다 귀하지만, 동물을 사랑으로 다스리고 돌보라는 것이다.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면서, 이들을 사랑하되 질서를 생각하려고 애썼다. 난 이들의 엄마가 아니고, 이들을 돌보는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지금은 땅에 속해 있지만, 언젠가는 하늘에 속할 존재이고, 고양이들은 땅에 속한 형체이다. 고양이들은 영이 없기에, 우리는 죽어서 천국에서 만날 수는 없다. 사실 그래서, 더 사랑했다. 나중에 죽고 나서 보지 못하는구나, 슬펐다. 그러니 지금 더 사랑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가의 아토피는 점점 심해졌다. 고양이 알레르기를 숨긴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가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아기가 피가 철철 날 정도로 긁고 있는 모습을 보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날 이후로 많은 것이 또 변해버렸다.
고양이들은 어제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고양이들이 살던 방을 지날 때마다, 고양이들이 아직도 있는 것 같다. 날 봐달라고 하는 것 같다. 방 안에 슬픔이 가득 고여있다.
한동안 무척 죄책감에 시달렸었다. 고양이를 키우던 사람이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의 죄책감, 기독교인으로서 한낱 짐승을 너무 사랑한 것 같은 죄책감, 엄마가 되어서 아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 사이에서 너무 힘들어서 목사님께 기도 부탁을 드렸었다. 그러면서도 죄책감이 또 들었다. 지금 아픈 성도님들도 많은데, 고작 고양이 때문에 기도 부탁을 드리다니...
그런데 목사님이 그런 얘기를 하셨다.
"아닙니다. 지금껏 함께 지내온 고양이들이 짐승이 아닌 가족처럼 함께 했었는데요. 가족과 떨어진다는 건 너무나 힘들고 가슴 아픈 겁니다."
그 얘기를 듣자, 매서운 죄책감 밑에 있는 더 크고 깊은 감정들이 울컥울컥 거리며 눈물이 쏟아졌다.
하나님, 고양이들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들에 핀 백합화도 먹이시고 입히시는 주님, 고양이들을 돌보아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다 알지 못하지만 주님 뜻에 순종합니다. 니느웨의 육축도 아끼신 주님, 고양이들을 돌보아주세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