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연대를 생각하는 요즘
"스티븐 연은 <미나리>의 조연 윤여정과 <노매드 랜드> 감독 클로에 자오와 함께 역사책에 이름을 쓰고 있는 중이다."
2021 아카데미상 후보가 발표된 날 아침, 잡지 People지의 제목이다. 이들은 모두 아시안, 스티븐 연은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 남성이고 클로이 자오는 최초의 아시안 여성이다. 93년 아카데미 역사에서 아시아 배우와 여성 감독이 처음으로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에 미국인들 스스로도 놀라움과 함께 당황스러운 모습이었다.
유리 천장 위에 대나무 천장
평창 올림픽에서 아름답고 월등한 테크닉으로 미국에 금메달을 안겨 준 클로이 김이 지난 3월 31일 자신의 인스타 메시지를 공개한다. '이 멍청한 동양년' 'Kiss my ass'같은 심한 욕들이다. 그녀가 받은 수백 통 중 일부라 했다. 스노보드 선수로 첫 금메달을 딴 13살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비슷한 메시지들을 받아왔다고 털어놨다. 의기소침해진 그녀는 유창한 한국어 대신 영어로만 말하는 걸로 반응했다. 미국인이라는 외침이었다. 그동안 이런 공격들을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그녀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가 프로선수라고, 올림픽에서 우승했다고 인종차별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미국 대표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영웅이지만 미국 백인 소녀들의 메달을 빼앗지 말고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도 받기도 했다고.
뉴욕 시립대 마거릿 진 교수는 지하철에서 불쾌한 경험을 한다. 한 남성이 그녀에게 바짝 다가와 'Go Home 집에 가'라고 속삭인 것. 지난 29일, 타임스퀘어 인근에서 아시아계 여성을 무차별 공격하던 홈리스 남성이 내뱉던 말이기도 하다. 출소한 뒤 얼마 안 되는 거구의 흑인 남자는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며 길가던 65세 필리핀 여성을 무차별 폭행했다. (현상 수배된 가해자는 증오범죄 혐의로 체포됐고 당시 폭행 현장을 외면하고 빌딩 유리문을 닫아걸었던 경비원 2명은 해고됐다.)
마거릿 진 교수는 9살에 홍콩에서 이주해 맨해튼 차이나타운의 저소득층 주택에서 자랐다. 열심히 공부해 하버드에 갔고 콜롬비아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뉴욕에서 40년 넘게 살았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만 어떤 이들 눈에 자신은 '영원한 외국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 3월, 애틀랜타 아시안 마사지샵에서 벌어진 총기 살해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선 아시안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미국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인종인 아시안계는 미국 인구의 약 6.5%, 2100만에 달한다. 2017년 퓨 리서치 발표에 의하면 2000년에서 2015년 사이 아시안 인구 증가율은 72%로 60%인 히스패닉을 제치고 미국 내 가장 빠른 증가율을 보이는 중이다. 중국인이 가장 많고 인도, 필리핀 순이다. 베트남, 한국, 일본에 뿌리를 둔 이들도 100만 명을 넘었다. 25세 이상 아시안의 절반이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갖었고 이는 30%인 미국 일반인보다 매우 높다. 그에 따라 경제와 복지면에서 미국 평균 인구보다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대학 졸업생을 구성하고 미국 대학과 대학원의 많은 수가 아시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요 직책에서 아시안의 숫자는 손에 꼽는다. 3월 19일,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는 이 이유를 찾기 위해 마거릿 진 교수의 저서를 소개한다. 그녀는 사회학 교수답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명문 대학을 졸업한 아시아계 미국인 2세들을 인터뷰한다.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그녀처럼 어린 나이에 미국에 와 최고의 교육을 받고 완벽한 영어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 103명을 인터뷰해 출판한다. 뛰어난 실력과 완벽한 언어, 높은 성실성에도 불구하고 CEO, CFO, COO, CIO 같은 회사 내 최고 경영진을 뜻하는 C-suite에 아시안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찾는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일을 매우 잘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이니까 믿을 수 없다는 선입견이 결합될 때 누군가에겐 매우 위협적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 자체를 믿을 수 없고 적까지 있는 자가 능력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매우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책은 미국 땅에서 '영원한 외국인'인 아시안이 C-suite가 되기 위해선 덜 유능하거나 덜 아시안적이 되어야 한다는 모순된 결론을 도출한다. 그래서 책은 아시안에겐 '유리천장'처럼 'Bamboo ceiling대나무 천장'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소수자 모델 속 아시안
"정말 진심으로, 이젠 바뀔 때가 되지 않았니? #오스카 무대에서 아시안들을 조롱하는 걸 멋지고 세련됐다고 하는데, 난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2016년 2월 29일, 대만계 농구선수 제레미 린이 트윗했다. 이틀 전 오스카 시상식에서 흑인 사회자 크리스 락이 아시안 어린이 3명을 무대에 세워두고 한 코미디에 대한 비난이었다. 백인 위주 오스카를 비판하는 #OscarsSoWhite라는 해시태그를 앞세우고 시작된 이 날 행사에서 흑인 진행자는 아시안이 수학을 잘하고 부지런한 일꾼이라는 내용의 코미디를 한다. 이어 자신의 농담에 화가 난다면 이 아이들이 만든 전화기로 트윗하라고 조롱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퍼포먼스가 아시안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켰고 아시안 아동 노동에 대한 비아냥이었다고 지적했다. 크리스 락의 아시아 농담이 역풍을 불렀다고 기록한다. 흑백 갈등을 무마하려던 오스카 주최 측은 한 달 뒤 아시안 차별에 사과해야 했다. 배우 산드라 오, 콘스탄틴 우, 조지 타케이, 이안 감독과 아시안 단체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시안 비난을 쿨하다 생각하는 흑인들을 자주 접하곤 한다.
"교수 인종 배려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우리 학과엔 아시안 교수가 흑인보다 5배나 많지요? 균형이 너무 안 맞는 거 아닙니까?"
며칠 전, 미 동부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흑인 교수가 공개회의에서 불만을 토로했다. 어느 때보다 민감한 요즘 시기에 흑인과 아시안을 단순 비교해 말하는 게 놀라 모두 즉답을 피했지만 당황스러운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그가 말하는 그 균형 속엔 학과 내 대다수인 백인 교수의 숫자는 전혀 감안되지 않고 문제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시안 교수의 두 배가 넘고 흑인 교수의 10배나 되는 백인 교수는 애초 공정의 잣대에 올라가지도 않은 것이다. 이를 지켜본 한 아시안 교수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소수자 연대다 싶어 작년 BLM 집회도 함께 했는데... 우리 마이너리티끼리 싸우면 과연 누가 가장 좋아할까 싶어 씁쓸합니다."
2017년 4월 19일, NPR은 아시안과 흑인 사이의 갈등에 대해 <Model minority소수자 모델>이라는 신화로 설명한다.
기사는 2차 대전 후, 많은 백인들이 아시안계 미국인들의 성공을 확대 해석했다고 한다. 그 효과로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의 지속적 사회적 투쟁을 약화시켰다는 분석이다. NPR 기자 제프 구오는 백인들이 아시아계 미국인의 성실성과 힘든 노동을 추켜 세우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폄하하기 위한 전술이었다고 말한다. 2차 대전 당시 미 정부에 의해 수용소에 감금됐다 풀려난 일본인들이 재기에 성공하는 드라마도 그렇지 못했던 흑인들에 대한 비난의 근거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아시안은 흑인을 게으르다 무시하고 흑인인 아시안을 자신들이 투쟁으로 성취한 과실만을 따먹는 이기적인 이들이라 경멸하는 상황이 지금껏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싸움의 승자는 결코 두 마이너리티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BLM과 AAPI
애틀랜타에서 아시안 혐오 총기 사건이 났을 때, 희생자 신원을 비롯해 아시안 혐오 범죄 증거를 가장 먼저 보여준 매체는 흑인 인권 운동 사이트였다. 작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미 전역에서 펼쳐진 BLM 시위에 참가하면서 알게 된 이였다. 흑인 인권 관련 책의 베스트셀러 저자이면서 인플루언서인 그는 어느 언론보다 먼저 아시안 혐오 범죄에 관한 속보와 시위 내역을 포스팅했고 분노했다. 평소 눈팅만 하던 그의 사이트에 달린 흑인 팔로우들의 동조 댓글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힘이 났다. 그들에게 고맙다고 나도 BLM 시위에 참석했다고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요즘 매 주말마다 주변에서 열리는 AAPI 집회에 가면 같은 아시안 말고도 흑인과 백인과 히스패닉 시위대들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갑다. 혐오 범죄는 아시안 만이 아닌 미국인 모두에 대한 공격이고 분노라는 공감대가 집회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조지 플로이드 재판을 만들어낸 BLM 시위대는 어떻게 싸워야 이기는지, 얼마나 끈질기게 항의해야 역사를 바꿔낼 수 있는지 지금 우리에게 한 수 가르쳐 주는 중 같다. 우린 열심히 그 귀한 노하우를 익히는 중이고. 그들의 순수하고 재지 않는 열정이 고맙고 소중하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선거권을 쟁취해 냈던 흑인 인권 운동의 오래고 소중한 경험들 말이다.
이번 주말에도 AAPI 집회에 나가면 BLM에서 만났던 여러 마이너리티들과 만날 것이다. 소수자 모델보다 소수자 연대가 더 건강하고 강하고 옮는 것을 배우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