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현정 Hyunjung Choi Apr 22. 2021

절반의 국민이 접종했지만....

백신 너머의 고민이 시작된 미국

전날 잠까지 설쳤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백신 접종 날. 50세 이하, 특별한 지병 없는, 지역 거주 주민으로 접종 기준이 확대되자 미리 등록해 놓은 사이트들에서 접종 안내 문자가 오기 시작한다. 


"힘 빼세요. 살짝 꼬집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따끔. 끝났다는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벌써 밴드가 붙여지고 있다. 나도 모르게 Yeah~하며 만세를 불렀다. 두 번째 백신 접종 날짜를 받아 들고 병원을 나오는데 봄 볕이 눈부시다. 곧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라디오를 켜니 현타는 바로 왔다. 


"뉴욕과 뉴저지 주민 모두에게 백신 접종이 확대된 오늘, 미국 전체 코로나 확진자는 3천1백만 명, 사망자는 56만 명으로 여전히 세계 1위입니다. 2위인 국가들과 비교해 확진자, 사망자 모두 두 배의 숫자입니다." 


뉴스 앵커가 짚어주는 숫자 속 미국의 상황에 핸들을 잡은 왼쪽 팔뚝이 묵직하니 아파왔다.  


4주 후 백신 티핑포인트 


"거동 불편한 노모 모시고 차례 기다리는데 나도 맞겠냐고 물어서 얼떨결에 접종했어요."

"오후 6시쯤 동네 CVS 약국들을 들려 '백신 헌팅'을 했는데 한 군데서 가능하다고 해 맞았네요. 그 시간쯤 약국들을 공략해보세요." 

"집 근처에 병원들에 등록해 놓으면 예약이 펑크 날 때 연락이 와요. 단 10분 내로 도착하셔야 합니다." 


아직 노년층만 접종이 가능하던 한 두 달 전 만해도 '접종 무용담'이 돌았다. 미국 역사상 처음 경험해보는 대량 접종 과정에서 생기는 '틈새' 같았다. 미국 정부 차원의 메가 프로세스 중에 폐기되는 백신들도 상당하겠구나 싶었다. 꾹 참고 내 차례를 기다렸고 4월 초, 첫 백신의 순서가 온 것이다. 


미국에서 비상 사용 허가를 받은 백신은 모두 3종류. 화이자/바이오 엔텍, 모더나, 존슨&존스이다. 이 중 1회 접종에 보관도 용이해 인기 있었던 J&J 백신이 문제가 됐다. 볼티모어 공장에서의 제조 과정 중 오염이 발견돼 1500만 회분이 폐기 처분된 것. 거기에 투약이 완료된 720만 도스 6건의 혈전 부작용이 발견돼 종이 일시 중단 권고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수급 불안은 발생하지 않았다. 나머지 종류의 백신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미국은 15일 이내에 공급이 수요를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발표가 나왔다. 앞으로 4주 내로 백신을 맞겠다는 모든 이들에게 접종이 가능한 '티핑 포인트'에 도달할 것이라는 내용도 함께였다.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독립한 인디펜던스 데이를 맞게 될 것입니다. 뒤뜰에서 친구와 이웃들과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축하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러기 위해선 우리 모두 코비드 백신을 접종받아야 합니다."


7월 초까지 집단 면역에 도달하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지난 1월 목표했던 취임 100일 내 백신 2억 발 투여가 앞당겨 이루어지면서 가시화되는 느낌이다. 연방군까지 동원한 '백신 접종 전쟁'으로 하루 300만 샷까지 가능해진 것. 4월 21일 현재 미국 인구의 26%인 8,620만 명이 완전 접종을 끝냈고 미국 성인 1억 3천320만 명이 1회 이상 백신을 투여받은 상태이다.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백신 접종이라는 애국적 의무를 다하는 미국인들은 누구든지 한 푼의 월급도 손해 보아선 안됩니다."


4월 21일, 바이든 대통령은 백신 접종에 박차를 가하는 조치를 발표한다. 예방 접종을 위한 휴가와 부작용 회복을 위한 유급 휴가 비용으로 기업에게 하루 최대 511달러 공제가 가능하다고 한 것. 아직도 백신 접종에 소극적인 미 성인 1/5를 설득하기 위한 방안이다. 접근에 어려움이 없게 하기 위해 4만 개 이상의 일반 약국과 제휴해 미국인 90% 이상이 집 8km 내에서 접종소를 찾을 수 있게 조치했다. 여기에 미 정부는 변이 바이러스 추적을 위해 17억 달러를 사용하는 중이다. 7월 말까지 3억 개의 백신을 추가로 확보해 9-12개월 후 3차 접종이 필요할 것에 대비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부 전문가들은 부스터 샷에 대해 논의 중이다.  


이에 필요한 비용 확보를 위해 미 의회는 코비드-19 구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대통령이 서명한  구제법안의 비용은 1조 9천억 달러, 우리 돈 약 2천140조에 달하는 금액이다.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접종할 때까지 바이러스의 새로운 돌연변이는 계속해서 생명을 앗아갈 겁니다. 그래서 상호 연결된 세계 경제를 악화시킬 것입니다."


지난 4월 15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편지했다. 그를 포함한 100명의 노벨상 수상자들과 전직 국가 지도자 60여 명도 함께 연명했다. 인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제안한 코로나 19 백신에 대한 지적 재산권 규제 포기에 대한 요구이다. 


공동 서한에서 이들은 특허권 면제는 기약 없이 차례를 기다려야만 하는 빈곤국들이 유행병에 빠르게 대응해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했다. 


국제 인도주의 단체 국경 없는 의사회도 지난 19일 미국과 EU 회원국 등 부유한 나라들을 향해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우리는 제조와 공급의 다양화 그리고 일시적 지적 재산 포기가 왜 필요한지 다시 한번 통감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EU 등의 나라들이 역사 앞에서 시스템이 아니라 생명 보호에 앞장서기를 간절히 촉구합니다"


이들 역시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한 남아공과 인도에 대한 선진국의 특허권을 잠정 포기해 달라는 간곡한 내용이다. 과학저널 네이처 편집위원회의 관측에 따르면 70%의 세계 인구가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선 1인당 2회를 가정해 약 110억 개의 백신이 필요한 것이라 계산했다. 국경 없는 의사회는 2월 현재 주문된 86억 회에 백신 중 60억 회는 고소득, 중상위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며 전 세계 인구 80%를 차지하는 가난한 나라들엔 1/3도 안 되는 숫자가 공급된다고 문제 제기했다. 


이달 WHO 사무총장도 미국, EU 같은 부곡들이 백신의 기존 공급량 상당 부분을 독점해 막대한 흑자를 남기고 있다 비난했다. 그는 저소득국가에는 세계 백신의 0.2%만이 돌아가고 있다며 선진국의 이기적 조치에 분노했다. 

미국 내 연구소인 듀크 글로벌 헬스 이노베이션 센터도 지난 4월 15일 보고서를 냈다. <전 지구적 코로나 백신 부족 감소: 미국 리더십에 대한 새로운 연구 및 권장 사항>이란 제목의 이 보고서엔 미국이 백신 공유 프로그램에 대한 자금 지원을 늘려야 한다며 현재 과다 보유하고 있는 백신을 다른 나라에 기부하고 미국 정부가 백신 제조를 개방하기 위해 제약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 보고서는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공정하게 코로나 백신이 전 세계에 배분되기 위해서 미국의 리더십이 지금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 의회 10명의 진보적 상원의원도 의견을 같이 했다. 지난 16일,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 의원 등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특허, 저작권, 영업 비밀을 포함한 지적 재산권 보호에 대한 광범위한 권리 포기를 요구하는 세계 무역기구 제안을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노동조합을 포함해 의회 의원들과 뜻을 같이하는 이들도 지금의 상황을 방치하게 되면 제약회사의 이익이 사람의 생명보다 앞서게 된다며 우려를 표명한다. 


백신의 리더십


이들 가난한 나라에 대한 특허권 공개를 가장 반대하는 곳은 당연히 백신 제조사들이다. Moderna Inc. 와 Pfizer Inc. 같은 기업들은 미국 정부가 코비드-19 백신에 자금을 지원하고 일부 기초 기술 개발에 도움을 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스스로 mRNA 백신 기술 개발에 투자해 왔기에 미국 정부의 영향은 최소한이라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공개 압박은 연구개발 의지 저하와 비슷한 사례의 전례가 될까 우려한다며 말이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에 보내는 위 서한에 이름을 함께한 전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은 특별히 미국 대통령에게 당부했다. 곧 있을 G7 정상회의는 미국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총리는 서한 나흘 전 맨해튼 화이저 본사 앞에서 있었던 의료단체들의 피켓과 같은 말을 한다. 


"모두가 안전해지기 전엔 누구도 안전하지 않습니다."라고.


바이든 대통령이 2억 발 백신 접종이 달성됐다고 발표한 4월 21일, 오늘 하루 동안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58955명, 사망자는 796명이 늘었다. 미국은 백신 너머의 고민이 미국은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정말 이젠 바뀔 때가 됐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