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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정 Hyunjung Choi Aug 26. 2021

아프간이 한국보다 쉬웠다고?

전쟁 유발자들의불쾌한 주한미군 활용법

"우리의 가장 긴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한국입니다. 그 전쟁은 승리로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이라는 교착상태로 끝났습니다. 한국은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콘돌리자 라이스가 지난 17일 <워싱턴 포스트>에 아프간 철군에 반대하는 글을 기고했다. 2001년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아프간 침공을 결정할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던 전쟁 책임자 중 한 명이다. 지루한 20년 전쟁을 끝내려는 바이든 정부의 철군 결정은 성급했다고 비난한다. 그 근거로 '한국'을 등장시킨다. 자신들이 군인을 보내 민주주의를 만들어 주지 않았냐고. 70년 넘게 지켜주고 있다고 말이다.  


당당한 전쟁 유발자들


21일,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도 그의 웹사이트에서 철군을 비난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 국민 연설 중 '영원한 전쟁을 끝내자'는 말은 정치적 수사일 뿐이라며 조롱한다. 1997년부터 10년간 집권한 영국 최장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블레어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선포한 "테러와의 전쟁"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긴밀히 협조했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기로 한 결정은... 지난 20년간 이루어진 긍정적인 성과를 훼손할 위험이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지하드 단체가 미군 철군을 환호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의 군사개입이 영향력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그는 총리 재임 중 변함없이 군사 개입을 지지했다. 이는 2007년 사임의 핵심 이유가 됐고 당시 영국 언론은 '조지 부시의 푸들'로 조롱했다. 그 당사자는 2021년에도 그 입장을 고수하며 전쟁을 끝내려는 이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을 공격하는데 트럼트 전 대통령도 빠질 리 없다.


"탈레반이 카불 미 대사관에 깃발을 내건다면 얼마나 망신스러운 일인가. 나약함, 무능, 전략적 모순이 겹친 총체적이고 완전한 실패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이렇게 조롱한 트럼프가 작년 탈레반과 맺은 협상 내용을 전하며 전 대통령이 체결한 딜에 대한 수습을 현 대통령이 하고 있다고 전한다. 바이든은 철수와 전쟁 확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면서 말이다다. 


미치 맥코넬이나 린지 그레이엄 같은 공화당 의원도 목소리를 높인다. 시리아와 예멘, 이라크에 있는 전 세계 테러리스트들은 미군의 패배에 환호하고 있다면서 말이다. 


종전 과정에서 벌어지는 혼란을 과장하며 전쟁의 책임자들이 수습에 정신없는 이들에게 큰소리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MSNBC 진행자 메흐디 하산이 22일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일갈한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여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국민들에게 가르치려는 사람들로 요즘 신문과 TV가 시끌하더군요... 전쟁이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지키십시오! 단, 개인적으로 침묵의 시간을 좀 갖는 게 어떨까요. 말을 하고 싶다면 먼저 '죄송합니다'로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전쟁을 지지하는 매파 정치인, 군수산업체들, 그리고 그들에게 자금을 지원받은 전직 군사 관료들과 지금의 혼란만을 중계방송하는 언론들을 겨냥한 말이었다. 


전쟁 지속론자들의 아전인수 


카불 공항의 혼란과 탈레반과 아프간 여성에 대한 온갖 불편한 뉴스를 보며 미국인들과 같은 당황스러움과 불안을 느끼는 요즘이다. 여기에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한국 분단 상황이 그들의 입맛대로 요리되는 것을 보면서 불편한 마음까지 겹쳐진다. 


".. 안정된 정부가 완성되기엔 20년은 부족합니다. 테러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데도 20년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그들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정교한 한국군만으로는 북한을 저지할 수 없기에 7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린 2만 8천 명 이상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프간 전쟁을 일으킨 조지 W. 부시 행정부, 그 안에서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콘돌리자 라이스에겐 70년째 전쟁 중인 한국은 전쟁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증거'다. 2019년 9월 CBS 토크쇼에 출연해서도 미국이 50년대부터 한국의 평화를 지켜왔다고 얘기했었다. 기고문에서 그는 오히려 아프간은 한국보다 더 쉬운 곳이라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은 한국이 아니지만 우린 훨씬 적은 노력으로 합리적인 결과를 얻었을지 모릅니다. 아프간에선 전투 부대를 더 투입하지 않아도 됐고 몇몇 핵심 인력들만 주둔하면 됐습니다." 



부시 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의 연설문을 작성했던 이의 포스팅도 전제는 같다.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탈레반보다 강한 북한군에 이해 한국은 빠르게 무너질 것이다. 미국 없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동맹군은 없다."

못마땅한 아프간 철군 상황을 비판하며 한 때 미국 정치를 움직인 네오콘과 강경파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아프간과 다르지 않았던 것


미국의 지속적인 보호와 지원으로 존재가 가능한 나라,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 국가 안보까지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워준 건 주권국이 아니라 식민지나 속국으로 부른다. 


2001년 미군의 아프간 폭격 후 여드레 뒤, 뉴욕의 한 백인 민주당 하원의원은 부르카를 쓰고 의회 연설을 했다. 탈레반에 의해 직장도 학교도 의료 서비스도 받지 못하던 아프간 여성의 삶이 미국의 개입으로 앞으로 어떻게 나아질지 설명하던 민주당 의원은 부시 대통령을 칭찬한다. 


"부시 행정부는 전쟁과 동정심의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아프간에) 폭탄뿐 아니라 먹을거리도 함께 떨어뜨리고 있는 것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당시 아프간 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지... 요즘 부쩍 그들과 동병상련의 마음이 된다. 


패전국 미국


BBC 추산에 의하면, 2001년부터 2021년 사이 미국이 아프간에 쏟아 부운 돈은 957조 원에 이른다. 17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3500여 명의 미군과 동맹군이 숨졌다. 라이스 장관 말대로라면 한국보다 쉬운 곳이었는데도 말이다. 


다음 세대 미국인들을 아프간 전쟁에 보내지 않을 거라고 선언한 대통령은 8월 말을 철군 시한으로 잡고 미국인과 조력자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탈레반과 동맹국들의 협조를 구하며 '영원한 전쟁'을 서서히 끝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요즘 46년 전 미군의 베트남 철수 당시를 데자뷔 하며 TV를 보고 있다. 담을 넘는 사람들과 비행기에 올라타는 이들, 당황하는 미군의 모습이 흡사하다. 내가 만난 미국인 누구도 1975년 사이공 퇴각을 미군의 패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2021년 아프간이 반복된 이유이다. 


시사 코미디 호스트 존 올리버는 8월 22일 자신의 쇼에서 말했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왔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다른 국가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고립주의를 주장하고 싶다면 환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들어간 후 비참해져 버린 나라 사람들의 운명을 무시하기 위해 그 이름을 사용하면 안 될 말입니다."


대부분이 여성과 아이들이었던 아프간인 7만 1000여 명의 목숨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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