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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정 Hyunjung Choi Aug 27. 2021

바이든의 외로운 싸움

전쟁 유발자들의 불쾌한 주한미군 활용법

"...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가장 긴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한국입니다. 그 전쟁은 휴전이라는 교착상태로 끝났고 한국은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난 17일 콘돌리자 라이스는 <워싱턴 포스트>에 아프간 철군을 항의하는 글을 기고했다. 2001년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아프간 침공을 결정할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던 전쟁 책임자 중 한 명의 글이다. 그는 바이든 정부의 철군 결정을 성급했다고 비난하며 '한국'을 등장시킨다. 70년 넘게 미군이 지켜준 나라, 미국의 보호하에 민주주의를 이룬 나라, 그렇게 미국의 우방이 된 한국을 내세워 20년 전쟁을 끝내려는 현 정부를 공격했다. 


큰소리치는 전쟁 유발자들


26일 오후,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속보를 내 보냈다. 카불 공항의 폭탄 테러로 미군 12명을 포함, 72명이 숨졌다. 이 사건은 철군을 서두르는 바이든 정부를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전쟁에 책임 있는 이들이 반성 대신 철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었다. 


지난 21일,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도 그의 웹사이트에서 철군을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 중 '영원한 전쟁을 끝내자'는 말은 정치적 수사일 뿐이라며 조롱했다. 1997년부터 10년간 집권한 영국의 최장수 지도자였던 블레어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선포한 "테러와의 전쟁"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긴밀히 협조했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기로 한 결정은... 지난 20년간 이루어진 긍정적인 성과를 훼손할 위험이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지하드 단체가 미군 철군을 환호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의 군사개입이 영향력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총리 재임 중 변함없이 군사 개입을 지지했다. 이는 2007년 사임의 핵심 이유가 됐고 당시 영국 언론은 그를 '조지 부시의 푸들'이라고 조롱했다. 그런 그가 2021년에도 전쟁을 끝내려는 이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 공격에 트럼프 전 대통령도 빠질 리 없다.


"탈레반이 카불 미 대사관에 깃발을 내건다면 얼마나 망신스러운 일인가. 나약함, 무능, 전략적 모순이 겹친 총체적이고 완전한 실패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작년 탈레반과 맺은 협상 내용을 전하며 전 대통령이 체결해 놓은 딜을 현 대통령이 수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은 '철수'와 '전쟁 확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는 것이다.  


미치 맥코넬이나 린지 그레이엄 같은 공화당 의원도 공격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리아와 예멘, 이라크에 있는 전 세계 테러리스트들이 미군의 패배에 환호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종전 과정에서 벌어지는 혼란에  전쟁의 책임이 있는 자들이 더 큰소리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MSNBC 진행자 메흐디 하산은 22일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아래와 같이 일갈한다.


"전쟁이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하세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침묵의 시간을 좀 갖는 건 어떨까요? 아프간에 대해 뭔가 말을 하고 싶다면 '죄송합니다'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전쟁을 지지하는 매파 정치인, 군수산업체와 그들에게 자금을 지원받은 전직 군사 관료들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전쟁론자들의 아전인수 


워싱턴과 1만 키로 떨어진 아프간의 아수라장이 매일 미국의 뉴스를 장식 중이다. 불편하고 믿기 어려운, 가슴 아픈 소식들 뿐이다. 거기에 한국인으로서 복잡 다난한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 정교한 한국군만으로는 북한을 저지할 수 없기에 7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린 2만 8천 명 이상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프간 20년 전쟁으로 무엇을 얻으려 했냐며 한국 사례를 들먹인다. 아프간 전쟁을 일으킨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핵심 결정권자에겐 정전 중인 한국의 상황이 전쟁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증거'다. 라이스는 2019년 9월 CBS 토크쇼에 출연해서도 미국이 50년대부터 한국의 평화를 지켜왔다고 얘기한 바 있다. 이번 기고문에서는 오히려 아프간은 한국보다 더 쉬운 곳이라고 말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린 훨씬 적은 노력으로 합리적인 결과를 얻었을지 모릅니다. 아프간에선 전투 부대를 더 투입하지 않아도 됐고 몇몇 핵심 인력들만 주둔하면 됐습니다." 


부시 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의 연설문을 작성했던 마크 티센이란 이의 포스팅도 전제는 같다.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탈레반보다 강한 북한군에 의해 한국은 빠르게 무너질 것이다. 미국 없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동맹국은 없다."


아프간을 침공을 결정했던 이들에겐 베트남과 리비아와 이라크와 한국 같은 나라는 미군이 진주해 지켜주고 꽃 피워준 많은 나라 중 하나인 듯하다. 지난 70년 간 언론을 달궜던 수많은 주한미군 관련 사건들이 떠오르며 아프간인들에게 미군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2001년 미군의 아프간 폭격 후, 뉴욕의 한 백인 민주당 하원의원은 부르카를 쓰고 의회 연설을 했다. 탈레반에 의해 직장도 학교도 의료 서비스도 받지 못하던 아프간 여성들의 삶이 미국의 개입으로 나아질 거라고 주장하던 민주당 의원은 부시 대통령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부시 행정부는 전쟁과 동정심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프간에) 폭탄뿐 아니라 먹을거리도 함께 떨어뜨리고 있는 것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그렇게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 속에 7만 1천여 명의 아프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여자와 어린아이들이었다.


미국의 오만과 고집 대신 


"힘든 하루입니다."


미 중앙사령부 소장의 말처럼 카불 공항 테러 후 TV 앞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얼굴이 수척하다. 며칠 사이 더 나이 든 모습이다. 


전 세계가 아프간의 비극을 가슴 아파하고 있다. 20년 전 미국의 결정은 지금 아프간과 미국과 전 세계를 불안케 한다. 전쟁 책임자들은 말하지 않지만 지켜보는 우리 모두는 미국이 패전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베트남에서도 레바논에서도 이라크와 아프간에서도 패했던 미국은 오만했고 고집스러웠고 무능했다. 이번엔 제대로 반성했으면 좋겠다. 전쟁을 해야 할 수십 가지 이유를 떠드는 이들보다 더 현명한 이들이 미국의 리더로 결정 내릴 수 있길 바란다. 


한반도는 미국의 평화 역량을 시험할 수 있는 지금 가장 최적의 지역이 아닐까 싶다. '오만한 나르시시즘'의 나라가 아닌 평화를 이끄는 겸허한 성찰자로서 미국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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