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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정 Hyunjung Choi Sep 09. 2021

반지하와 마천루

홍수에 드러난 뉴욕의 그늘

2주 전,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온수가 이상하다. 미적지근해졌다 싶었는데 곧 찬물만 나오기 시작한다.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설마.. 하며 물탱크가 있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눅눅해진 나무 문을 밀어젖히니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쓰러진 자전거, 부유하는 청소용품, 스티로폼, 페인트통.. 역류해 들어온 듯한 시커먼 물속에 탱크와 보일러가 머리를 내놓고 있다. 허리케인 헨리 Henry가 지하실을 수영장으로 만들어 놓은 것. 새벽부터 물 퍼내고 선풍기를 돌려 물탱크와 보일러를 말리고 찬물로 생활하던 나흘 만에 온 플러머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루이지애나에 상륙한 허리케인 아이다 Ida는 열대성 저기압으로 약화돼 약간의 비를 뿌리며 동부지역을 빠져나갈 것입니다."


분명 이런 일기예보를 들었다. 그런데 물탱크 수리 후 사흘도 되지 않아 지하실이 또 잠겼다. 보일러와 물탱크와 기껏 말려놓은 물건들이 다시 침수. 일주일 전보다 더 심하다. 대목 맞은 플러머와 수차례 통화를 시도하며 장화에 양동이, 선풍기를 돌리며 9월을 시작했다.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 폭우


"난 소리쳤어요. 저스틴, 나 물에 빠졌어. 구해줘 빨리. 난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지난 수요일, 퀸즈에 사는 리베라는 비가 거세지자 걱정이 돼 지하방으로 내려갔다. 그녀가 지하실에 발을 디딘 순간 단 몇 초만에 빗물은 천장까지 차 올랐다. 위층으로 올라갈 방법이 없어진 리베라는 천장에 달린 창문을 열고는 아들을 불렀다. 시각장애인인 그녀의 아들은 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와 엄마를 창문 밖으로 끌어냈다. 그녀의 온몸은 멍이 들었고 천정까지 물이 들이찬 지하는 엉망이 됐지만 그녀는 살아났다.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은 용감한 아들을 영웅이라고 자랑할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모두가 리베라같이 운이 좋진 않았다. 


같은 날 퀸스 우드사이드에 살던 토레스 씨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 2살짜리 아기도 함께 였다. 가족이 머물던 지하방에 갑자기 물이 들이닥쳤고 빠져나갈 틈도 없이 변을 당한 것이다. 같은 지역에 살던 달렌 씨는 아파트 철창과 유리문 사이에서 숨졌다. 쏟아진 급류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손 쓸 사이도 없이 변을 당했다. 사망자 중엔 엄마와 아들도 있고 80대 독거노인도 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요. 마치 폭포수처럼 물이 들이차고 있었어요." 

"어떤 대비도 할 수 없었어요. 여기에 오래 살았고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곤 짐작조차 못했습니다." 


뉴욕 퀸즈 사망자 13명 중 11명이 지하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목숨을 잃었고 뉴저지주 엘리자베스에선 일가족 포함 4명의 주민이 2.4m 물이 범람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사망했다. 서머셋 카운티 주민 4명 등 뉴저지에서만도 23명이 숨졌다.


필라델피아에서 코네티컷에 이르는 북동부 지역에 15-20cm의 비를 뿌린 열대성 저기압 아이다는 1주일 전 이곳을 훑었던 허리케인 헨리의 기록을 깼다. 맨해튼엔 시간당 8cm에 달하는 강수량을 기록해 기상 관측 이래 최대 폭우가 쏟아졌다. 뉴욕 뉴저지 부근 4개 주 약 17만 명의 가정에 전기가 나갔고 

9월 8일 현재, 아이다로 인한 동부지역 사망자 수는 46명이다. 이는 여전히 찾지 못한 6명의 뉴저지 실종자를 제외한 숫자다. 


지하에 살고 있는 뉴요커 10만 명


9월 2일 뉴욕타임스는 퀸즈 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배달기사인 올리비아 크루즈는 사촌에게 지하방을 소개받았다. 그는 그곳이 불법인지 여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말한다. 건설일을 하는 리카르도 그라시아는 친구에게 소개받아 이곳에 있다. 한 달에 500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 살았던 로베르토 브라보 씨는 페인트칠하는 일을 했다. 1년 전부터 창문 없는 지하방에서 살았는데 지난 수요일 쏟아져 들어온 물에 방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숨졌다. 브라보 씨는 에콰도르에서 군인이었다. 이웃이 들은 그의 마지막 말은 "아유다 메, 헬프미"였다. 

 

취약한 환경에 사는 이들에게 화재나 일산화탄소 중독은 전보다 줄어들었다 한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저지대 주택들은 더 위험해졌다. 폭우로 인한 물벽이 유일한 탈출 수단을 막게 되는 이번과 같은 경우이다.  


뉴욕시 규정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지하실의 높이는 182-213cm 이상이어야 하고 천장과 창문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11년부터 지금까지 뉴욕시에서만 지하실 불법 전환 민원만 15만 7천 건이라고 한다. 이들 민원 절반 이상이 이번에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퀸스 지역인데 신고 주택의 59%는 조사관들이 접근하지 못한 채 종결되었다고 한다. 세입자와 주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강제 조사권이 없어 자연스레 민원이 종결되었던 것. 

뉴욕주 건축부에 따르면 뉴욕시에만 10만 명 이상이 불법 지하 아파트에 살고 있다부수입을 얻으려 는 집주인과 싼 주거지가 필요한 세입자의 수요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택 시장인 뉴욕에 10만의 지하 거주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 다수는 불법 이민자들로 뉴욕 곳곳의 식당과 호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제 우린 지하에 살고 있는 취약한 이들을 위해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어떤 재해가 닥쳤을 때, 취약한 이들이 날씨나 속보에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뉴욕시장은 브리핑에선 지하에 사는 이들을 안전하게 만드는 게 목표로 했다. 폭우로 드러난 어두운 뉴욕에 대한 관심은 이어진 차기 시장들도 공유하길 바란다. 


Banjiha와 skyscraper


"그들은 다른 어떤 선택을 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CNN이 소개한 주택 단체 이사의 말처럼 불법적인 지하 개조 시설에 살고 있는 이들은 다른 비싼 선택권을 살 여유가 없는 이들이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서류 미비자고 팬데믹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력으로 팬더믹 와중에 뉴욕은 유지됐고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한국의 수도 서울엔 수천 명이 사는 반지하(Banjiha)라는 곳이 있습니다. 햇빛이 거의 들지 않고 비좁은 곳입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방 안을 훔쳐볼 수도 있고, 여름은 습기, 더위와 싸워야 합니다."


작년 2월 영화 <기생충> 속 반지하를 소개한 BBC의 기사는 2021년 9월 뉴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의 뉴욕엔 10만 명이 사는 베이스먼트라는 곳이 있습니다. 햇빛이 거의 들지 않고 비좁은 곳입니다. 여름은 습기, 더위와 함께 언제든 물이 들이쳐 익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영화 <기생충>은 지금 여기 뉴욕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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