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말 대신 사용된 것
고요하고 평온한 밤. 노트북 모니터 앞에 앉아 밝게 빛나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본다. 이내 두 손을 꼭 그러쥔다. 불행은 늘 예고 없이 닥친다. 별안간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마치 깊은 물 속에 잠긴 것만 같은 착각. 다시 숨을 제대로 쉬고 싶은 건지, 아니면 이대로 숨이 점점 끊어지기를 바라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모든 감각이 먹먹하게 울린다.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리는 몸. 두 눈을 꼭 감는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잠시만 멈추자.
... 아니야, 안 괜찮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이럴 때는 혼자 있으면 안 된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닫힌 문 앞으로 다가선다. 유튜브 쇼츠 영상 소리가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온다. 노크고 인기척이고 모르겠다. 벌컥, 문을 열어젖힌다. 침대에 누워 하루의 마지막 휴식을 만끽 중이던 남편은 갑작스러운 방문에 한 번, 일그러진 내 표정에 두 번 놀란다.
"오빠."
남편을 부른 것이 먼저인지, 눈물이 터진 것이 먼저인지 모르겠다. 화들짝 놀란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는 그의 품에 안긴다. 마침내 숨이 편안하게 쉬어진다. 안도한다. 아직은 죽지 않았다.
당황한 남편에게선 쉴 새 없이 질문이 쏟아진다. 좀처럼 울지 않는 내가 낯선 것이 분명하다. 최대한 말을 아낀다. "논문 작업이 좀 많이 힘들어서..." 정도로 대화를 매듭 짓는다.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길 없는 마음. 조금 전까지 내가 떠올렸던 무수한 폭탄들은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는 편이 좋겠다.
남편은 한 번 더 나를 안는다. 들썩이던 어깨가 차츰 진정되는 걸 확인하자마자 허둥지둥 외투를 챙겨 입는다. "논문 할 때 엄청 힘들다고들 하더라. 그래그래, 힘들지. 이럴 땐 매운 걸 먹으면 얼른 풀려!" 너스레를 떨며 집 앞 편의점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띠리리리- 현관문이 닫히고 다시 또 공백이 찾아온다. 식탁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끌어올리고 몸을 작게 웅크린다. 양 팔로 스스로를 꼭 끌어안는다. 통증을 이용해서라도 생각을 하나 둘 지워내려 애쓴다. 자꾸만 거실 통유리창으로 향하는 시선을 거둔다.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들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들을 잘 구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소원 같은 기도를 속으로 읊조린다. 듣는 이 없는 중얼거림이 허공을 가른다.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만 조금만 더 버티자, 스스로를 다독인다.
감기에 걸렸다. 이렇게 힘든 건 몇 년 만이던가. 아무래도 이번 감기는 쉽게 물러날 마음이 없는 듯 하다. 지나치게 즉흥적인 마음으로 브런치북을 열었다. 마음의 감기, 우울. 어둠 속에서 바스러진 언어들을 하나 둘 길어 올린다. 무작정 죽음을 회피하기보다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의 나조차 어여삐 바라봐주기로 마음먹는다. 이건 분명, 계속해서 살아내기 위한 무수한 시도들 중 하나일 것이다.
자살 시도 대신 생존 시도 쪽으로 에너지를 흘려보낸다. 결국 아침은 온다.
※ 혹시 당신이나 당신의 가까운 사람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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