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났어요. 당당한 표정으로 '내 살 냄새야.' 우긴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오직 그에게서만 나는 고유한 향기가 참 좋았어요. 어디에 코를 갖다 대어도 똑같은 향이 서로 다른 농도로 후각 신경을 자극했지요. 항상 안길 때면 고개를 한껏 들어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깊이 파묻는 것이 저의 자잘한 취미이자 습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형사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그저, 그에게서 나는 비누냄새를 사랑했습니다. ... 그가 이런 몰골로 돌아오길 바랐던 것이 아니에요.”
시랍화 된 시신은 말 그대로 비누 같았다. 무엇이든 닿기만 하면 금방 뭉개질 것처럼 말캉하게 부풀어오른 하얀 알몸. 흐물거리는 그 낯선 덩어리를 두고 지난 시간 열렬히 사랑했던 이에 대한 기억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차라리 짐승처럼 울부짖거나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 편이 좋았을까. 황망한 눈동자를 한 채,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내뱉는 지연의 독백에 재혁은 그 어떤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한 사람의 끝을 두고 실종에서 사망으로 서류를 수정하는 일은 몹시 간단하지만, 남아있는 이들이 실종자 가족 대신 유가족 자리로 옮겨가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았다. 이럴 때는 섣부른 위로마저도 삼가는 것이 좋다는, 침묵이 오히려 낫다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속으로 되뇌며 재혁은 말없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죽음을 가까이 해야만 하는 직업군이라면 모를까. 평생을 살면서 누군가의 시신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상황은 극히 드물다. 장례식장에서 망자의 마지막을 정돈하는 염(殮)도 가까운 직계가족만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다반사고, 그 경우에도 직접 죽은 이의 몸 구석구석을 확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매우 불확실한 확률로 이런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시신 앞에 나서야 한다. 지금 재혁 곁에 선 지연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이의 주검을 두 눈 가득 담은 지연의 커다란 눈망울이 불안정하게 찰랑거리고 있었다. 재혁은 서둘러 흰 천을 사망자 머리 끝까지 올려 덮었다.
사건 발생 50여 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망자 수보다 실종자 수가 더 많았다. 단 3분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생명은 커녕 죽음조차 찾아내기 힘든 현장. 무엇이 되었건 한 때 생명이었던 것의 조각을 찾는 일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에 버금갔고, 힘겹게 사망자를 발견한다 한들 온전한 시신을 찾기는 더더욱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지연의 약혼자는 특별한 케이스에 속했다. 극히 낮은 확률이지만 산소, 습도 등 특정 조건들이 적절히 갖추어 졌을 때 시신은 미이라 같은 형태 또는 물에 부푼 비누 같은 형태로 시랍화가 진행되곤 했다. 지금껏 무수한 사건 현장에 나갔어도 시랍화된 시신을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재혁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후속 조치를 위해 지연을 담당 부서로 안내한 후 지옥같은 건물 복도를 홀로 걸으며 재혁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곧이어 사연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피라냐 떼처럼 몰려들 거란 직감에 털끝이 곤두섰다. 몇몇 극소수 기자들을 제외하면 최대한 자극적인 타이틀로 기사를 뽑아내고 조회수를 높이는 데 혈안인 하이에나 뿐일 터. 재혁은 입 안이 썼다. 최악의 조건에서 약혼자의 온전한 몸이라도 되찾은 지연을 두고 그 누가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나. 아니면 오랜 시간 실종자 가족 상태로, 사랑하는 이의 생사가 영영 유보된 다른 이들이 차라리 더 낫다고 할 건가. 차라리 소란보다는 침묵이, 불필요한 관심보다는 필요한 도움이, 호기심보다는 애도가 필요한 때이지 않나.
2025년 대한민국에서 사상 최악의 사고가 일어났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많은 이들이 별안간 거대한 건물에 파묻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들의 생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돌아온 시신이 온전한지 온전하지 않은지 같은 것들로 어떤 경중을 매길 수나 있단 말인가. 거기에 감히, 그 누가 함부로 이름표들을 붙이고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분류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