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사람을 망가뜨릴 때

무지와 폭력 사이, 말이라는 칼날

by 밤비


우울에 잠식된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현실이 아니라 왜곡된 해석으로 가득한 필터 너머로 세상을 바라본다. 인지적 왜곡이다. 별일 아닌 말에도 쉽게 베이고, 중립적인 상황조차 상처로 받아들인다. 한 마디로, 쉽게 금 가고 부서지는 마음. 유리멘탈, 쿠크다스멘탈이 된다. 웃픈 농담같지만 우울의 본질에 가까운 표현이다.


나 역시 그랬다. 우울할 때는 좀처럼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상대는 단지 “요즘 괜찮아 보여”라고 했을 뿐인데, 내 귀에는 “이제 좀 정신 차렸네”로 들렸다. 말은 그대로였지만 의도는 왜곡됐다. 거름망이 아니라 필터링 머신이라도 단 듯, 나는 많은 말들을 악의로 변환해서 받아들였다.






“우울 그거, 멘탈이 약한 사람들이나 걸리는 거지.”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몰랐고, 상처 줄 의도도 없었다는 걸 안다. 우울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말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그럼에도 그 말은 예리하게 나를 잘라냈다. '우울은 멘탈이 약한 사람의 병'이라는 말은, 폐렴 환자에게 '왜 폐를 더 튼튼하게 안 했냐'고 묻는 것만큼 무책임하다. 무지는 때로 악의보다 더 잔인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울은 마음 면역력이 떨어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이다. 멘탈의 강약과 무관하고, 의지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자살할 용기로 끝까지 살지, 쯧쯧.”


이 역시도 실제로 들었다. 가까운 이가 한 말이었기에 충격은 배가 됐다. 마치 자살이 나약함이나 죄악인 것처럼 말하는 그 어조에 할 말을 잃었다. 아마도 그 말을 한 사람은, 살아있는 것이 기회이고 선택이라고 느낄 수 있는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일 것이다. 생의 모든 주도권이 손에서 빠져나가고,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 잘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실수들이 있다. 어떤 현상이나 대상에 대해 '잘 안다'는 생각만 버려도 많은 경우 폭언은 사라질 수 있다.






“너는 심리학을 한다는 애가 왜 니 마음도 잘 못 돌보니.”


이건 정말 아팠다. 치과의사는 평생 이가 썩으면 안 되고, 내과 의사는 감기에 걸리면 안 된다는 공식이라도 있는 걸까. 심리학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해서, 마음이 아프지 말라는 법은 없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에는 다 이유가 있을텐데. 당시, 나는 가벼운 우울감을 방치한 대가로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 중이었다. '잘 안다'는 착각이 방심으로 이어졌고, 결국 나 스스로도 내 마음을 돌보지 못했다. 내 마음은 나 혼자 돌본다고 해서 돌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돌아온 건, 위로도 아닌 핀잔이었다.






“어머, 얘. 너 그 약 먹어서 어쩌려고 그래?”


부모님께는 우울을 숨겼다. 우연히 가방에서 약을 발견한 엄마는, 그것이 우울증 약이라는 것을 알고 화들짝 놀랐다. 놀랄 것도 없는 전형적인 반응이었지만, 막상 듣고 나니 허탈했다. 세상에, 엄마. 엄마 딸이 심리학자인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요. 염려스러운 마음에서 나온 말인 줄은 안다. 그렇지만 정확히 말해두고 싶다. 전문가의 진단과 상담을 거쳐 처방받은 우울증 약 복용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듯, 우울에 걸리면 우울증 약을 먹는 것이다. 진료 기록은 본인만 열람할 수 있고, 약은 마음의 붕괴를 막는 구조물이 될 수 있다.





그 말들은 상처였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옅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스며든다. 무지와 폭력 사이, 그 경계에 놓인 말이라는 칼날. 나도 모르게 휘둘렀던 적 있고 아무렇지 않게 찔린 적도 있다. 우리는 때로 너무 쉽게 말한다. 너를 생각해서, 너를 위하는 마음에서, 혹은 아무 생각 없이. 하지만 말은, 특히 가까운 사이에서 주고받는 말은, 그렇게 쉽게 흘려보내지지 않는다. 가장 사소한 말들이 관계의 가장 깊은 곳에 흠결을 낸다. 그리고 어쩌면 관계는 그렇게 긁힌 흔적들로 인해 무너진다. 지금의 나는 안다. "괜찮아 보여"라는 말조차 누군가에게는 무게가 있다는 것을. 그 말 속에 담긴 의도보다, 그 말을 듣는 이가 어떤 상태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무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용기내어 직면하고, 또 기록하기로 했다. 마음의 병을 가볍게 여기는 말이 얼마나 날카롭게 사람을 찌를 수 있는지, 그 무지와 폭력이 어떤 흔적을 남기는 지를 잊지 않기 위해.






※ 혹시 당신이나 당신의 가까운 사람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혹은 가까운 응급실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연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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