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의 기억

by 밤비


반가워요. 나를 좀 일으켜주실래요?


아주 오랜 시간 말없이 누워 있었어요. 햇살도 바람도 드나들지 않는 아주 납작한 어둠이 여러 날 지났지요. 먼지도, 쥐도, 계절도 나를 잊었지만 … 나는 그 분을 잊지 않았어요. 내게는 시간이 깃들어 있어요.





나는 2007년에 태어난 만원입니다. 나의 첫 주인은 초등학생 남자아이였어요. 아이는 내게 하얀색 봉투 집을 선물했어요. 그 안에는 나 말고도 다른 친구들도 많았어요. 잔뜩 찌푸린 미간,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던 땀방울, 차곡차곡 모은 지폐들을 몇 번이고 다시 세던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 우리는 대회 상금으로, 용돈으로, 심부름으로 모인 사이였어요. 그 아이는 우리를 하얀 봉투에 넣어두꺼운 책 사이에 소중히 끼워두곤 했지요.


2014년 겨울, 교복을 입은 아이가 떨리는 손길로 나를 꺼냈어요. 첫 외출이었어요.


“할머니, 이거… 내가 드릴게요.”

“아이고, 시상에나. 만다꼬, 니가 돈이 어디있노.”


메마르고 주름진 손이 나를 건네받았어요. 그 손은 결코 작지 않았지만, 나를 꼭 쥔 순간에 마치 내가 부서질까 봐 조심스러워졌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었어요. 두터운 손바닥이 너무도 따뜻했지요. 할머니는 나를 오래토록 품에 안고 다녔어요.





그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할머니의 품을 떠나지 않았어요. 작은 동네 슈퍼에서도, 처방약 봉투 앞에서도, 전기요금 고지서 앞에서도 나는 밖으로 나올 일이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나를 노오란 장판 아래에 반듯하게 눕혔어요. 장판 아래에는 나날이 친구들이 고루 모이기 시작했지요. 누군가의 손과 손 사이를 끊임없이 여행하는 삶보다 한 곳에 오래토록 머무르는 내 삶이 좋았어요. 다정한 할머니와 함께일 수 있어 기뻤어요.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았지만, 내겐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가 담겨 있으니까요.


사실 걱정했어요. 할머니가 좀처럼 장판을 열어주지 않았어요. 바람도, 햇살도, 소리도, 발걸음도 … 모든 것이 멈춘 날이 이어졌어요. 오늘, 당신이 장판을 들춘 건 그 모든 것이 멈춘 지 두 달 하고도 사흘 째 되는 날이에요.


…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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