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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Jul 09. 2023

마음을 상실한 사람들

사이코패스,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심장이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건장한 신체에서 뜨겁게 뛰는 붉은 심장을 소실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음의 문제다. 아니, 어쩌면 마음이 없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을 마음을 상실한 사람들이라 칭한다. 



이 세상에 이유 없는 마음은 없다. 때문에 나쁜 마음, 착한 마음, 이상한 마음, 좋은 마음 같은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갖는 매 순간의 마음은 그 나름의 이유로 모두 소중하고 의미있으며 중요하다. 그럼 이들은 어떠한가.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조두순, 이영학, 이은해 ... 적어도 내 기준에 그들은 심장이,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 속한다. 그들에게는 이유를 찾을 마음이 없다. 



그들은 외관상으로 우리와 차이가 없다. 지능은 오히려 보통 수준 이상인 경우가 많다. 정신장애가 없음은 물론 걱정, 불안, 망상, 우울, 환각 상태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의 감정은 깊이가 없다. 공감 능력이 거의 0에 수렴하는 그들은 극단적으로 이기적이어서 타인을 목적 달성의 도구로 이용한다. 때문에 타인의 권리를 철저히 짓밟는 행위를 하면서도,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수위의 끔찍하고 잔혹한 행위를 하면서도 몹시 냉담하고 그 어떤 정서적 동요도 없다.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누군가를 돕거나 이해하는 듯한 공감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철저히 계산된 위장술이다. 진짜 중요한 다음 목표를 위한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심장이 없는 것 같은 사람들. 



100명 중 1명 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우리의 가까운 곳에 숨어있다.








01. 마음을 상실한 사람들, 반사회적 인격장애


1952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범죄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사회병질자 즉, 소시오패스(sociopath)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이후 1968년에 이르러서는 DSM-Ⅲ(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 제 3판)에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을 공식적으로 등재시키기에 이른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타인의 권리를 쉽게 무시하거나 침해하는 사람들.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향하는, 잘못에 대한 양심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형사사법 현장에서는 이런 범죄자들을 두고 사이코패스(psychopath, 정신병질자)라고 부르는 일이 잦다. 



현재 정신의학에서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하나의 진단명을 사용한다. 굳이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구분짓기 위해 사회적 교류 수준에서의 차이나 유년시절의 경험을 근거로 내미는 이들도 있다. 사이코패스가 다른 사람과 아예 감정적 교류를(거짓 꾸미기는 제외한다.) 하지 못하는 데 비해, 소시오패스는 일정 수준의 공감과 사회적 애착 형성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어째서 그런 사회적 적응가가 높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걸까. 내면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역시나, 그들에게는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 소시오패스가 보이는 감정처리는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 감정을 자극할 만한 단어들을 맞닥들이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정서 반응부터 올라온다. 그러나 소시오패스는 그러한 단어들을 인지적으로(쉽게 표현하자면 이성적으로) 처리하는 것 같다. 실제로 이성적 정보처리를 할 때 활성화를 드러내는 뇌의 영역, 측두엽으로 혈류 공급량이 증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감정 처리조차 이성적인 정보처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이코패스는 과거 심리적으로 불우한 유년시절이 있는 반면, 소시오패스는 특별히 그러한 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글쎄. 그들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 혹은 그들 사이에도 구분지을 수 있는 하위 집단이 있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그들에게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하다. 







02.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로 보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사례


얼마 전, 시즌 2로 마무리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은 여전히 뜨겁다. 강영천 이야기를 잠시 해 보자(혹, 시리즈를 아껴 보기 위해 아직 완결까지 못 본 사람이라면 이 파트는 넘기고 읽기를 권한다. 내용 상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다.). 살인자라는 이유로 모두가 수술하기를 거부했던 강영천. 단 한 사람, 주여정의 아버지는 우리는 우리가 할 본분을 다 해야 한다고, 살려서 법정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하며 본인이 직접 집도하겠다고 나선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의사, 주여정의 아버지를 향해 강영천은 날카로운 메스를 휘둘러 단 번에 목을 긋는 것으로 응한다. 그 뿐일까. 현장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된 후에도 꾸준히 아들, 주여정에게 그 순간의 희열을 세세하게 담은 편지를 보내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남긴다. 지속적인 고통을 선물한다.  



시즌 2에서 강영천은, 자신이 주여정의 아버지를 죽인 이유에 대해 직접 이야기한다. 짐작컨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유를 듣고 '(살인이 나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죽일 만 했다'라던가 '아하!'하는 시원한 통찰이 온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영천은 단지 주여정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자신의 수술을 결정한 의사가 아들과의 식사 약속을 미루어야겠다고, 아들에게 라면 먹지말라고 좀 전해달라는 말을 들으며 '아, 아버지가 죽으면 그 아들이 곧장 달려오겠구나. 얼굴을 보고싶다.'고 생각했다고 설명 한다. 게다가 이 설명 끝에 강영천은 한 마디를 더 날린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죽인 건 내가 아니라 너(주여정)다.' 귀를 씻고 싶다.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심각한 수준의 가스라이팅까지. 강영천은 사이코패스의 전형이다. 이 예시 하나면 많은 사람들에게 사이코패스를 충분히 이해시키고도 남는다. 



단지 아들의 얼굴이 궁금하다는 그 목적을 위해서 그 아버지의 생명 쯤, 도구화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주여정에게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지루하고 심심한' 교도소 생활을 해소하려던 사람. 그는 왜 주여정이 궁금했을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던 걸까. 그에게는 말하지 못한 과거가 있는 것일까. 그 어떤 궁핍한 사연을 가지고 와도 그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는 잔혹한 살인자다. 초범도 아니었다(노파심에 덧붙이자면, 그들이라고 꼭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화이트 칼라 범죄자들도 많다. 유능한 뇌를 적재적소에 잘 써 먹는 케이스다.).







03. 설마, 나도 반사회적 인격장애일까


과거, 사이코패스를 측정하는 대표적 도구는 MMPI(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였다.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안하여 사용될만큼 가장 많이 연구되어 임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성격검사이다. 정서 장애를 찾아내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형사사법 단계의 위험성 평가에 사용되기도 했다. MMPI의 하위 척도 중 pd 척도는 반사회성을 측정한다. 그러나 자기보고식 검사는 피검자의 반응 왜곡 경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힘들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이에 Hare(1980)는 22문항으로 구성된 PCL(psychpaty checklist)를 개발했고, 이후 타당도 연구를 통해 20문항으로 이루어진 PCL-R을 제작했다. 현재 형사사법 현장에서 사이코패스를 진단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진단 도구는 바로 이 [PCL-R]이다.



한 때 이 20개 문항들이 대중 매체를 통해 공개된 적이 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테스트 문항에 점수를 매겨가며 자신의 점수를 확인하고,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염려하고 고민하는 경우도 있었다. 혹 그런 경험이 있다면 더 이상 염려하지 말라는 말부터 전한다. PCL-R은 자가 진단 검사가 아니다. 대상자를 면담한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검사다. 대상자의 직접 응답(면담 결과)만을 고려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동원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는 모두 다룬다. 학교 생활 기록부, 경찰 기록, 소년 전과, 교도소나 구치소에서의 생활태도, 분류심사 결과, 가족 및 친지 방문 인터뷰까지. 모든 정보들을 고려하여 전문가가 각 항목에 0~2점을 매긴다. 총 합이 30점 이상이면 사이코패스 집단, 20~30점은 중간 집단, 20점 이하면 사이코패스가 아닌 집단으로 분류한다. 단, 한국은 재범 예측력이 가장 높은 점수, 25점을 기준으로 사이코패스 집단으로 분류한다. 그러니 여러분이 스스로 매긴 점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참고로 엄인숙(엄여인)은 만점인 40점을 받았다. 유영철은 38점, 조두순은 29점, 강호순은 27점, 이영학은 25점이었으며 가장 최근의 이은해는 31점을 받았다. 모두 25점 기준을 충족시켰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굳이 설명하지 않기로 한다.







04.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선천적으로 결정되는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가.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태어나는 걸까, 후천적 경험에 의해 만들어지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나쁜 유전자와 나쁜 환경의 조합이다. 유전적으로 사이코패스가 될 만한 여건을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후천적인 환경이 건강하면 잘 기능하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유전적으로 타고 나거나, 출생시 감염 등으로 많은 위험에 노출되었더라도 풍족한 후천적 경험과 환경이 제공된다면 그 끝은 꼭 '마음의 상실'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책 [괴물의 심연]이 몇 년 전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라는 제목의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책의 저자, 재임스 팰런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알츠하이머 뇌 사진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사이코패스 전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 뇌 사진을 보고, 처음에는 분류가 잘못 되었다고만 생각했다(사이코패스의 뇌 사진 연구에도 참여 중이었다). 그러다 그 뇌 사진의 주인을 알게 된 팰런은 몹시 당황한다. 그 뇌 사진은 다름 아닌 자신의 것이었다.



그는 사이코패스로 태어나더라도 다음 세 가지 요인을 모두 갖추지 않는다면 그 특성이 발현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첫 째,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둘 째,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셋 째, 어린 시절 추기의 감정적·신체적·성적 학대이다. 돌이켜보건대 그는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에 유난히 불편감을 경험했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다소 이성적으로 정서 정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의 범죄 없이, 사람들의 뇌를 연구하는 뇌 과학자로, 사회의 일원으로 맡은 바 역할을 잘 소화하고 있었다. 그의 정상적 삶에는 가족들의 사랑이 있었다.   



15세 이전에 거짓말, 도둑질, 폭행, 무절제한 성관계 등의 문제를 일으켰던 이들 중 약 40%가 성인기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발전한다. 무책임하고 폭력적이고 어떤 식으로든 범죄에 가담하는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다. 60%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반인들의 무리에 섞인다.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기도 하고, 부끄러워 감추기 바쁠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시간을 돌려 유아기로 돌아가 보자. 어린 시절(3세 ~ 6세) 높은 충동과 낮은 억제 수준, 낮은 불안 수준과 더불어 사회적 보상에 무관심을 모습(포도알 스티커는 그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을 보였더라도 그것 만으로 그들의 미래를 단정지을 필요는 없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해당 특성은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발달 과정 상에 충분히 관찰 가능한 특징들이기도 하다. 이 아이들이 가진 특징들을 단점으로 가두거나 제한하지 않고 생산적 방향으로 성장시켜 주는 환경을 만난다면, 어쩌면 그들은 용감한 영웅이나 모험가, 상당한 수준의 역량을 보이는 운동선수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다시 한 번 더. 부정적인 환경 속에서 책임감이 결여된 성인으로 성장한다면 냉혹한 사기꾼이나 살인자가 되고야 만다. 인간의 심장을, 마음을 상실한다.  







05. 범죄심리사로서 내가 만나는 아이들


내가 경찰서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은 미성년자다. 약 10년 간,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법을 잘 알지 못해 실수를 저지른 아이도 있었고, 사소한 장난이 큰 화를 불러온 아이도 있었으며, 친구 곁에 있다가 덩달아 입건된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꾸준히 경찰서와 소년원을 드나드는 아이도 있었고, 친근하게 굴다가도 특정 질문에 돌연 눈빛이 변하며 번들거리는 본능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으며, 잔혹한 성인 범죄자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수위의 범죄에 가담한 것은 물론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극단치의 사례는 제외하고)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설령 반사회적 행동을 했다 한들, 그들이 정식으로 진단받을 수 있는 진단명은 반항장애 또는 품행장애가 최선일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소위 한 때의 방황을 끝내고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그 간의 연구들이 보여주는 증거들을 고려해보건대, 끝내 마음을 상실하고 마는 이들도 있으리라 짐작한다. 나는 그들의 가족과 주변에 부디, 그들의 손을 놓지 말아 달라 부탁한다. 그들에게 지금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몇 번이고 강조하며 읍소한다. 오히려 그들의 가족이 아이들을 괴롭히는 최대 가해자라면, 있는 힘을 다해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간구한다. 이 방황의 끝에 그들이 끝내 마음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금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것을 강조한다.







글을 쓰는 동안 고민이 많았다. 나의 부족한 지식으로 인해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해보다는 오해만 커질까 염려되는 날들이었다. 부디, 이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간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믿음을 씻어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 건강한 사람들이 마음을 상실한 이들 곁에서 하루 빨리 달아날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에, 조금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갖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마음을 상실하지 않은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 비록 내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도, 볼품없어 보이는 모양새라도 잃지 않고 가지고 있는 그 모든 마음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마음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찾아가다 보면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나의 이 많은 욕심들이 그대들에게 티끝만큼이라도 전해지기를, 오늘도 마음을 다해 바란다.






* 이 글을 쓰는 동안 [이수정 저, 최신 범죄심리학(4판), 학지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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