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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Jul 09. 2023

지금은 심리학 강의를 합니다만,

아름다운 기적을 꿈꾸는 나





"아, 나도 다시 태어나면 선생님을 할까 봐. 방학이 있는 삶이라니, 최고다. 진짜!"


이른 아침, 부산하게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이 한 쪽 발에 양말을 신다 말고 푸념하듯 한 마디를 툭 던진다. 느긋하게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유난히 더 축 처진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일단, 다시 태어나야 가능한 거네?"

"그러게, 이 생은 이미 늦었고."


평일 아침,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출근 준비를 하는 본인에 비해 방학을 기점으로 여느 때와는 다른 일상을 누리는 내가 못내 부러운 표정이다. 그렇다. 방학이 있는 삶, 남편 말이 맞다. 강의를 하면서부터 쭉 그랬다. 나의 1년은 크게 학기 중 일정과 방학 중 일정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지난주를 기점으로 모든 과목의 성적 처리를 마무리했다. 7월 초가 되면 보통 1학기의 일정이 끝나고 본격 방학이 시작된다. 초중고등학생보다 대학생의 방학은 상대적으로 길다. 대학생의 방학 기간은 곧 교수(시간강사)의 방학 기간이기도 하다. 9월 첫 주, 2학기 개강 전까지 나도 여름 방학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하는 남편과 그 곁에서 쫄랑쫄랑 신나게 등교하는 초등학생 아이를 배웅하고서 거실 소파에 앉았다. 한 학기 동안 정신없이 몰아쳤던 모든 일과들이 꿈처럼 느껴진다. 이 적막한 고요함이 평온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내 것이 아닌 양 매우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지난 몇 달간 어떻게 그렇게 빠듯하게 살았나 싶다. 


남편의 부러움에는 '방학'이라는 이름이 주는 자유가 묻어있다. 애석하게도 현실은 좀 다르다. 방학과 동시에 강의와 관련된 모든 일정이 멈추기는 했지만 마치 휴가를 떠나듯 방학 내내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다음 학기 강의 준비를 못 본 척, 덮어둘 수 없는 노릇이다. 보통 대부분의 대학은 이 시즌이면 이미 2학기 강의 일정이 다 결정되어 있다. 올해 2학기에는 1학기보다 강의가 하나 더 늘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풀(full)로 채워진 일정을 떠올리자 괜히 목울대가 뻐근하다. 아, 모르겠고 일단 며칠간은 좀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나의 방학을 부러워하던 남편의 표정이 무안하지 않게 짧디짧은 여유 정도는 보란 듯이 편히 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커피 한 잔을 내려 노트북 앞에 앉았다. 부팅 중인 화면을 멍- 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의 이 삶은 사실, 과거의 내가 조금도 그려보지 않았던 생경한 모습이라는 생각. 


어린 시절, 나는 갖고 싶은 직업들이 참 많았다. 치과 의사, 아나운서, 외교관, 스튜어디스, 작가 ... 그런데 그 목록들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직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선생님'이었다. 아니. 언급되지 않은 것은 고사하고, 사실 하기 싫은 직업 목록에 1번으로 들어가는 것이 선생님이었다. 학창 시절, 곧잘 좋은 성적은 받던 나를 두고 엄마는 늘, 엄마 기준에 안정된 여성 직업인 선생님을 언급하며 은근히 내가 커서 선생님이 되기를 기대했건만 나는 이상하게 선생님만은 하고 싶지 않았더랬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소위 선생 복이 있는 아이여서, 학창 시절 내내 내가 만난 모든 선생님들은 심지어 하나같이 다 존경할 만한 멋지고 좋은 선생님들이었다. 선생님들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나 편견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남편의 표현처럼 방학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강단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학 강의를 하고 있다.






심리학을 전공으로 삼았을 때도, 학부 1학년 때 본격적으로 심리학에 몸을 담겠다 결정을 했을 때도, 대학원에 진학을 했을 때도, 심지어는 석사 과정을 끝마치자마자 박사 과정에 원서를 넣을 때조차도 내가 강의를 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다른 선배들처럼 연구소에 취직을 하거나 기업체에 갈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구체적인 미래를 그려볼 여유도 없었다. 눈앞의 어마 무시한 공부와 연구들을 해 나가기도 벅찼다. 어떻게든 되겠거니, 당장 눈앞에 일들부터 해결하자는 심산이었다. 


박사 과정 수료를 할 때쯤, 지도 교수님께서 나를 불렀다. 심리학 교양 강의를 한 번 해 보겠냐는 제안을 하기 위함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내가 강의를 한다고? 내가? 왜? 어째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것 같다. 조금도 예상치 못한 제안 앞에서 실은, '기회'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올렸다. 교수님이 믿고 맡기신 만큼 질 좋은 강의를 하고 싶은데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계속 했던 것 같다. 내 삶에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기회로 다가왔다. 






첫 강의를 한 것이 2015년, 내 나이 20대 후반이었다. 1학년 대상 교양 과목이었지만 3, 4학년도 종종 섞여있는 강의였다. 즉, 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학생들도 강의실에 섞여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데, 괜히 그 나이가 강의를 하는 데 큰 흠이라도 되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나이 들어 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옷차림이나 화장 같은 것에서부터 말투나 행동거지, 사소한 태도까지. 지금 생각하면 퍽 우스운 노력이지만, 그때는 몹시 진지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을 만큼 이제는 정말 나이가 들어버렸다. 이제는 나이 때문에 너무 거리감을 느끼지 않기 않기 위해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실정이니 참 아이러니하다. 


올해로 강의를 한 지  9년 차.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공짜로 먹는 나이 말고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궁금한 세월이다.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강사라는 직업이 퍽 좋다는 것. 강의를 하는 동안 분비되는 아드레날린 수치는 거의 황홀경에 가깝다. 이슬아 작가는 작가가 마감을 끝내고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을 두고 마드레날린이라 칭하던데, 내 입장에서는 강의 내내 분비되는 강드레날린 혹은 강의레날린쯤으로 보면 되겠다. 비로소 작품을 끝내고 터지는 마드레날린과 달리, 강의의 모든 순간에 몰입하기에 터지는 강의레날린이라는 점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강의를 하는 동안 나를 향하는 많은 이들의 시선이 참 좋다. 어린 시절부터 들끓었던 관종의 피가 뜨거워지는 보람 덕분이기도 하고, 그 모든 순간의 시선들이 쏟아내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실시간으로 읽어내는 기쁨 덕분이기도 하다. 내가 강의하는 학문이 심리학이기에 더욱이 그러하다. 나를 향한 시선들에는 학생들의 다양한 사연이 담겨있다. 새로운 사실에 대한 깨달음과 감탄이,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며 흘러내리는 후회나 위로가, 현재의 자신을 고스란히 바라보는 따뜻함과 수용이 넘쳐흐른다. 그 사소하고 위대한 순간들을 마주하며 강의를 할 수 있다니,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이란 말인가. 


(덧붙여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방학이 있는 삶이라는 점은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큰 메리트가 없다.)  






과거의 내가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던 선생님으로서의 삶을 산다. 심지어 마지못해 수습하듯 해 내는 직업적 삶이 아닌, 매 순간 몰입하고 만끽하는 직업적 삶을 누리고 있다. 누군가를 단순히 가르치는 일은 내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부족한 지식을 나누고 그들에게 공감하는 일은 누구보다 꼭 맞는 내 일이었던 것이다. 매번 만나는 학생들에게 세상에 이유 없는 마음은 없다고 전한다. 결국 그 사소한 마음들의 이유를 찾을 수 있기를, 모든 마음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품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강의를 한다. 매 학기, 새로운 얼굴들을 마주하며 그 간절함으로 준비한 강의를 전한다. 마음을 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의 나는 또 미래의 나를 그리기 힘들다. 그럼에도 그 무엇이 되었건 아름다운 기적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구리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마법에 가깝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기적은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그만큼 한 인간이 변하는 것이 몹시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를 통해 누군가, 미약하게나마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은 강의를 통해 그 기적들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중이라면, 미래에는 또 무엇을 통해 아름다운 기적을 그리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그대들의 삶에 아름다운 기적으로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강의를 한다. 마음을 전한다. 아름다운 기적을 꿈꾼다. 예상할 수 없는 미래의 나와는 별개로, 예상 가능한 현재의 나는 오늘도 여전히 다음 강의를 위한 노력으로 가득 차오른다. 나의 이 방학은, 다음 강의를 위한 짧은 쉼이자 충전일 터. 끝없는 여유로움 대신 다음 발걸음을 위한 도약대로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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