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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Jul 16. 2023

아름답다: 매 순간 나다운 모든 것들

아름다움에 관한 나만의 단어 사전





쓱쓱, 엄지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천천히 쓸어 올린다. 별생각 없이 SNS 속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새로운 피드들을 훑던 차였다. 멈칫, 한순간 손가락의 기계적인 움직임이 멎었다. 숨을 고르며 자세를 고쳐앉는다.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아름답다'의 어원에 대한 피드였다. 


아름답다는 말에 대한 어원이 여럿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거늘, 이 설명은 처음이다. 그런데 이제껏 들었던 그 어떤 어원보다 가장 마음이 끌린다. 설레는 마음으로 나만의 단어 사전을 촤라락, 펼친다. 이 멋진 단어를 정갈하게 담는 순간이다. 


15세기 [석보상절]이라는 문헌에 따르면, 아름답다에서 '아름'은 '나'를 뜻한다. 아름답다는 말은 곧 '나답다', '나와 같다'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세상에. 그저 존재 자체로도 아름다운 말이 그 빛을 더한다. 내가 나다울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아름답다'라고 표현 가능하다. '나'라는 주체가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모든 대상에게 허용되는 광범위한 형용사인 셈이다. 갑자기 개안이라도 한 듯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들 투성이다. 이 넓은 세상 아니 이 망망대해 우주 속, 나다운 게 지천에 깔렸다. 나는 어디에든 있다. 아름답게. 






이 새로운 어원을 받아들이고 나니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물음이 한결 더 편안하게 스민다. 4년 전, 거대한 우울의 파도에 휨쓸린 나였다. 그 때 나는 나를 잃은 상태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한 간단한 질문에도 쉬이 입술을 옴짝달싹 못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누구인지 한순간 길을 잃었던 것이다. 아니, 길조차 사라져 있었다. 열심히 육아를 하는 동안 나는 철저히 나를 지웠다. 내게서 나를 지운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심리학에서 우울은 마음에 걸린 감기라고 표현한다. 누구나 쉽게 걸릴 수 있고, 또 누구나 쉽게 나을 수도 있다. 한 번 걸린 마음의 감기는 잠복기를 거쳐 또 다시 약해진 삶의 틈새로 비집고 들어올 때도 있다. 다행히도 지금 나의 마음은 꽤 건강하다. 우울의 긴 터널을 스스로 회고하고, 남들에게 편히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좋아졌다. 다시 마음의 감기에 걸린다 한들, 조금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나다운 것들에 대해 떠올려본다. 세상의 모든 단어를 끌어온대도 부족하다. 이 우주가 곧 나고, 이 우주가 곧 아름다움 투성이다.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 모든 순간에 나는 산산조각 찢기고, 흩어지고, 또 옅어진 나의 조각들을 주워 담기 바빴다. 매 순간 나는 나답게, 아름답게 흘러가고 있었는데 그 당시 나는 오랜 시간 쌓아왔던 과거의 내 조각들에만 심취해 있었다. 마치 그게 전부인 양 현재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때의 나도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었는데, 아름다움을 눈앞에 두고도 놓치는 눈 뜬 장님이었던 것이다. 아쉬움 가득한 기억이지만 그마저도 좋다. 그것도 나다운 시간이었다. 






지금의 나는 몹시도 아름답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 분명 다를 것임을 안다. 같은 듯, 다른 듯 모든 삶의 흐름 속에 아름다운 내가 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나는 아름답게 존재한다. 마음의 면역력이 꽤 높아졌다. '마음의 감기쯤, 걸릴 테면 걸려보지' 싶은 우쭐함도 생긴다. 고백컨대 나의 이 거창하고 우쭐한 아름다움에는 많은 이들의 손길이, 눈길이, 마음이 녹아있다. 혼자 읽는 책에서 함께 읽는 책으로 나아가자 손을 내밀었던, 그럼으로 인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시나브로 깨닫게 해 준 H 언니. 우울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내가 외롭지 않게 묵묵히, 그러나 누구보다 든든히 곁을 내어준 남편. 나를 위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흔쾌히 나누어주었던 좋은 이웃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며 만났던 무수히 많은 시간 속 또 다른 나. 그 모든 마음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름다운 마음들이다. 


[아름답다: 매 순간 나다운 모든 것들] 새로운 기록을 어루만지며 마음 속 단어 사전을 덮는다. 아름답다. 나도, 그대도. 모두가 각자의 아름다움 속에 싱그럽게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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