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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Nov 06. 2023

용의자의 거짓말을 탐지하라_1

범죄 현장 속, 거짓말 탐지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들




"거짓말 탐지"라고 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심상이 하나쯤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심상 대부분은 영화, 드라마 등의 대중매체가 그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일조했을 터이고, 개인적인 직간접 경험과 상상이 덧붙어 세부적인 이미지들이 구체화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가장 빈번하게 대답하는 거짓말 탐지 현장은 이런 그림일 것으로 예상한다. 답변하는 사람과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 일방경(일방투명경: 한쪽에서 보면 반대쪽의 물체를 볼 수 있으나, 반대쪽에서는 한쪽의 물체를 볼 수 없도록 제작된 거울) 뒤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의심받는 사람은 몸에 몇 개의 선이 정신없이 연결되어 있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질문들에 차례로 대답을 한다. 질문하는 사람 옆에는 복잡한 그래프를 그리는 기계가 실시간으로 바삐 작동하는 중이다. 그런데 잠깐. 특정 질문과 대답에서 그래프가 갑자기 요동을 친다. 거짓말이다. 당신이 범인이로군! 


거짓말 탐지의 가정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 간에 심리적·행동적·생리적으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거짓말에 대한 단서는 다양하게 탐지할 수 있다. 화자의 행동에서 단서를 찾는 행동적 접근, 생리적 각성을 측정하는 정서적 접근(폴리그래프), 인지적 과부하를 측정하는 인지적 접근(뇌파 검사)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거짓말 탐지를 떠올릴 때, 일반적으로 폴리그래프를 떠올리기 쉬웠는데, 알고 보니 생각보다 복잡한 세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문단 처음 언급한 거짓말 탐지의 가정을 다시 한번 더 떠올려 보자.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 간에 다른 반응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 간에 차이가 있으려면? 그렇다. 거짓말에 대한 처벌이 불명하고, 진실이 탄로 났을 때 스스로 입게 되는 개인적 손실이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령 거짓말을 하더라도 심리적·행동적·생리적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01. 나는 너의 거짓말을 알고 있다: 용의자의 반응과 행동 분석


오늘은 세 가지 거짓말 탐지 기법 중 가장 간단히 다룰 수 있는 첫 번째, 행동 분석부터 다루자. 


소위 베테랑 수사관, 유능한 프로파일러의 자격 요건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꼽는다. 첫 째, 심리학적 기본 지식을 토대로 한 마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둘째, 논리성과 객관적인 분석 능력. 셋째, 범죄에 대한 직관력. 이것과 관련한 논쟁은 다음번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어쨌든 면담 과정에서 용의자의 반응과 행동 분석은 바로 이들의 능력에 달려 있다. 물론 경험을 통해 쌓은 지식만큼이나 끊임없는 배움과 훈련을 통해 쌓은 지식들이 함께 뒤엉킨 결과물이다. 아래의 행동 단서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1) 얼굴: 시선 회피

가장 대표적인 거짓말 단서로 떠올리기 쉽다. 어딘가 부적절한 남편의 태도를 보다 못한 부인이 쏘아붙인다. "당신, 왜 내 눈을 똑바로 못 쳐다봐?" 이런 비슷한 경험들, 다들 한 번씩 있을 것으로 예상해 본다. 

시선을 회피하거나 시선 접촉이 흐트러지는 것은 거짓말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이 부부 이야기는 남편 전담 거짓말 탐지에 도가 튼 베테랑 부인의 대표적 예시이다. '평소와 다르게' 자신의 눈을 피하는 남편의 시선 회피를 포착한 것이다.

그렇다. "평소와 같은가, 다른가" 이것이 핵심이다. 내 앞에 있는 이 사람, 원래도 시선 접촉이 불안정하고 어색한 사람이라면? 그럼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늘따라 내 눈을 똑바로 못 쳐다보는 게 아니라 원래 타인의 눈을 잘 못 쳐다보는 사람인 것이다. 용의자 신문 현장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똑같이 적용된다. 


2) 상체: 천돌을 만지거나 가리는 행동

천돌은 좌우 쇄골 사이에 오목하게 들어간 곳을 말한다. 이곳으로 상대의 손이 움직여 만지거나 가리는 행동을 한다면, 혹은 장시간 그 주위에 머무르고 있다면 거짓말의 신호로 의심해 보아도 좋다. 응용 버전으로는 목걸이를 만지작 거리는 행동, 넥타이 매무새를 고치는 행동 등이 있다. 그런데 앞서 첫 번째 단서와 마찬가지로 그 쪽에 손이 가는 것이 습관인 사람인지, 갑작스레 그런 행동을 드러냈는지가 중요하다. 평소에도 천돌 주변에 손이 빈번히 머무르는 사람이라면 특별한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갑작스레 천돌로 손이 갔다면 그 행동 전후에 쏟아진 질문이, 혹은 지금의 순간적인 상황이 상대를 불편하게 했다. 

그렇다. 이 행동을 갑작스레 했다고 해서 지금 상대가 거짓말을 한다고 곧장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러한 행동이 시사하는 바를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이렇다. '나는 지금 좀 불안해', '불편한 마음이 들어', '걱정되는 것이 있어' 등이다. 즉, 상대가 갑자기 천돌을 만지거나 가리는 행동을 했다면 적어도 현재 불안하고 걱정이 되는, 상당히 불편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악의가 있는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당신을 위한 서프라이즈 선물이 들킬까 겁이 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3) 하체: 다리를 꼬거나 의자다리에 발목을 걸치는 행동

갑자기 앉아있는 상대의 하체를 보겠다고 다급히 책상 아래를 쳐다보는 실례를 범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자연스레 움직임을 통해 상대의 현재 하체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거짓말 탐지에 퍽 도움이 된다. 여전히 맥락은 같다. 상대가 갑작스럽게, 평소와 다르게 그 행동을 하느냐는 것이다. 누군가가 평소에는 그렇게 잘 앉지 않는데, 오늘따라 처음부터 의자 다리에 발목을 걸고 의자와 한 몸이라도 될 것처럼 고정하고 있다면? 조금도 허점을 들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나는 그 어떤 신체적 단서도 너에게 흘리지 않겠다는 굳은 의사 표현인 셈이다. 

이 단서도 두 번째 단서와 마찬가지다. 곧장 이러한 행동이 거짓말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상대는 현재 상당히 불안하고 불편한 상태이며, 긴장을 억제하려는 시도로서 이러한 행동을 택했을 것이다. 그 이면에는 거짓말이 숨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모종의 이유로 현재의 불편한 감정들을 제어해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일 수도 있겠다.






간단하게 살펴본 앞서의 행동 분석 단서들 외에도 다양한 단서들이 존재한다. 그 모든 것을 나열하자면 책 한 권은 거뜬히 채우고도 남는다. 그러나 우리의 궁금증은 거짓말 탐지이지, 행동 분석이 아니므로 대표적인 세 가지만 다루고 넘어가자. 


앞서 서술한 것처럼 용의자의 반응과 행동을 두고 진실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핵심 요소 두 가지가 있다. 첫 째, 기저선 파악이다. 용의자와 수사관의 관계는 사실 동거동락하는 남편과 아내, 오랜 시간을 함께한 연인, 친구 사이가 아니다. 따라서 수사관은 용의자와 신문 과정에서 초반부에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친밀하지 않은 낯선 이에게 나의 많은 이야기를 사사건건 털어놓을 사람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상호 신뢰관계를 의미하는 라포 형성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더불어 라포 형성을 위한 여러 질문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상대가 평이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안정된 상황에서 보여주는 기본 행동 패턴을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 시선 접촉은 어떠한지, 신체의 움직임에 특이점은 없는지, 습관적인 행동은 있는지 등등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한 뒤 이후 갑작스러운 변화가 나타나는 행동을 감지해 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용의자의 갑작스러운 특정 행동은 진실 여부를 알려준다기보다는 불안, 불편, 긴장상태에 따른 결과값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특정 몇 개의 행동만으로 상대의 거짓말을 완벽히 탐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인간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복잡한 우주이지 않은가. 따라서 행동 단서를 발견했을 때, 그 기저에 불편함이 안개처럼 깔려있음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하다. 어떤 질문과 상황에서 그 행동이 나왔는지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 스텝을 밟으면 된다. 


이렇게 보면 용의자 신문 과정은 실시간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강도 높은 노동에 틀림없다. 고도의 관찰력과 집중력, 그리고 어쩌면 애정에 가까운 시선으로 상대를 면밀히 관찰해야만 하는 신문 과정이다. 그럴싸하게 조도가 낮은 어두운 방 안, 밝은 하나의 조명에 의지해서 상대를 겁박하거나 강압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게임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치 기싸움이라도 하듯 용의자와 수사관이 팽팽하게 말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우리는 잔뜩 촉각을 세우고 긴장하게 된다. 실제 현장 속 그들은 우리가 간접적으로 느끼는 이러한 긴장감보다 훨씬 더 큰 중압감과 예민함, 노련함, 에너지 등을 온 힘을 다해 소모하고 있겠다고 한 번쯤 달리 떠올려 보는 것도 좋겠다.     






다음 2편에서는 모두가 가장 빈번히 떠올리는 거짓말 탐지, 폴리그래프에 대해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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