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글쓰기 4일차
어둑한 밤이 되자 비로소 선선한 바람이 존재감을 제 실체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사방으로 열어둔 창문들을 타고 경쾌하게 춤을 춘다. 하루종일 움직이지 못했던 찌뿌둥한 몸을 길게 늘이는 고양이처럼 어디든 틈마다 바람결이 흐른다. 바람결을 따라 잔뜩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덩달아 느슨히 풀어헤친다.
얼굴에 많은 것이 드러난다. 좋고 싫음과 같은 단순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순간순간에 느끼는 무수한 생각과 감정들이 이마 주름, 눈썹, 미간, 볼 근육, 입꼬리 등을 타고 실시간 방영 되는 셈이다.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어릴 때는 쉬웠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감정에 솔직한 얼굴이 되어간다. 풍부해진 감정선과 솔직함을 강점으로 내세우기에는 세상만사 일장일단이 생각나 자꾸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런 나를 좋아하는 그대에게는 이것이 못내 행복한 애정표현 중 하나겠지만, 그런 내가 불편한 그대에게는 나를 마주해야 하는 모든 순간이 가혹했겠다. 얼굴 가득 혐오가 피어올랐음이 분명한데 입으로는 유려하게 감사인사를 던지던 오늘, 그 순간, 상대가 내 눈을 마주하고 있지 않은 것을 두고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다 할 정답이 없는 고민은 짧은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좀 더 거세진 바람결에 고민거리를 털어내 본다. 달이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