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글쓰기 5일차
그러고 싶지 않지만 아이에게 종종 화를 낸다. 엄마이기 이전에 감정이 있는 인간이고 또 부적절한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는 엄마도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다만 칼로 딱 자르듯 반듯하고 공명정대한 엄마는 아니어서 어떤 날은 아이도 충분히 납득 가능한 수준의 말일 테고 어떤 날은 예고조차 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폭풍우 같을 테다. 같이 산 지 8년 차, 아이도 어느 정도 내가 쏟아내는 화의 주소지를 안다. 눈치가 생겼다는 말이다.
물 컵을 쏟자마자 닦을 것을 찾기도 전에 화들짝 놀라며 나부터 찾는다. 현장을 발견한 나의 한숨소리가 연이어 들릴 것을 안다. 아, 지금 내가 닦을게! 다급하게 (그러나 정말 허술하게) 휴지로 듬성듬성 물기를 적신다. 서로 뒤엉켜 노는 중에는 무람없이 장난을 걸다가도 갑자기 딱 멈춘다. 지금 한 번만 더 하면 엄마의 미간 사이에 선이 그어진다는 걸 안다. 우다다다 쏟아지는 나의 폭격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되묻기도 한다. 엄마, 그게 지금 그렇게 화낼 일이야?(비슷한 버전으로는, 짜증 낼 것 까진 없잖아) 그럼 이번에는 내가 우뚝 멈춘다. 부끄러워진다. 같이 산 세월이 얼만데 얼마나 다양한 크기와 무게의 분노들을 주고 받았겠는가. 그럼에도 보통은 아이의 입이든 내 입을 통해 “미안해”가 나오는 것을 끝으로 상황은 일단락된다. 즉각적인 AS가 핵심이다. 그런데 오늘 같은 마무리에는 마음이 무너진다.
“엄마, 사랑해.” 장화 신은 고양이 눈망울로 다가오는 너. 가슴켠에 폭 파묻히는 머리통. 내 허리를 휘감아 힘주어 꼭 안는 손길.
엉엉 목놓아 쏟아내는 눈물보다 슬프다. 미안하다는 말보다도 훨씬 아프다. 사랑해가 진짜 그 사랑해가 아닌 것 같아 목이 멘다. 나는 대체 화살 끝에 무엇을 묻혀 너에게 날려버렸단 말인가. 그럼에도, 대체, 너는 왜 화살 박힌 마음 덮어놓고 나를 온 몸으로 품는가. 안녕 대신 사랑해를 남기고 학원으로 떠나버린 아이. 텅 빈 현관 앞을 한참 서성인다. 무신경한 나의 화살촉에 긁혔을 너의 상처들이 송곳 다발이 되어 심장에 깊이 박힌다. 작고 동그란 네 머리통을 조금 더 쓰다듬어줄 걸, 볼이 젖는다.
숨을 고른다. 조금 더 명랑한 표정으로 학원 앞에서 너를 기다린다. 다시 만난 너는 태어나 지금껏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맑고 투명하다. 마알간 네 얼굴이 나를 찾는다. 강아지처럼 너의 귓가에 코를 박고 킁킁댄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재빨리 돌려주지 못했던 대답을 귓속말로 흘린다. 너는 꺄르르 웃음 방울을 터뜨리며 나를 쓰다듬는다. 너의 손길에 담긴 용서를 읽는다. 비로소 평온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