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글쓰기 19일차
아빠는 대체로 기기를 다루는 모든 일에 익숙하셨다. 컴퓨터도, 카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앨범을 펼치면 (두 분의 연애 사진 앨범도 따로 있다) 내가 태어난 이후부터 일상에서, 여행지에서 셔터를 터뜨렸을 아빠를 그려보게 된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스마트폰을 들어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지금에 비해 그 때, 그 시절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였다.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만, 억지로 카메라를 챙기고 시선을 넓게 열어야만 가능한 촬영이었다.
주로 내가 주인공인 사진이지만 아빠, 엄마, 나 우리 셋이 함께인 사진이 빠지지 않고 채워져 있다. 삼각대를 사용하거나 주위 바위에 올려두고 찍었을, 조금은 어색하게 굳어있는 세 명의 사진.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었는지 잘 몰랐다. 나란히 앉아 새카맣고 작은 앵글을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이 어색하고 낯설었던 기억 뿐. 아빠는 계속해서 순간을 남겼다. 카메라로, 캠코더로, 시간이 흘러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결혼을 앞두고 남편은 거의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무뚝뚝하고 애교 없는 딸과는 달리 서글서글하고 곰살스럽게 구는 아들이 생긴 셈이었다. 남편은 주말이면 부모님을 모시고 가깝고 먼 곳으로 나들이를 계획했다. 두 분은 가타부타 말없이 흔쾌히 동행했다. 남편의 부산스러움을 즐기는 것도 같았다. 어느 날이었다. 법기 수원지를 찾았는데 (겨울이었다) 남편이 대뜸, 우리 셋을 벤치에 앉혔다. 세 사람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중앙에 내가 앉고 양쪽으로 엄마와 아빠가 앉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어찌하지 못하고 내가 양쪽 팔로 두 분 팔짱을 꼈다. 손을 끼워 넣는 당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어색했는데 막상 엄마와 아빠가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는 순간 어쩐지 몸이 더 간질간질했다. 남편이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건네는데 순간 아찔한 감각이 몸을 덮쳤다. 우리 셋, 이렇게 사진을 찍은 것이 실로 너무 오랜만이라는 걸 기억해 낸 것이었다.
아빠가 구매한 디지털카메라는 머지않아 내 차지가 되었다. 혼자 셀카를 찍거나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 누구도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IMF 시기와 맞물려 시간도 여유도 사라졌던 그 쯔음이었다. 당장 눈앞의 삶이 조각나고 부서지던 그 때. 누구도 카메라를 들 여유가 없었고, 누구도 그 앞에서 웃음을 지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으리라.
사진을 특별히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은 네모난 프레임 안에 담긴 장면이 전부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한 장의 네모난 사진은 그 너머의 것들을 모두 담고 있다. 그 날 카메라 앵글로 네모난 장면을 담았던 누군가의 온기, 그 주변에서 프레임 안의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을 누군가의 시선, 그 모든 순간을 감싸고 있던 계절의 이름과 온도 ... 한 장의 사진에는 그 무수한 것들이 모두 담겨 있다. 그 날 남편이 찍어준 가족사진은 우리 가족에게 몹시 특별한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것이 꼭 출발 신호라도 되듯 그 이후로 우리 셋 가족사진은 다시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다.) 남편은 아무렇지 않았을 일상의 부지런함이 우리 가족사진의 역사를 다시 이어주었다. 고맙다는 말로도 다 표현하기 힘든, 소중하고도 특별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