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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Sep 09. 2018

갇힌 사람은 섹시하지 않지만 섹시한 사람은 가두고 싶다

갇힌다. 가둔다.

1. ‘갇힌다’에 대해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를 나의 세계에 넣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가둔다’도 생각한다. 구속이라고 분류하면 될 것을 길게 늘여, 갇히는 양태와 가두는 양태로 굳이 나눈다. 구속의 행위가 하는 자와 당하는 자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뻔하지만 신기하게 셀프도 된다. 자아는 아담이 선악과를 삼킬 때 쪼개졌다.

2. 일반화도 싫고 보편도 싫고 상상력 부족은 더 싫지만 혼자 사는 일은 불가능하므로 세계를 ‘통’으로 인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통찰이라는 말이 괜히 있나. 그러나 표현하기로 선택한 것은 표현한다. 가치 판단의 결과다. 관계란 어떤 형태든 상호작용이지만, 규격과 일반화보다 더 싫은 건 비겁이다.

3.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인 곱슬머리 내 동생이 되고 싶어 하는 주변인들이 꽤 있었다. 엄마 아빠가 부를 때 뭐였는지는 몰라도 누나가 부를 때는 프로크루스테스였다. 호적 문제는 엄마 아빠랑 상의했으면 좋았을 걸.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나였다. 걔도 지 발은 안자르던데. 무튼 이 기질, 안팎으로 왜냐고 꾸준히 묻는 이 의심병이, 병이 아니라 다름이라는 깨닫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누가 정상이며 어디까지가 보편이고 기준은 무엇인가.

4. 문학도 철학도 베스트셀러식으로 풀어 말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자존감과 직결된다는 투다. 찌질이 6호와 연민 3호, 으휴 32호까지 인정했다. 그리고 나는 얼마간 단단해졌지만, 아무 생각 없는 멍 타임이 인생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혼자는 못 살지만 머리는 압력밥솥이 아니며 혈관은 소중하다. 오래오래는 아니어도 고령인구로 분류될 때까지는 살아보고 싶다.

5. 철창인지 상자인지 사방이 가로막혀 있는 이 크고 작은 규격들은 타인을 가둘 때도 요긴하게 쓰이지만 나 스스로를 가둘 때 가장 스펙터클하게 단단해진다. 칭찬이라고 착각하는 말들을 포함한 “내가 뭘 좀 아는데”, “내가 쟬 좀 아는데” 같은 뉘앙스의 말을 ‘뭐’나 ‘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냥 ‘니 의견’이다. 곁을 내는 선택의 문제는 잠시 미뤄두고, 내 인생은 나를 중심으로 설계할 따름이니 ‘뭐’나 ‘쟤’ 입장의 득이라면 반면교사 정도일까. 나도 화장대 포함 거울이 네개 정도 있다. 그리고 살아있는 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대자존재다.

6. 내가 직접 묻고 직접 듣지 않은 삼자에 대한 정보의 유입은 신뢰성에서 헤아려볼 때 알아도 몰라도 그만인 찌라시에 불과하다. 너의 입과 나의 입이 언론이다. 우리는 영향을 주고 받는 존재다. 뉴스인지 가쉽인지 판단 하는 것은 분별력 문제이기도 하다. [귀가 있다]는 전제 하에, 내 혀를 떠나 다시 내 귀로 들어서는 말들은 ‘나’ 일뿐, 그 외의 무엇도 아니다. 글은 말 할 것도 없다.


7. 갇혀 있는 사람은 섹시하지 않지만, 섹시한 사람을 만나면 가두고 싶어 진다. 너랑 나만 사는 [나의 낙원]에 어느 여자와도 접촉할 수 없게 묶어두고 태양의 ‘나만 바라봐’ 같은 금치산자 세레나데를 립투립으로 부르고 싶은 욕망이 끓는다. 그러나 내가 만든 세계에 갇혀있는 섹시한 자란, 그가 두른 어제의 빛나던 곤룡포도 남루한 거적때기로 만드는 법이다.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매혹적이다. 그래서 가두고 싶어 죽겠..어쩌라ㄱ… 그렇다. 무라카미 류의 말처럼 모호하지 않은 관계에서는 아무런, 정말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걸 인정 좀 해. 제발. 그래도 상상하는 건 죄가 아니니까 밧줄로 꽁꽁 묶는 건 계속 상상만 하기로 한다. 일단.

와인잔이 예뻐서 와인잔을 사서 와인을 샀다.
밤은 길고 나는 좀 취했고 술은 계속 맛있으니까
남은 이야기는 언젠가 to be continue

18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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