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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Sep 29. 2018

불꽃이 오르는 길에는 지도가 없어서

행복이란 게

달돋이를 봤다.  머리 너머에서 오르는 달은 기억하는  처음 봤다. 고모는 산과 하늘의 경계에 돋은 나무들 사이로 새는 달빛을 보고 저건 무슨 별이냐고 물었다. 나는 오겹살을 입에 밀어 넣으며 고모 쟤가 달이래요 라고 말했다. 작은 엄마는 많이 먹으라고  이름을  불렀다. 작은 엄마가 오늘 부른  이름을  합치면 올해 설부터 추석까지 엄마가  이름을 부른 횟수의 다섯 배는  거다.


 년을 꼬박 써서 집도 지은 우리 아빠는 출신이 다른 고철 덩어리들을 조립해 기똥찬 바비큐 그릴을 만들었다. 아빠는 작은 아빠와 고기를 구우며 고기가 많이 있다고 했다. 오겹살 하나를 입에 넣을 때마다  뒤에서  센티미터씩 올라오는 달을 바라보며 술도 없이 취했다. 조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고등학교 3학년 작은아빠 딸은 엉엉 울다 체해서 활명수를 마시고 손을 따는 작은 소동을 벌이더니  안으로 들어가 마저 울었다. 동갑내기 막내 고모 딸이 남자 친구랑 싸웠다고 작게 말하자 엄마는 어째 우는  아파 우는 폼이 아닌  같더라니 혼잣말을 하고는  먹으라며 지치지도 않고 딸의 이름을 부르는 작은 엄마를 타일렀다.


바보. 오늘 같은 달을 남자 친구 때문에 우느라 놓치다니 바보다. 하기사 나도 달이고 별이고 사라지든 말든  사람이 나에게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너무 아파 얼굴을 묻고 우느라 하늘을 잊은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너는 열여덟이고, 처음 사랑을 하고,  아이의 가슴으로 달음 하기 바빠서 저게 달인 줄도 모를 거다. 나도 너처럼 마음이 아플  몸도 함께 아프면 누군가에게 기꺼이 안길  있을 텐데. 그러나 그럴  없다. 젓가락 사이에 고기를 꿰고 고기 너무 마시써 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장작 타는 고요 사이로 퍼지자 엄마가 아빠가 모두가 웃었다.


제이 스치는 바람에 청아한 이선희의 목소리가 울리다 끊겼다. 시골 와이파이는 명사가 아니라 의문문으로 해석하는 편이 낫다. 아빠는 머쓱하게 엄마에게 핸드폰을 내밀고 엄마는 해결사처럼 핸드폰을 집어 들어 이리저리 만져보지만 재생이   없다. 노래가 멎은 자리에 풍경이 들어선다. 하늘에는 조금    주위로 빛이 부옇게 번져있고, 젓가락 지척에는 아빠가 구워준 오겹살이 있고, 여기에는 당연히 있을 곳에 있다는  서늘한 가을바람 사이에서 외투를 여미고 둘러앉아 밥을 먹는 우리가 있다. 아빠는 아쉬운 눈길로 핸드폰을 바라보고, 엄마는 아빠의 핸드폰을 손에   태연하게 사촌 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나는  핸드폰이 결국 나에게  거라고 예감하며 머릿속에서 셔터를 누른다.


행복이, 장작 위로 오르는 작은 불꽃같다. 이곳에 피어오른 불꽃은 금세 사라지고 저곳에서  불꽃이 올라 나는  불꽃을 좇다가 다른 불꽃을 놓치기도 한다. 불꽃이 오르는 길에는 지도가 없어서 시선은 가끔  위의 허공 어디쯤에서 서성거린다. 불꽃이 비우고  자리에 머문 만큼 어두운 잔상이 지나갔다. 사라지는  까지가 불꽃의 일이다.


저녁식사는 여덟 시에 끝났지만 아빠는 장작을    올렸다. 사촌 동생들과 작은 아빠와 막내 고모는 두꺼운 파카를 입고  두시까지 밤도 굽고 라면도 끓이며  앞에 앉아 있었다. 아빠가 지켜준 불씨로 우리는 오늘 오래도록 불꽃놀이를 했다. 나는 불꽃이 나고 지는 자리를 바라보면서 조금 슬퍼하다가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장작 하나를 얹어두고 들어왔다. 바람이 좋고 달이 예쁜 밤이었다.



아빠는 결국 마당으로 턴테이블 옮겨왔고 우리는 그 겨울의 찻집을 들으며 과일을 먹었다. 턴테이블은 오늘 처마 아래에 자리를 잡았고 엄마는 난간 화분에 조화를 꽂더니 춤을 췄다. 문리버는 오늘 들어도 좋았고 달은 동그란 게 오늘 봐도 예뻤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데




*Solomon And Sheba  OST : La Reine De Saba- Michel Laurent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OST : 시바의 여왕- 미셀 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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