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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Mar 24. 2016

때로는, 길이 아니더라도.

태국&캄보디아편 #6

이제야 여행 글의 중간 정도에 도착했다. 

이렇게 천천히, 그것도 이미 일어난 일들에 대해 글을 옮기는 것은 절대로 게을러서가 아니라!

이 글들을 써가는 동안, 다시 한번 그곳에 다녀오기 때문이다. 

글이란 건 그런 것 아닐까. 

나를 어느새 그곳의 냄새 물신나는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그대가 가보지 않은 곳의 어떤 냄새를 느낀다면, 그 글은 성공한 글이다. 


#1. 한여름의 캐럴

2G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따로 또 같이'이다. 

오늘 아침은 '따로' 만끽하는 씨엠립이었다.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무리하게 짜는 것을 싫어한다. 일상을 떠나 잔뜩 여유를 느끼고자 하는 것이 여행인데, 여행 가서까지 숨 막히는 스케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할 필요 무엇 있을까. 그래서 꼭 넣는 것이, 개인 시간이다. 안전을 위해 너무 많이 떨어지지는 안 돼, 각자의 숨을 쉬는 것이다.


~라고 했으나, 혼자 있기보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 우리들은.. 

나 강변 산책 갈 건데, 같이 갈래?라는 내가 그냥 던져본 말에 수나이퍼와 소냥반이 함께 따라나섰다.

(워워~절대 싫었다는 거 아니야, 그냥 그렇다고^^) 물론, 늦잠/꿀잠을 사랑하는 구교는 제외하고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이리 걷고 저리 걸을까~하다가, 캄보디아에 돌아오면 꼭 가겠다고 벼르다가 씨엠립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보아놓은 블루 펌킨(아이스크림가게)에 들어섰다. 기분이다 내가 쏠게! 얼마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사치 부리는 행세를 하며 그리웠던 맛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잔뜩 흘릴 것 같은 아이스크림가게의 함정인, 하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찬송가조차 뽕짝스런 이 나라에서 익숙한 캐럴이 흘러나왔다.

바깥은 늘 그렇듯, 민소매 차림의 서양 친구들과 시원해 보이는 뚝뚝이 아저씨들이 아침을 꾸리고 있었다.

한여름의 캐럴, 기분이 묘했다.

자꾸만 겨울에 따뜻한 나라를 가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일까. 

겨울만 돌아오면 몇십 년간(?) 듣던 캐럴이, 기다리던 눈 하나 내리지 않는 이 곳에서 더 낭만적인 것을 그대는 알런지.


#2.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속으로 정해진 시간까지 구교가 나오지 않으면 제대로 윽박을 지르리라 굳게 다짐하며, 죄수 잡으러 가는 형사처럼 주먹을 꽉 쥐고 걸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희~멀건 커다란 녀석이 빙긋 웃으며 걸어왔다.

나는 바로 무장해제되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그냥 시간 맞춰 일어나 나왔다는 그 사실 하나로! 

캄보디아의 열기인지 무엇인지, 꽉 쥔 손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일까?
일단 그 사람도 나도 그 시간과 장소를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때가 아닌 딱! 그때, 무사히 그곳에 함께 도착해야 한다.
늦잠도, 사고도, 망각도 다 넘고 넘어 우리가 만난다는 것은! 기적이다.

아무렇지 않아하는 구교에게 칭찬세례를 퍼붓고, 숙소로 돌아가 준비를 한 뒤, 우리는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향해 출발했다.


2G 여행의 빠질 수 없는 코스는 '하루 온종일 자전거 여행'이다.

한국에서 여행을 다닐 때도 나는 작은 도시를 다닐 때는 꼭 자전거를 애용한다.

조금 아주 조~금 모순적인 것은(왜, 난 원래 모순 덩어리라고들 말하니까!) 

나는 자전거를 잘 못 탄다. 내리막길, 오르막길... 그리고! 결정적으로 멈추는 것을 잘 못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에서 내릴 적이면, 자전거를 냅다 버리고(쓰러트리고) 혼자 폴짝 튀어 내렸다.

왠지는 나도 모른다. 물어보지 말길.


아무튼! 우리는 어제 보아놓은 자전거를 빌리러 도로로 신나게 나섰는데,

그. 순. 간

신나서 앞정서던 나는 한쪽만 신경 쓰고 반대편을 살피지 못했고 달려오는 오토바이와 정면충돌했다. 

   하나:....._(아무 소리 안 냄)

   오토바이 주인: 크뇸 엇아이 떼~_(난 괜찮아) 

내가 박은(?) 오토바이를 괜찮다고 말해주며(?) 그는 쿨하게 떠났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야! 누나! 언니!

 아 괜찮아 괜찮아. 나 하나도 안 아파. 진짜 미안해 진짜.


여행 가서 안전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그것이 팀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알기에 내가 아픈 것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로지 너무 미안해서 웃기만 했다. 가뜩이나, 자전거라는 통제 불가한 교통수단에 더 통제 불가한 나를 실은 오늘의 여행이 내내 불안했던 소냥반은 초 긴장상태에 들어가는 듯했다. 걱정하는 팀원들에게 멀쩡한 몸을 보이니 팀원들도 그제야, 내가 박은(?) 오토바이가 멀쩡하냐며 딱 한대만 때리고 싶은 농담을 했다. 

하하. 그렇게 우리는 통제 불가한 하루를 시작했다.


지도 한 장 들고, 나름 짠다고 짠 루트로 쌩쌩 달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캄보디아의 교통은 정말 무법천지다. 

'무'법이라기 보단, 흙먼지 잔뜩 날리는 도로에, 큰 차, 작은 차,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이 마구 섞여 돌아다니니 , 이곳 교통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여행객들에겐 쉽지 않은 길일 수 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어제 뚝뚝이로 갔던 앙코르 유적지로 향하는 대로를 달렸다.

차로에는 덤프트럭들이 여간 쌔게 달리고 있었고, 나는(우리는) 인도도 없는 갓길로 자전거를 몰다 들어가고 싶은 곳이 보이면 그냥 들어가 구경했다.

그러다 한 수공예 비단 가게를 들어갔는데, 아주 친절하게 생긴 직원이 다가왔다. 

이리저리 구경시켜주는가 싶더니, 나가려는 태세를 취할 무렵 그의 눈이 번뜩!이며, 

 손님, 아주 귀하고 좋은 물건이 있는데 하나 보여드릴까요?

 네? (나는 속으로 설마.. 혹시.. 마...to the 약? 아니면. 물담배 시샤?)
  나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좋다고 대답했다.

김은지의 호기심 천국은 예나 지금이나 말릴 수 없다.

그가 비밀 커튼을 젖힌 곳엔!!! 


그냥 더 좋고 비싼 비단이 있었다. 

하. 나를 뭘로 보는가. 이 사람들이 나를 모르네. 

콧방귀를 뀌며 그곳을 나왔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한참을 달리다가 이번엔, 양 옆에 펼쳐진 숲으로 들어가고 싶어 졌다.

내가 루트를 짰고, 길을 알기..(안다고 하기 조금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만) 때문에 내가 자전거 군단의 로드 대장이었고, 이날은 내가 충동적으로 가고 싶은 어디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정말로 갑자기 핸들을 꺾어 길을 내려가 정글로 향했다. 

조금 내려가다 앞으로는 소똥과 가시밭이, 뒤로는 팀원들의 원성이 들려 아! 길이 없네 라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다시 멀쩡한 길로 돌아갔다.


길이 아닌 길을 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다리엔 꽤 길게 상처가 나고 피가 났다. (아마도 가시에 긁힌 상처인 듯하다.)
그러나 한 번씩, 크게 잃을 것이 없는 이때에는 그런 것도 아름답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까짓 거 그래 봤자, 다리에 선하나 나는 건데,
이 세상 모두가 다니는 널찍하고 편한 도로 말고 나는 가끔, 그런 길이 좋다.
가시도 많고, 소똥도 많지만. 나는 분명 보았다. 그 길로도 누군가가 지나고 있었다.

#3. 드디어 찾다.

사실, 그 대로변을 굳이 들어선 이유는 나름의 목적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아띠들의 추억의 그곳! 뿌카뿌카!

이 곳은 현지인들을 고용하여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 같은 곳이었다.

운영되는 방식도 건강하지만, 이 곳의 망고빙수는 별미 중의 별미이다.

그 망고의 꿀맛을 알려주겠노라며, 팀원들을 이리저리 굴리며(?)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했던 곳보다 한참을 와도 뿌카뿌카를 발견하지 못했고, 더 들어가면 해가 지고 위험할 것 같아

길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기도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고 했는데, 

사랑하기 때문에 먹이고 싶었고, 그래서 기도했다.

그렇게 그날 우리에겐 만나보다 더 단 망고빙수가 찾아왔다.

기도가 끝난 후 방향을 돌린 바로 그 옆이 빙수집이었던 것이다.

역시, 구하는 자에게 길은 있었다. 그랴, 이것이 망고 빙수제.

이 한영혼을 위하여,


#4. 바로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 곳에 왔습니다.

내가 여행을 하며 빠트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 곳에 왔구나라고 생각되는 인연이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잠시 쉬러 들른 나이트 마켓 앞 벤치에서 어쩌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와 눈인사를 하게 됐다.

어떻게 여행 왔냐, 어디 사람이다 라는 소개를 통해

내가 사랑하는 프! 랑! 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Bonjour!
Enchanté!   
Je m'appelle Hanna.
Et vous?

기억나는 불어를 짜내 다다다 말을 걸었다.

나의 유창한(?) 불어 실력에 놀랜 아저씨가 환한 미소로 마음을 열었고!(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여행 온 이유와 프랑스의 상황들을 나누다가, 캄보디아의 불교, 프랑스의 가톨릭 교회에 대해 물었다. 아저씨는 절에도 가고 교회도 가서 기도드린다고 했다.

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붓다나 예수는 아니다고 생각하는 아저씨.

그리고 이 세상의 최고의 가치는 물질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했다. 내가 본 파리의 사람들도 그리고 서울의 사람들도 

물질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잃어가고 있다고. 그중 가장 크게 잃은 것이 사랑이지 않을까라고.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가장 귀하고 큰 사랑을 전했다.

그 희생이, 내가 아는 가장 큰 사랑이라고.


아저씨는 좋은 이야기를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Thanks for the good news.

이 한마디를 들으러 이곳에 오지 않았나 싶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5. 재미는 있으나, 기쁘지는 않은 것.

재미는 있으나 기쁘지 않은 

이제쯤 다 느꼈겠지만, 맞다. 캄보디아 여행 자체는 나의 철저한 사리사욕 채우기였다!!

씨엠립에서 마지막 사리사욕은, 아띠들과 이곳에 왔던 때에 지나치며 우와~가보고 싶다고

라미꼬와 유선언니와 침을 흘리던 펍을 가는 것이었다.

길가에 그대로 뻥 뚫린 펍에는 마치 클럽 같은 스테이지가 안쪽에 있어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 여기야.

한국에서는 연자 맷돌에 달아 내려지기 싫어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지 아니함은'을 신조로 삼고 자유와 절제를 미덕으로 아는 내가, 외국에만 나오면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드로 호기심 천국이 총동원된다.


여기 갈까?_ 나의 던짐과 구교의 쿵짝을 우리는 시끌벅쩍한 펍으로 들어갔고,

급기야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최고 연장자를 테이블에 놓고 안쪽 스테이지로 들어가 음악에 몸을 맡겼다-고 하기엔, 좀 부끄러우니, 그냥 음악 옆에 서 있었다.


누가 갓 제대한 현역 아니랄까 봐, 대단히 아저씨스러움으로 무장한 구교가 조금 부끄러운 리듬을 타고 있었고, 누가 봐도 포카리희~수웨이트도 음악이 민망할 정도의 맑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난 춤(안무)을 추는 것은 좋아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흔듦(?)은 그다지 흥미가 없다.

한 5분 놀고 나니 슬슬 힘이 들었고 귀가 아팠다. 아직 흥이 덜 빠진 구교를 달래서 자리로 돌아왔다


재밌었어?
 응. 재밌어. 근데 기쁘진 않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것, 화려한 조명 아래서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것으로 나를 소비하는 것.

재밌었다. 그러나 그것엔 결코 '기쁘다'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방랑은 마무리 지어졌고,

아기다리고기다리던, 2G 여행의 사심 대방출의 최종 목적지인 프놈펜을 가기 위해 나이트 버스에 올랐다.


위험천만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날 나의 5 감사를 정리해본다. 감사가 끊이지 않는 이 여행, 참 좋다.

1. 박고 떨어지고 긁혔음에도 살아있음

2. 한번 사고 나면 더 긴장해서 큰 사고가 올 수 있는데, 그런 긴장 따위 옆 집 강아지나 주는 대범함

3. 우리 구교가 제 시간에 일어나 나온 기특한 사건

4. 뿌카뿌카를 찾은 것

5. 자전거 타고 달리면서 마음껏 찬양한 것

마무리: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것!


아, 진짜 마지막은 그날 그곳의 물고기들 제대로 포식시켜준 

닥터피쉬의 아버지 사진으로.
(누구라고는 안 하지만, 이상하게.. 그 만을 따르는 닥터퓌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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