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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Mar 23. 2016

우리로 물들인 앙코르왓

태국&캄보디아편 #5

지친 몸을 누이고, 우리는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미리 예약해둔 뚝뚝 아저씨와 앙코르왓으로 향했다.( 캄보디아의 모든 시스템은 구두라고 보면 된다. 소 냥반은 계약서도, 정확한 연락처도 나누지 않고 잘만 이루어지는 거래 시스템에 혀를 내둘렀다.)


2G 여행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 (워낙 진귀한 여행이라 하이라이트가 여럿이다!)

앙코르왓 투어가 시작되는 새벽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더 이상 보기 어려운 은하수가 흘러가고 있었다.

당신은 말 그대로의 우유 빛 밤길을 본 적이 있는가?

여행 중 손에 꼽는 순간이었다.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은 별 물빛 속을 사랑하는 이들과 시원하게 달리던 그 느낌. 잊지 못한다.

느리게 가다 보면 이렇게 별 하나하나가 오롯이 내 것이 된다.


#1. 나와 너

우리가 흔히 아는 5개의 탑 모양의 그림은 앙코르왓이고, 이것도 앙코르 전체 유적지의 일부이다.

이날의 여행은 앙코르의 따뜻한 커피와 크로와상을 들고 앙코르왓의 일출을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살면서 인간이 만든 어떠한 것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끼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 앙코르왓 뒤로 해가 뜨며 비추는 광경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사실, 더 장관인 것은 그것을 보겠다고 세계 각국에서 날아와 오들오들 떨며 모여있는 사람들이다.

짙은 어둠에서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앙코르 왓을 한발 뒤로하고 '사람 구경'을 했다.



그러다 금세 주위가 환해지고 잠시 쉬고 있을 때, 어느새 옆에 코끼리 주머니를 파는 꼬마가 다가왔다.

보통은 적당히 안 산다고 하면 가는데, 시장에 가면 2개에 1.5달러에 살 수 있는 것들을 3개에 만원이라고 그것도 한국말로 외치며 떠나질 않았다.


나는 동남아에서 이런 거리의 아이들만 보면 딜레마에 빠진다.

그 순간이라도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과, 장기적이고 지속적 인면에서 결국 그렇게 사주는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이나 그것을 시키는 부모(혹은 포주)가 교육을 뒷전으로 여긴다는 것. 그 사이의 갈등이 일어난다. 사실, 내가 이것 하나를 사고 말고 가 뭐 어쩌겠냐고 말할 수 있겠다마는 아시다시피 나는 나비효과 맹신자이므로,  내 하나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을 끊임없이 생각할 때가 많다.


그리고, 타깃은 늘 그랬듯 나였다. 어딜 가나 다양한 사람들은 끄는 매력이 있나 보다. 하하하

나의 마력(?)에 빠진 꼬마 아이는 3개에 만원을 외치며 거의 40분 정도를 따라다녔다. 적당히 싸면 사주고 보내는 것이 낫겠다 싶을 만큼 끈질기게 우릴 뒤쫓으며 나의 설명들을 방해하길래, 가격 협상도 시도했으나 뚝심 있게 원래의 가격을 주장하는 꼬마였다. 결국, 나도 포기하고 땅바닥에 앉았다.

쫒아내버릴 장사꾼이 아니라, 그냥 우리 동네 꼬마 아이로 생각하니 이것저것 궁금해졌다.

  왜 이 시간에 학교 안 가고 이런 거 팔러 다니나?
  부모님이 시키셨나?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 거지?
  이름은 뭐지?

그리고 물었다. 이름은 뭐고 몇 살이니? 난 한국사람이고 24살 하나야(내 영어 이름).

그렇게 우리는 물건을 팔아야 할 대상, 판매를 거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동네 누나와 꼬마로 마주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실 오후에는 학교에 가며 오전엔 나름 아르바이트식으로 투잡을 뛰는 것이었다.

부모님도 앙코르 유적지 안에서 (앙코르 유적지가 워낙 넓은 범위라서 그 안에도 똑같이 마을도 있고 학교도 있다.) 식당을 하신다고 했다.

그러다가, 우린 한국에서 온 학생 여행자라서 돈이 별로 없다고 했다. (정말로 현금이 별로 없었다.)

정말 미안한데, 너 이거 사주면 우리 밥 못 먹는다고 넌 집이 있어서 가면 밥을 먹을 수 있지만 우린 아니라고 간곡히 말했다. 그랬더니 너도 참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홀연히 사라졌다.


진작 그럴걸.

내가 이 아이를 장사꾼으로만 생각해서 피하고 말하니,

이 아이도 나를 돈주머니로 생각해서 쫓아만 다닌 것이다. 늘 기억하려고 하지만, 자꾸 잊는다.

우린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지레짐작하고, 귀를 막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배운 '지속 가능한 국제 개발'의 이론들이,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에 대한 합리적 이론들이,

때론 아무런 의미가 없을 때가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마주하는 그 순간은
국제 개발자와 빈민, 판매자와 소비자, 선생과 학생이 아닌
그냥 나와 너 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 멀었네.


#2. 아는 만큼 보이고, 나누는 만큼 깊어진다.


앙코르왓은 1층:미물계 2층:인간계 3층:신의 세상으로 나뉘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1층을 휘감은 벽 부조 그림이다.

여기다 다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 가장 재미있게 보고 느낀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련다.

1층 미물계 그림 중에는 힌두교의 창조 신화가 있다.

_태초에 선신들과 악신들이 영생을 주는 생명수를 얻기 위해 태초의 우유 바다를 휘젓고 있었다.

긴 뱀을 양쪽 끝에서 잡고 메 루산을 축으로 하여 휘젓는다. (그 과정에서 여러 다른 신들이 탄생한다.)

그렇게 나온 생명수를 나누어 가져야 하는데, 이 놈의 선신들이 꼼수를 부려 대부분의 생명수를 차지한다.

힌두교 신화에서는 악신과 선신들이 싸우면 주로 악신들이 더 힘이 세다. 악신들이 평소에 수양을 열심히 하기 때문에, 선신들은 늘 꼼수를 써서 정면 전을 피한다. 불교의 싯다르타도 사실 당시, 수양을 열심히 하던 수행자들(악신들)을 교란시키기 위해 시바가 아바타가 되어 현세에 나타난 것으로 설명한다._


앙코르 유적지를 공부하기 위해 힌두교와 불교에 대해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난 뭐든 할 수 있다면 공부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럼 알 수 있다.

자신이 배우고 확신한 것이 기준이 된다면 그것들은 재미있는 배움이 될 것이고,

아니라면 자신의 흔들림을 확인하고, 기준에 대한 재정비를 해야 할 것이다.


또 미물계에는 힌두교 신화에 중요한 여러 전투의 그림(아내를 빼앗아간 악신들과 전쟁하는 영웅), 지옥, 연옥, 천국의 그림 등 흥미로운 것들이 참 많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한국 관광객들의 여행 스타일이다.

나라가 발전하니 사람들이 해외로 여행은 많이 가지만, 그만큼 에티켓을 지키는 부분이나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유익들은 놓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1000년 유적지들에 적힌 한글 낙서를 볼 때나, 부조물에 대한 공부 보단 가장 '앙코르'스러운 곳에 가서 인증숏을 찍고 SNS에 공유하는 것이 주된 시간 소비인 한국 여행객들이 조금 아쉽다.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데, 숙소에서 한국 가서 봐도 될 매일의 소식들 대신,

제발, 제발, 날아온 이 땅의 소리와 숨결에 집중해주면 좋으련만.


그렇게 가장 길었던 미물계 탐방을 마치고 목이 아픈 2G 여행자들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물 한 모금 딱~ 들이키고 잠시 옆에 두는데, 어디서 귀여운 생명체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원숭이 모자였다.

많은 여행 끝에, 이런 곳에서 만나는 원숭이들은 사랑스럽기만 한 존재들이 아니라 조금은 위협적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하.. 내 물을 마셔버렸다!

그것도, 생수 병뚜껑을 자연스레 열더니! 마시고, 딱! 던지고 가버렸다.

아니, 뭐야. 왜!!! 왜 내 것만 또!!

하다 하다, 원숭이까지 끄는 사람이라니. 정녕 나는 피리 부는 소녀인가.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순간을 웃어넘기고, 2층 인간계로 갔다.

제사 전에 몸을 정결하기 위한 대형 목욕탕(?)을 잠시 구경하고, 3층 신계로 올라갔다.

몇몇의 사원에서 그러하듯 이 곳도, 신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신계로 올라가는 계단이 매우 가팔랐다. 사실 가파른 정도가 아니라 보조 계단을 별도로 설치한 한 곳 이외에는 절대로 올라갈 수 없었다.

머나먼 땅에서 외신 보도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렇게 신에 대한 경외감이 아니라, 이 계단을 만든 인간에 대한 놀라움으로 올라간 신계는,

올라갈만했다. 아니, 치사하게 이런 엄청난 경관을 왕이랑 제사장들만 봤단 말이야? 치사 빵꾸똥꾸다 (난 착하니까 그 풍경을 공유한다!)


새벽부터 오전 내내 우리는 2G 여행에 매료되었다!(내 입으로)

아니 이렇게 친절한 가이드가 어딨어? 돈도 안 받아, 고객 맞춤형 설명에, 공부는 또 좀 성실히 해와?

게다가 원숭이까지 불러 모으는 건 팁이랄까.

자자, 나랑 여행 가고 싶으면 줄 서라고. 조금 게으른 당신이 안 하는 공부 나 혼자 잔뜩 먹고 배불러와서

나눠줄 테니까. 라며 혼자 신이 나서 앙코르 왓 옆 뜰을 질주하며 오전 일정을 마무리했다.


#3. 잘려나간 따프롬, 그 자리엔

따프롬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지은 곳이다. 지금은 스펑나무로 인해(툼레이더에도 나온 사원 건물 사이사이에 자라는 엄청나게 큰 나무) 많은 곳이 무너져 그 번창함을 느끼기 어렵지만, 승려들만 해도 2740명 정도(승려 교육기관이었다.) 있었다고 하니, 그 화려함이 어땠을까 상상이 가질 않는다.

인간은, 한 치 앞도 모른다. 물론, 1000년은 더 알 턱이 없다.

그래 봤자 몇십 년 안에 죽을 누군가의 영원을 위해 이런 엄청난 것을 만들었다.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 흔적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것이지만 사실 이것들도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다.

무엇에 의해? 자연의 힘에 의해서.

돌 사이를 파고드는 스펑나무로 인해 복원이 불가능한 잔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아무리 나무를 잘라내도, 어디선가 자라나고 있는 뿌리들을 다 제거하기란 어렵다.

내가 불과 2년 전에 라온아띠로 이곳에 왔을 때, 팀원 4명이서 함께 사진을 찍었던, 중앙에 커다란 나무도 없어졌다.

그 앞에 앉아 물 끄러니, 반토막난 몸뚱이만 남은 스펑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래 봤자 이길 것 같으냐?
영원을 위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며 만든 이곳에 날아든 작은 스펑나무 씨앗 하나 로모든 것은 무너지고 있었다.
자연 앞에 인간은 늘 그렇다.
그래 봤자 이길 것 같으냐?


 따프롬 사원을 타박타박 돌아 나와, 식사를 했다.

점심에 먹은 카페떡럭꺼뜨꺼(캄보디아식 연유 커피)는 환상이었고,

노래 부르던 과일 롱안을 길거리에서 사 먹는 쾌감은 그 어떤 셰프의 요리보다 만족스러웠다.

불 없이, 냄비 없이, 화려한 데코 없이, 음식을 평가해줄 미식가 없이

스라스랑을 바라보며 먹는 가지도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뜨뜨 미지근한 롱안(열대과일)이라니.( 캄보디아는 냉장시설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원한 과일이란 것이 별로 없다.)


중간중간 이동하며 앙코르 유적 숲 속을 달리며 느끼는 바람과 캄보디아의 냄새.

이것들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자유가 나의 온 세포를 깨우고 심장을 휘감았다.

나는 이런 여행이 좋다.

굳이 멀리 떠나와,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맥도널드에 들어가 와이파이를 잡고 페이스북을 하기보다.

그냥 이 나라 사람들이 먹고, 걷고, 노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앙코르 유적지의 마지막 코스로 프놈바켕에서 일몰을 보려 했으나, 사람이 몰려 줄을 서야 했기 때문에.

무슨 일몰을 보겠다고 저 줄을 다 기다리나, 해가 다 지고나서야 줄이 끝나겠다 싶어서 아쉬운 대로 중간 지점 데크에 자리를 잡고 노을을 보았다.

지평선을 가릴 높은 산과 시큼한 건물들이 없는 탁 트인 지평선을 해가 물들여갔다.

다른 어떤 인조적 장치도 허락하지 않고, 오롯이 해가 순리를 따라 지므로, 하늘은 만물의 색을 혼자 지녔다.

흉내 낼 수 없는 경이로움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두 손 꽉 잡은 젊은 커플도, 크게 떠드는 중국인 가족들도,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던 우리들도.

모두 물들었다.


#4. 초조함과 자유함 그 사이 어딘가.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난 알 수 없는 희귀병에 걸려있다.

그것은! 바로!

일명 신데렐라 병이라고, 11시 반에서 12시쯤 되면 코드가 확 뽑히어 이상증세를 나타낸다.

언어가 꼬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잘 하지 못하며, 이성적 판단이나 행동은 옆 집 강아지에게나 내던지는 증세 말이다.

해가 질수록 나의 이성적 능력은 퇴보하므로 난 되도록 중요한 일은 오전과 오후 중에 다 처리한다.

더 무서운 것은, 저 시간대와 그 이후 시간대에 말하거나 일어난 일들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하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며 나답지 않은 모습들을 많이 보이니, 되도록 저시 간에 누군가와 일을 하거나 함께하는 것은 스스로 피하는 편이다. 상대방을 위하여.


그런데, 이 날, 제대로 코드가 뽑혔다.

새벽에 일어나서부터 하루 종일 말하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느라 온 힘을 소진해서, 앙코르에서 돌아올 적부터 너무 일찍 코드가 뽑혀 버렸다. 무한 고기 리필 대박식당을 가서도 제대로 실력 발휘도 못하고 밥상머리 앞에서 졸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주 정신을 놓아버렸다.

'증언'에 의하면, 술에 취한 사람처럼 제대로 걷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무질서하고 위험한 캄보디아의 도로에서 막 손을 휘젓는 등 모두를 불안하게 했다고.

나를 옆에서 꼭 붙들어준 나의 수 나이퍼, 고생 많았다.

저 누나 왜 저러냐며 평소 답지 않은 나를 보고 많이 놀란 구교와, 불안 초조로 일관한 소 냥반.

내가 다 미안해. 그런데 어쩌나, 나는 그 순간의 자유함만큼은, 그 느낌만큼은 잘 남아있는걸.


그 모습도 나다.

예전엔 좀 무섭기도 하고 싫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통제 가능한 상황들에 익숙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런 것은 뼈다귀로 여기고 던져버리고 마주하는 또 다른 나였다.

사람들을 이끌고 안내하는 사람이 아니라, 온몸에 힘을 다 뺀 나.

하지만 이제는 그 모습조차 잘 안아주려 노력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지킬박사의 모습과 하이드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때에 따라서 유용하게 나와준다면 오히려 더 풍성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지킬과 하이드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결국 한 사람이라는 것을 좀 더 빨리 인정하고 꽉 끌어안아준다면, 더 낫지 않을까.


이어지는 상념(이자 합리화)을 뒤로하고, 그대들의 미소보다 조금 덜 아름다운 천년의 미소로, 바욘 사원을 내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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