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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Mar 22. 2016

안녕, 방콕. 걸어서 국경 넘기

태국&캄보디아편 #4

안녕, 방콕.

광란의 마지막 밤(은 역시나 12시에 끝이 난다. 신데렐라 병에 걸린 나는 자야 하니까)을 뒤로하고.

우리는 방콕에게 안녕을 고했다.


아침 일찍 부지런 바지런 움직여서 태국의 국경지대에 도착했다.

여느 블로그에서 주의를 주었던 것처럼, 국경에 도착하니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사람들이 다가왔다.

'브로커'들이다!


국경을 넘기 위한 서류 절차들을 해결해 준다고 따라오라고 하여, 실제로 한번 발걸음해 본 그곳엔 버젓이 사무실도 차려져 있었다. 사실 사무실이라고 하기에 정말 민망할 정도로 책상 하나 있는 것이지만, 이 조차도 속는이들이 꽤 된다고 하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제복을 입은 이들이 가득 찬 '국경'을 내 두발로 아장아장 걸어 넘는다는 것이, 대단히 긴장되고 어려운 일이긴 하기 때문에. 그 '긴장'을 이용한다면 꽤나 벌이가 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장을 딱! 찍고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캄보디아에 발을 디디려는 순간,

또, '브로커'들이다!


캄보디아 국경에서 씨엠립까지 들어가는 것이 2시간 정도 걸리니 차를 타야 하는데, 그 차 운전수와 우리를 이어주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처음에 영어로 50달러를 달라고 했다.

(우리의 모든 지식의 총체인 블로그는 개인당 10달러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 적 있었다.)


캄보디아부터는 내 담당이었으므로, 나는 드디어 입을 열어 크메르어를 쓰기 시작했다.

나의 첫마디는,

 에이~ 봉 틀라이나. 크뇸 반 틀로압 떠으. 틀라이나. 엇미은 로이
(에이~ 아저씨, 비싸요. 나 거기 가봤어요. 비싸네. 돈 없어요)

젊은 한국인의 현지어를 들은 아저씨는 어이없으면서도 이놈 봐라 하는 표정으로 웃으며,

인당 10달러, 총 50달러보다 싼 30달러에 2시간 거리의 씨엠립까지 들어가 준다고 했다. (이때부터 나의 크메르어의 팔 할은 흥정이었더랬지.)


참고로 이건 여행을 싸고 알차게 다니는 팁인데.

어디를 가든 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고, 그 음식을 먹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행여나 한번 덤터기 씌우려다가 열심히 한국어로 말하는 외국인들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뭔가는 좀 알고 있구나 해서 사기 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깎아줄지도 모른다.

능숙한 회화 실력을 뽐낼 필요도 없이, 아주 기본적인 말만 그 나라 언어로 하더라도,

우린 더 이상 그들에게 물건을 팔아야만 하는 '관광객'이 아니다. 그 한마디가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본 아저씨의 승용차에 덜컥 올라탔다. 이 아저씨가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리란 보장은 없었지만, 이런 경우 나는 일단 믿고 본다. (그러나, 절대 모든 상황이 다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먼저 그 사람을 관광지에 있는 동남아인이 아닌, 캄보디아라는 땅에서 말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난 '인연'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해서, 이름도 묻고, 고향도 묻고, 좋아하는 음식도 묻는다. (물론, 문화적 상황에 따라 이런 질문들이 실례인 곳도 있겠으나, 생긴 것이 다른 어떤 친구가 와서 이런 것들을 꼬치꼬치 묻는다면 오히려, 귀엽지 않을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그가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인의 말이 참으로 진실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인연에, 이런 '의미'들이 부여된다면, 우리 삶은 늘 꽃 밭 속에 있겠지.


여행에서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있다.
그 사람이 나를 '대상화'했다고 해서 나까지 상대방을 '대상화'할 필요는 없다.
먼저 내민 손길이 조금 차가울 지라도, 그것은 나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두 손으로 따뜻하게 잡아주는 게 어떨까.


캄보디아의 국경에 닿기 전까지 최선을 다했던 소냥반은 안전하게 씨엠립 숙소에 도착하기까지도 우리를 '책임'지느라 한껏 긴장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르는 차에 밤에 덜컥 탔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달리는 외국인들이라니.. 

조금은 안쓰러울 정도로 긴장해 있는 이 사람을 보며 책임이란 것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책임감을 갖는다는 것'. 참 쉬운 일이 아니다. 긴장하고 또 긴장해야 할 일이다.
한 순간, 삐끗하면 나뿐만 아니라 모두의 '생명력'을 상실시킬 수 있으니까.
<먼저 안 사람,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 더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
앞서가는 그이는 뒤에 따르는 멋모르는 이들을 '살려낼'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먼저, 더 많이, 더 분명히 알고 있는 이의 의무이다.
당신이 가져야 할 책임은 무엇인가.


긴장해서 증발할 것만 같아 보이는 소냥반, 그리고 나와 소냥반을 믿고 잠이든 우리 수나이퍼와 구교.

사실 나는 아무런 걱정도 되지 않았다.( 이미 나름, 아저씨에게 고향을 물어보거나 운전 잘한다는 칭찬을 하는 등의 something을 만들어 내어 안전을 확보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잠든 수나이퍼와 구교를 보며 나는 깨어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깨어있어야 하니까.
자신의 책임을 온전히 다하느라 깨어있는 이와 '함께'함으로 힘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믿고 코를 고는 저들의 소리가 어떤 요동침으로 끊기게 하지 않기 위해,
누군가는 깨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도해야 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래서 나는 늘 남들보다 조금 더 보는 것이 많을 수 있었다.

깨어있었기 때문에,

달리는 차 안에서 처음 만난 운전 참 잘하시는 아저씨와 한마디라도 더 해봤고,

인위적인 그 어떤 불 빛도 없는 까만 밤하늘에 말 그대로 쏟아져내리는 별들이 2년 만에 돌아온 나를 반겨주고 있음을 느꼈고,

정해진 차선 없이, 달려가는 차들 속에서 이 나라를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도 하면 서도, 차선 없이도 잘만 달리는 이 나라가 부러웠다.

깨어있다는 것은 어찌하였든 복이다.


그렇게 우리는 친절히~ 예약한 숙소 앞까지 모셔졌고, 아저씨에게 감사의 팁을 드린 후

밥을 먹으러 펍 스트릿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리웠던 파인애플 볶음밥과 망고쥬스를 먹었다.


누군가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고 했던가.

225m 째깐한 두 발로 걸어 넘어온 이 캄보디아 땅에서

기도하고 사랑하고.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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