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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Mar 22. 2016

그대가 누운 곳이, 바로.

태국&캄보디아편 #3


그대가 누운 그곳이 룸피니(룸피니 공원)

방콕 투어의 첫째 날,

짧은 기간의 여행이라서 유럽여행 때만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진 않았으나, 탁월한 태국 담당자의 선택으로 우리는 방콕 시민들의 쉼터인 룸피니 공원을 갔다.

 

여행의 묘미는 역시 공원 낮잠이므로 누울 곳을 물색하던 중, 외국 여행 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서양 체조인’ 들을 보았다. (왠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인턴>에 나온 그 체조 무리의 장면들이 어느 공원에나 보인다.)

나 못지않은 도전정신과 친화력을 자랑하는 구교로 인해 오늘도 선 행동 후 처리를 맡았다. 그렇게 태국 방콕에서, 독일인 2명과 국적을 까먹은 유럽인 한 명, 그리고 한국인 3명이 푸른 잔디에 엎드려 체조를 했다. (그렇다, 신중하고 또 신중한 한 명은 사진을 찍어주며 뒤로 빠졌더랬다.)

 어딜 가나 누구를 만나든지 '함께함'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그 시간과 공간을 의미 있게 한다. 어린 왕자와 그의 장미처럼, 크로노스의 시간은 카이로스가 된다.

그렇게 걷다 마땅한 곳을 찾아 일단 누웠다. 난 어딜 가든 일단 눕고 보니까.

그래야 그 땅의 숨결도, 하늘의 드넓음도, 그곳의 냄새도 모두 내 것이 되기 때문에.


잠깐 공원에서 한 사색을 옮겨 볼까 한다. 탁 트인 푸르름과, 여유로움은 늘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하니까.

역시나 평소 추구하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커다란 도마뱀이 지나가는 여유로운 물가에 홀로 앉아 쓴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룸피니 공원에 누워)

어딜 가나 공원이 있다.

인간은 자연과 하나 되고자 한다.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일? 인간이 아주 적극적으로 자연을 적대시하기 이전까지,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자 그 자체로서 '함께'살았다. 공원은 그때의 모습이 현대 인간의 방법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 아닐까.

인간이 창조된 대로 살고자 하는 본능적 노력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빨리 흘러가는 도시라고 해도 그 안엔 '숲'의 모형인 '공원'이 있다.

그 공원은 생명의 기능을 해낸다. 인간이 창조된 그대로를 드러내고, 느리게 걷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며 '쉼'을 누리게 한다.


하지만 그 공원에서조차 인간은 통제력을 발휘하고 싶어 한다.

가령, 흐르는 물 위의 수직으로 솟는 분수 같은 것들.

물은 '방향'을 가지고 굽이쳐 흐른다. 하지만 분수는 오직 위로만 솟아내고 아래로 떨어진다.


(공원을 둘러싸 흐르는 구정물을 보며)

흐르지 않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악취가 난다.

그런데 그 안에도 물고기들이 산다. 버젓이.

살아있고, 밥도 먹고, 결혼도 하니.

깨끗한 물에 살아봤든, 처음부터 그런 물에 살았든.

그것이 그들의 온 세상이 돼 버린 것이다.

'살아갈 수는 '있기에. 모른다.

만족해 버린다. 잊어버린다.

맑고 넘쳐흐르는 물의 생명력을.




한참 동안의 개인별 휴식을 끝내고,

다시 함께함의 즐거움을 누리려 낮잠 자는 이들을 깨워 밥을 먹었다.

그리고 밥도 먹었으니, 뛰어야지 하고 벌떡 일어나 소냥반에게 달리기 제안을 했다.

심판은, 평소 공명 정대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우리 수 나이퍼.

준비 시~작~! 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에게 꽤 많은 거리의 메리트를 준, 소 냥반.

정말 그렇게까지 이기고 싶어서 열심히 달릴 줄 몰랐는데. 아쉽게도 난 골인 지점으로 정한 나무 코앞에서 졌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눈앞에 보이는 코코넛 사체(?)를 집어 들고 투포환 던지기를 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좋다.

풀 밭 위에 누워 자고, 일어나 사색하고 글을 쓰고, 함께 밥을 먹고,

너른 들판을 미친 듯이 달리고, 흔하게 널려 있는 코코넛이 놀이가 되는.

단순한 삶이란 이런 게 아닐까. 뭐 그리 복잡하게 살아야 할까. 우리가 시간을 지내는 '공간'은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누군가는 '도시'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도 한다. 우리가 세울 공동체는 이런 공간이어야 한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공간 말이다.

 


함께함이 즐거운 이곳이 바로.

여러 가지 떠오르는 상념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와 짐을 벗어던지고, 영화 한편 찍으러 옥상 수영장을 갔다. 싱가포르의 유명 호텔 못지않은 경관을 자랑하는, 우리 밖에 없는 ‘여기가 천국’이었다.

천국이 다른 곳일까. 많은 사람들은 천국을 보석과 큰 집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그 자체를 나는 왈가왈부 할 수 없다. 안 가봤으니까. 그런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즐거운 곳이 천국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가장 사랑하는 그분이 있는 그곳은 필시,  천국이리라.

 어느새 는 수영 실력으로(여러 번의 동남아 수행과, 유럽에서의 물개 탐험으로 )

난 꽤 긴 거리를 헤엄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수영을 못하는 두 명이 묻는다.

어떻게 떠요?

_몸에 힘을 빼. 내가 가운데서 잡아 줄게. 나 믿고 몸에 힘을 빼

응! 해볼게요
(꼬르륵)

_몸에 힘을 완전히 빼. 인간은 물에 뜰 수 있게 창조되었어!

 

‘신뢰’라는 건, 이런 게 아닐까. 뜰 수 있다는 확신으로 물에 온 몸을 내어 맡기는 것.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순간, 가라앉는다. 생명을 잃는다.

그러나 그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바로 수영을 하지는 못한다. 기초부터 정석적으로 배우든, 아니면 나처럼 일단 물이라면 뛰어들고 봐서 개헤엄이든. 발버둥 치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진짜로 나름 그럴듯한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든. 신뢰는 우리가 결국엔 해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옆 사람에게 말한다.
너도 뜰 수 있어. 원래 우린 뜰 수 있거든.


그렇게 한참 판타스틱 4는 호화로운 씬을 찍으며, 우리가 이런 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이 4명으로? 이런 마음으로? 

생각하며. 이 순간에 감사하고 기뻐했다.

 

그렇게 영화를 마무리하고 돌아와

구교 배 노래자랑을 했다.(느리고 착한 2G 여행은 밖에서 돌아다니기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반드시 함께하는 팀원들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날의 담당자가 계획하고 진행한다.)

 처음부터, 노래 잘하는 둘이 팀이 되는 바람에, 나름 나머지 둘은 진정성과 호소력으로 밀고 나갔다고 전해진다. (난 그렇게 생각해.)


노래하는 구교는 늘 멋지다. 그 큰 입으로 웃으면서 노래를 한다. 그냥 하는 것도 힘든데, 웃으면서 주먹을 아주 꽉 쥐고 한다.

그래,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면 저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멋지게. 활짝 웃고. 주먹 꽉 지고.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우리 모두.


마무리 보너스는, 태국에서 만난 나 같은 인형으로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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