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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Mar 20. 2016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우리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태국&캄보디아 편 #2

태국 공항 앞, 우리를 마중 나온 버스

드디어 방. 콕 도착했다. 공항에 내려 오랜만에 동남아의 향기를 느끼며 우리를 마중(?) 나온 버스에 자연스레, 그리고 얼떨결에 올랐다. '뭐지, 이 순조로움은. 내가 다니는 여행이라면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런 생각도 잠시, 안내양이 살아있는 정겨운 버스는 초짜 태국 여행객 4명을 싣고 방콕의 밤거리를 달렸다. 버스에서 내려 우리의 태국 팀장, 소 냥반의 지시에 따라 MRT를 타고 우리가 예약한 숙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였다. 사이트에서 보았던 설명과는 달리 예약한 숙소는 눈에 띄지 않았고, 그 밤에 누가 봐도 여행객인 4명은 '우리 여기 있습니다'라고 광고하듯 시끌벅적 길을 헤매었다. 평소 신중하고 계획적인 소냥반은 미리 캡처 해온 지도에 의존하여 꼬부랑 태국어 글씨뿐인 간판을 보며 앞장섰다. 나와 수나이퍼는 이 정도 헤맴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을 만큼 외국에서 겪는 돌발 상황에 익숙하지만, 여행 자체가 처음인 구교는 이래저래 불안하고 무서웠을 것이다. 조금씩 투정과 불만의 말이 새어 나오려 했다.


함께 어딘가를 여행하다 보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 '입'이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정말로 씨가 되어 누군가의 마음속에 심기고 자라난다. 그래서 느리지만 착한 우리들의 여행은, 이 '말의 씨'를 착한 약속을 통해 다스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실제 속마음은 지치고, 힘들고, 불만 가득할지라도, 감사의 말과 긍정의 말로 상황을 대하는 것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 여행의 질을 결정한다. 여행 안에서의 '말의 씨'가 여행의 팔 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속 길을 찾아도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자, 이제는 조금 더 능동적으로 나서도 되겠다고 느꼈다. 보통, 그 도시 담당자를 최대한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그 사람을 세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간섭하지 않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이번엔 조금 다른 방식을 써야 할 때였다.


사람마다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다른데, 나는 기계와 별로 친하지도 않고 공간 감각이 뛰어나지도 않기 때문에 사람을 붙잡고 묻는다. 방콕 사람과 한마디라도 더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니까. 우리의 여행이 '느린'여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렇게 여행을 다닐 때마다, <구글 맵>을 이용하여 쉽게 길을 찾고, 유심을 사서 한국에서 처럼 빠른 웹서핑을 하지 않는다. 발길 닿는 대로, 만나는 그 누군가마다 여행 그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느리게 걸을수록, 보이는 것도, 만나는 이들도 많아진다. 그리고 그렇게 느리지만 깊고 풍성해진다.


결국 착한 방콕 시민 몇을 붙잡고 묻고 또 묻고, 그러다 안 돼서 손짓 발짓으로 전화기를 빌려달라고 하여(아니,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 귀한 폰을 빌려달라니. 참 넉살도 좋다. 이러니 우리 부모님이 날 어디다 던져놓아도 즐겁게 잘 살 거라고 생각하시나 보다.) 어렵사리 예약을 한 집주인에게 연락을 한 후, 현재 서있는 장소를 말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제대로 소통이 된 건지, 이 자리가 맞는 건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일단 다리가 아프니 무작정 길바닥에 앉았다. 우리의 맏형, 큰오빠이자 이래저래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소냥반은 앉지도 않고 서성이며 어디선가 올지 모르는 집주인을 기다렸다.

앉지도 못하는 소냥반을 잊은 채 흥얼거리다.

왠지 모르게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챙겨 온 미니 스피커를 켜고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수나이퍼도 함께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문득 이런 게 '믿음'이라는 거구나 생각했다. 잘 보이지 않고 균형감각도 없어 뒤집히면 혼자 제대로 서지도 못할 양은 목자가 필요하다.

방콕의 첫 밤에서 우리는 목자가 필요했다. 길을 잘 인도해가는 것도 목자의 중요한 책임이지만 그 길을 가는 모든 순간에 양을 지켜내는 것이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책임일 것이다. 목적지에 아무리 빠르게 도착한다 한들, 뒤돌아봤을 때 양은 다 죽고 목자 혼자 덩그러니 있으면 그게 목자인가. 그냥 혼자 길을 간 것이지. 그런 면에서 우리의 소냥반은 너무도 탁월한 목자였다.

난 걱정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 순간조차도 재밌었다. 태국이라는 땅에 울려 퍼지지 않았던 노래가, 울리고 있었다. 내가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목자는 나를 잘 지켜주었다. 그리고 그 목자는 또 그를 지키는 그의 목자에게 그 '목자 됨'이 어떠한 것인가 배웠으리라. 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믿었다. 내가 언제나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목자가 나를 그 목적지에 데려가는 모든 순간순간에 날 사랑하여 함께하고 지키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에게 그런 목자가 될 수 있다면.


뜬금없지만, 그녀가 수나이퍼가 된 이유를 설명해보련다. 길을 찾던 중, 어떤 착한 경비아저씨가 설명한 아파트의 이름 간판을 정말! 정~말 엄청난 거리에서, 그것도 얽히고설킨 전깃줄 사이사이로 보고 저격한 공로를 치하하여 내가 직접 붙여준 애칭이다. 분명히 말하자면 애. 칭.이다. 그녀의 이름과 스나이퍼의 합성어. 수나이퍼. 하. 청순한 그녀에게 딱힌 애칭이다. 작명소하나 차릴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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