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3_피렌체

알아두면 쓸데 넘치는 신비로운 잡학사전

01


다시 오랜만의 긴 글이다. 가장 바쁠 때 놓는 것이 긴 호흡의 글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조금은 슬프지만.

그래도 요즘은 기쁨곡간(오픈 준비중인 카페 및 공간 @soso_rejoice 계정 참고)을 준비하며 별스타그램에 사진과 함께 짧은 문장들은 꾸준히 써 내려갔기 때문에, 기록의 일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고 위안 삼아보련다.


하루 종일 침대 밖을 나가지 않겠노라고 결심한 오늘은 꼭 다시 '글'을 쓰고 싶었다. 소재가 먼저 생각나지 않았지만 글을 쓰고 싶어 노트북을 킨 특별한 날이다. 스피커 못지않게 좋은 소리를 내어주는 Mac님의 Jazz와 함께. 잊지 않고 커피 한 잔도 함께.


글을 쭉 써 내려가지는 않아도, 쓰고 싶은 글감은 언제나 나의 작은 생각창고=아이폰 메모에 저장되어있다. 기분 좋은 휴일인 오늘은 그에 가장 걸맞게 내가 좋아하는 '알쓸신잡'으로 글의 소재를 정했다.



02

간단알쓸신잡 분석

출처.네이버

그 프로그램(혹은 영화)을 본다는 생각만으로 이렇게 설렐 수 있을까. 약 1시간 30분, 한 화를 보며 울고 웃는다. 단순히 울고 웃는 정도가 아니라, 심연이 울렁이거나 환희에 차서 끄덕인다. 언제나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사랑스러운 존재들을 발견하는 유시민 작가의 눈빛과 그의 인생이 그대로 박힌 주름들은 내게 알쓸신잡이 보여주는 그 어떤 여행지보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전해준다.


이 모든 것은 역시나 나영석 PD의 작품이다. (물론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작가, 스텝, 출연진 등) 아마 그는 광고회사의 CD(Creative Director)를 해도 엄청났을 것이다. 같은 킬링타임용이라도 다분히 의도한 연출력과 자극성, 유머 코드 등으로 승부를 보는 연예인들의 신서유기와 자연스러운 대화, 여행이라는 컨텐츠로 전문 민간인들이 이끌어가는 알쓸신잡 모두를 기획할 수 있다는 것이 그 기획력과 캐릭터 배치력의 증거다.


그리고 방송용(?)으로 쉽지 않을 수 있는 입지 있는 전문 지식인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프로그램 속에 넣는다는 것 또한 엄청난 고난이도의 일이다. 그 융합의 역할을 유시민 작가가 해주고 있으니 그러한 키를 찾아내는 직감 또한 대단히 동물적인 것 같다. 유시민 작가는 색깔이 강하고 다양한 전문인들 사이에서 그들이 가진 지식들이 더욱 다채롭게 펼쳐질 수 있도록 질문하고 정리하며 균형을 맞춰간다. 그리고 이성과 감성 사이를 오가며 때론 눈시울을 붉히고 때론 아이같이 좋아하는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그의 인생을 역사로 보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이라면, 같이 울고 같이 웃게 된다.


수사학적으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라는 개념이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로고스는 논리로, 파토스는 감정으로, 에토스는 그것을 전달하는 화자의 인격과 삶(그 존재가 누구이냐)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다. 유시민 작가는 이 세가지면을 모두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작가이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단 꿈을 꾼다.


아 물론, 모든 우리-일반인을 대변하는 유희열 씨의 멍한 표정과 대뜸 하는 질문들 또한 이 프로그램의 치트키 감초이다.



03

알쓸신잡 3화_피렌체 편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성당_Pixabay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책 출간에 맞춰 알쓸신잡이 아테네 쪽을 간 것인지, 책 출간을 보고 나영석 PD가 좋은 대화 그림을 뽑아낸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알쓸신잡은 유럽을 돌고 있다.


피렌체라는 단어에 '꽃'이란 의미가 있기 때문에- 피렌체는 꽃의 도시라고 한다. 실제로 많은 상징물들에 꽃이 그려져 있다. 또한, 예술가들의 영원한 후원가로 불리는 메디치가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두오모 성당에 관한 이야기, 길드 상인들에 대한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한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 2가지만 소개하려고 한다.



04

미켈란젤로


나는 미켈란젤로를 좋아한다. 모든 예술가들에겐 '썰'이 존재하므로 그의 '썰'까지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한 말 때문이다.

나는 대리석 안에 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


그를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존재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직관과 그것을 실제로 빛나게 할 줄 아는 용기와 열정 그리고 실행력이라고 생각한다. 방치되어 있던 골칫덩어리인 커다란 대리석에서 다비드상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 말이다. 모든 존재는 결국 미켈란젤로를 만나기만 하면 다비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에, 이 땅에는 더 많은 미켈란젤로가 필요할 뿐이다.



05

어둠에서 광명으로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의 초입, 계단_출처. wikipidia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 성당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소담한 산 로렌초 성당이 있다. 그리고 이 안에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위해 설계한 이곳에 역시나 도서관 덕후(?)인 유시민 작가가 찾아갔다. (이런 점이 참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여행을 다닐 때 그 도시의 화려한 랜드마크보단 그 아래 작은 서점, 교회, 미술관, 도서관 같은 곳들에 오래도록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좋아하면 자꾸 공통점을 찾아 엮이고 싶은 법이다.)


이 공간의 시퀀스는 계단> 열람실> 서고(판테온 형식_천장이 돔형으로 빛을 받도록 뚫린)로 이어지게 되는데, 유시민 작가는 이 곳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둠에서 광명으로'


어둠을 상징하는 조형물들과 실제 어둡게 설계된 계단에서부터 서고로 갈수록 더 많은 빛을 받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유시민 작가가 좋아하는 '텍스트'로 설명되어 습득한 지식은 아니지만 실제 '공간을 추적해가면서 자신의 호기심을 풀고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이 감동적이라고 하는 김진애 도시 박사의 표현에 200% 공감한다. 공간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채우고 해석한다는 것, '공간 감수성'. 내가 늘 외치는 '통찰력'중 참 중요한 면이다.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가는가에 관한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리고,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공간에 들어섬만으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상대방의 마음에 심은 미켈란젤로는 역시나 천재라고 부를 수 있다. 기쁨곡간의 곡간지기가 듣는 최고의 칭찬이 ‘아 여기 그냥 이곳 저곳 김은지네.’인 것처럼-



06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인노첸티 고아원_출처. wikipidia

두오모 성당의 머리(돔형)를 설계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는 두오모를 시작으로 여러 건축물을 짓게 된다. 그중에는 인노첸티(Innocent_죄 없는 자들의) 고아원이 있다. 600년째 운영되는 유럽 최초의 어린이 복지시설이자 고아원인 이곳에는 보티첼리를 비롯하여 당대의 유명화가들의 그림도 많이 걸려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나에게도 새로운 시각을 주었다.

왜 우리는 고아원(현재는 보육원, 혹은 다른 명칭으로 부른다.) 같은 시설을 '예술'적으로 지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더 밝고 미학적 가치를 지니도록 짓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보는 고아원은 여전히 열악하다. 그리고 그래야만 할 것처럼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보면 오히려 아이들이 가진 상처를 보듬기 위해서라도 더욱 미학적 가치를 투여하는 것이 더 그 지어진 공간의 목적에 맞지 않을까 싶다. 아프니까 그 아픔을 곱씹을 수밖에 없도록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아픔으로 시작된 곳이라 하더라도 앞으로는 더욱 찬란히 빛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행복의 건축>에서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하듯, 우리는 아무리 멋진 곳에서라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언짢은 일들을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애초에 매력적으로 지어지지 않은 공간에서 벌어질 긍정적일들을 기대하기란 더욱 어렵지 않은가. 건축에도 도덕적 메시지가 담길 수 있기에, 더 많은 건축가들이 우리가 아름다움을 두어야 할 곳으로 여기지 못하는 곳까지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움이 어울리지 않는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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