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린북> 그린북 없이도 잘 살고 있습니다.

by 찬란한 기쁨주의자

**이 글은 영화 스포를 포함합니다.**


프롤로그
사랑니라도 뽑아줘야 조용히 방구석에 들어앉아 영화를 보고 타자기를 두드릴 수 있는 요즘이다.

강제 요양 중에 본 영화 치고는 꽤 마음에 드는 영화를 만난 것 같았다. 결국 엔딩 노래로 나온 주인공의 피아노 연주를 한 참 들은 후에 다시 노트북을 열고글을 썼다. 나의 친애하는 그대에게 이 글로 편지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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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음악, 당신의 뮤지션, 그건 당신만이 할 수 있어요." <영화 그린북 중. 토니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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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네이버 영화_그린북 포스터

간단 줄거리


1962년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의도적으로 매우 다른 두 사람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다른 면들을 영화 초반 부에 의도적으로 강조한다. 유색인종에 대해 몸에 밴 차별의식이 있고, 혈기가 가득하며 즉흥적인 이탈리아 출신의 토니. 타고난 기지와 주먹으로 상황 정리 및 대처 능력이 빠른 토니는 일하던 클럽이 잠시 문을 닫게 되어 새로운 일을 구하게 된다. 새롭게 소개받은 일은 천재 뮤지션 돈 셜리의 기사이자 잡일을 하는 매니저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불만으로 처음에는 일을 거절하지만, 돈 셜리는 토니가 홧김에 부르고 간 높은 액수의 주급으로 다시 토니와 계약하게 된다. 그렇게 토니는 돈 셜리 박사의 남부 순회공연에 운전기사이자 매니저로 동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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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토니는 돈 셜리 박사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많은 상황들을 겪게 된다. 화가 나서 주먹을 휘둘러 감옥에 가게도 되지만 둘은 결국 서로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게도 된다. 영화는 그렇게 아직은 흑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불편한 토니의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용기'를 낸 돈 셜리 박사가 찾아오고, 토니 부부와 포옹을 나누며 변화된 서로를 진심으로 환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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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변화시키는 인생 가이드' <그린북>


처음엔 영화 포스터 색감(민트색 차)과 제목에 이끌렸다. 그리고 영화 제목 위 서브 카피에 '삶을 변화시키는 인생 가이드' 한번 더 마음이 갔다. 이 영화가 '삶을 변화시킨다'라는 어마 무시한 카피를 어떻게 전달할까 궁금하기도 했고.


사실 이 '그린북'은 미국 상대적으로 차별이 더 심하게 있었던 (차별법 폐지 전이라 미국 전역에 차별이 존재했으나) 남부지역을 여행할 때 흑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숙박 시설이나, 해선 안 될 것들(일부 주에서는 일정 시간 이후에 흑인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이 적혀 있는 가이드 북이였다. 흑인을 위하는 것처럼 만들었지만 결국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인종차별에 대한 면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잔인하게 친절한 가이드북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토니는 집에 온 수리사들이 쓴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흑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그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는 높은 보수를 주는 흑인 뮤지션의 기사가 된다. 토니는 토니 나름대로 원칙과 품위를 강조하는 돈 셜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이 그보다 오히려 '흑인'답다고 외친다.


영화 <그린북> 장면 중

이런 토니가 그린북을 펼쳐서 활용하게 되는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둘이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그때 토니는 '환영받지 않는 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 돈 셜리를 위해 유색인종이 갈 수 있도록 지정된 숙박업소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돈 셜리 박사는 처음으로 자신이 담배 냄새를 싫어한 다는 것을 '표현'하고 토니는 대신 써주는 편지(아내에게 보내는)가 아닌 자신만의 '표현'을 찾게 된다. 가이드북으로 시작한 인생길에서 가이드 없이도 진짜 자신을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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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참 멋진 대사들과 장면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 장면이 가장 마음에 와서 박혔다. 왜 이 모든 멸시를 받으며 돈 셜리 박사가 굳이 남부 지방을 다니며 공연하냐는 토니의 질문에 함께 연주를 하는 첼리스트가 답한 말과 그 다음 장면.


왜냐면 천재성만으론 부족하거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해
영화 <그린북> 장면 중
영화 <그린북> 장면 중

우리는 모두 어디에선가, 어느 때에 <그린북>을 받게 된다. 누군지 기억도 안 나지만 어느 때가 되면 나타나 이때, 여기에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적혀있는 그린북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거기에서만 우리가 안전할 수 있을 것 같고 적힌 대로 하지 않으면 '평균 이하'가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영화 <그린북>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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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대, 지금의 <그린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지 않을 것은

'평균'이라는 것은 99나 차이가 나는 1과 100을 존중하지 않고 내버린 무지한 50 임을 기억하여

어서 이 망할 데서 나갈 수 있길- (몸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의 마음과 태도가)


흑인으로서가 아니라, 돈 셜리로.

오렌지 버드(영화 중 흑인들만 있었던 펍)에서

당연히 위스키 한잔을 올려놓고 재즈를 치는 게 아니라 쇼팽을 치는 돈 셜리로.


본인으로 빛날 용기를 내보길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그 용기에 내 마음과 그대의 마음이 움직일테니까

듣고싶다 지금 그대의 음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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