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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Apr 04. 2016

물.아일체

태국&캄보디아편 #11

#1. '물'아일체의 마법


수나이퍼 여행 목적의 팔 할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꺼꽁의 환상적인 바다.

사진으로만 보던 에메랄드 빛 해변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아침 일찍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길을 나섰다.     

거의 2시간 정도를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니,

사람의 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닿아야지만 자연은 그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 주나 보다.  

   

덜덜거리는 쪽배를 타고 가며 바다 냄새가 깊어질수록, 설레는 마음과 함께 다가오는 헤어짐의 시간들이 마음 한편으로 아려왔다.

한껏 손을 뻗어 자꾸만 바스러지는 파도를 잡아보았다. 우리의 시간들도 다시 붙잡아 지길 바라며.

쪽배를 타고 내린 곳은 2시간의 뱃길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말 그대로의 ‘에메랄드 빛’ 바다였다. 대충 몇 번의 준비운동을 하고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는 수준이 아니라 거칠 것 없는 바다에서 마음껏 수영을 하고, 구비되어있는 스노쿨링 도구를 끼고 헤엄쳐 나가 물고기들도 만났다.

평소 조선 dynasty로 불리며 남녀칠세부동석의 보수적 성향을 고수하는 나는, 티셔츠와 반바지 안에 수영복을 입고도 젖은 옷의 무게를 다 견디며 수영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때 아니면 언제 자연인(?)이 되어보나 싶어, 이 바위에 티셔츠를, 저 바위에 반바지를 벗어 놓고 물고기 마냥 헤엄쳤다. 물론! 팀원들과는 멀리 떨어져 홀로 있는 곳에서. (한번 조선 dynasty가 어딜 가나..)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고 돌아와 팀원들과 함께 스노쿨링을 즐겼다.

물속에서 마주하는 얼굴들, 마주 잡는 두 손은 더 따뜻하고 더 멋졌다.

꺼꽁의 마법 때문이었겠지. 실사는 물에 쫄딱 젖은 생쥐 4마리였으리라.     


중간에 해변가 나무 식탁에 앉아 바다 바람을 들으며, 전형적 캄보디아식 ‘차린 밥상’을 먹었다. 큰 생선과 야채 볶음, 과일들.. 행복했다.(사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눈물 날 만큼 그날의 느낌이 온몸 가득 느껴져서 지긋이 눈을 감고 뜨기를 반복하며 글을 써내려 갔다.)     


밥을 먹고도 우리는 한참을 물 먹고 뱉고를 반복하며 (사실 나만...) ‘물’아일체가 되었더랬지..     

꿈같았던 에메랄드 섬(섬 이름을 모르니, 그렇게 부르련다.)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맹그로브 숲으로 향했다.               



#2. 맹그로브 나무 숲의 비밀


                  

아무리 사진을 찍고 다시 찍어봐도, 결국에는 카메라를 든 손을 가만히 내려놓고

멍하니 바라만 보게 되는 풍경들이 있다.

햇빛과 물빛이 만들어낸 그 색감들은 감히, 사진이라는 인간의 문명에 담기기를 거부하며 찬란히 빛난다.

그럴 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최선이다.


예전에, 스위스를 갔을 때도 이런 시간이 있었다. 정말 아무런 표현조차 꾸며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바로 떠올린 것은, 함께 오고 싶은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이 날, 맹그로브 나무 숲의 모습도 그랬다.

하지만, 이미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었으므로, 내가 느낀 행복감은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사진조차 담아낼 수 없는 그곳에, 사진 속 그대들이 분명히 함께 있었다.


맹그로브 숲은 정말 신기방기한 곳이었다.

분명 바닷길을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도 안 되게 푸르른 나무들이 모여있었다.

영화 속에만 나오는 나무귀신들처럼, 팔다리가 쑥쑥 뻗어 재미나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 순간 순간을 현실감 없게 만들었다.


숲 속으로 걸어갈 수 있게 해 놓은 데크에 내려서, 산책을 했다.

아아.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아름다운 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탐욕이 흩어져있었다. 사람들이 닿을 수 없었던 곳에서는 그리도 찬란히 빛나던 나무와 잎들이것만,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데크가 있는 족족 쓰레기들과 그 썩은 물로 고여있었다.

아아. 내가 본 그들의 생동감은 어쩌면, 분노에 찬 외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으로부터 이렇게 멀리 떠나온 곳에서도 사람들은 자취를 남기고야 말았다.

이왕 이 지구에 살고 갈 거라면, 천상병 시인의 탁월한 표현처럼 '소풍'처럼 왔다 가면 좋으련만.

(하지만, 요즘 우리의 소풍은 아무 데나 휙휙 버려버리는 일회용품들로 찐한 자취가 남으니, 이제는 그 시도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3. 노을이 물들인 것은

조금 씁쓸할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배에 올랐다.

선크림을 열심히 바르고 출발할 때가 방금 전 같은데, 벌서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바다에서 보는 일몰은 언제나 환상적이다.

하늘도 바다도 우리도 오색 빛을 냈다.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이 만든 색은 결국에, 자연을 흉내 낼 뿐이다.

그러니, 아무리 그 유명한 색감의 귀재가 살아 돌아올 찌라도, 그것은 본질을 흉내 낸 형상일 뿐인 것이다.

플라톤도 그래서 그토록 이데아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를 구분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생각해보아도, 우리를 둘러싼 대 자연은 우리에게 흉내 낼 수 없는 그 깊은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었을 테니.


바다와 태양이 만나 사랑하며 만들어낸 그 빛에

우리 내 마음들도 물들고 있었다.


모든 순간이 감사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사랑하는 이들과 나란히 앉아 볼 수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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