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장마철밀크티북클럽 #1
장마철밀크티북클럽에 대하여
-
책모임을 만들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코로나 ‘언택트’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면서 ‘온택트’라는 단어도 심심치 않게 듣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이긴 하지만 더 긴밀히 연결되는 것'이라니.. 그게 가능할까요? 개인적으로 아예 만나지 않는 언-택트가 답은 아니라 생각합니다만, 어찌하였든 단체 모임이나 잦은 접촉이 어려운 이때, 보다 긴밀한 연결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휘발되는 느낌의 화상 미팅보다 오히려 찬찬히 읽고 들여다보고 내 생각을 적어야 하는 글, 그리고 다른 존재들의 글에 대한 글쓰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조금 더 느리고 수고스러운 연결을 해보려고 합니다.
1부. 고통의 곁, 그 황량한 풍경에 대하여
고통이 공동체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거부당할 때, 그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 통증이 되고 만다. 고통이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인정'을 받으려면 고통의 당사자가 굉장한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증명'받지 못한다. 하지만 깊은 고통은 우리의 언어를 파괴한다.
인권 문제에 조금 더 밀접하게 붙어 일하던 개발협력 운동가 시절, 꽤 자주 인권 변호사를 꿈꿔 보기도 했다. 내가 눈과 피부로 직접 마주한 아이들의 현실을, 쓰레기 산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강은 검은색인 줄 알고 살아가는 복수에 찬 아이들을 설명할 길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여전히 법의 언어도 경제 논리도 잘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참 복된 직업을(마케터/기획자/작가) 갖게 되어 고통의 곁에 서서 '다시 존재의 집을 짓는 언어의 가능성을 회복'시키는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된 것 같다. 고된 노동의 폭압 속에 자아와 기쁨을 잃어가는 일부의 근로자들, 땅은 본래 인간의 것이 아닌데 그 선긋기 싸움에서 밀려 한 겨울에도 신문지를 덮고 자야 하는 노숙인들,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썩어가는 고된 시신들, 서로 사랑하기보다 갈등하고 무관심한 대립의 양 극단들, 바보 같은 인간들 때문에 늘 꺾이고 더럽혀지는 아름다운 자연.... 존재의 집을 다시 생명력 있게 지어가는 회복의 일에 나의 비루한 언어가 잘 쓰였으면 좋겠다.
바로 이 장마철밀크티북클럽에서.
_비가 많이 오는 서울. 8월의 첫 월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