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에 읽는 책 추천
일주일의 허리쯤, 쉬고 싶지만 쉬지 못할 것 같은 그런 평일에 휴가를 내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마냥 읽고 쓰는 일.
#첫 번째, 만남
여유가 되면 대형 서점을 찾아 책 순례를 한다. 책 제목과 디자인만 보아도 요즘의 관심사 혹은 관심사로 밀고 있는 것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자/타칭 BF와 퇴근 후 서점에 들러 긴 시간을 책을 골랐다. 책을 좀 골라달라는 그에게 어떤 책을 읽고 싶냐고 물었다. 책이란 것도 제 때에 제 주인이 있어서 몰입감이 높은 소설책이 입맛에 당길 때가 있고, 잘 알지 못하는 세계를 탐구하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책 소풍을 하던 중, 유독 눈에 띄는 한 권이 있었다. 책의 장르나 내용도 중요하지만 안목의 존재인 나는 눈에 드는 디자인의 책을 지나치지 못한다. 최근 봤던 책 디자인 중 제일 이었다. 제목과 글쓴이가 눈에 잘 들어왔고, 큼지막한 글씨로 책 일부가 적힌 뒤표지도 맘에 들었다. 그러나 그날은 나와의 연이 닿지 않았던지 그 책을 지나치게 되었다.
공간 운영자이자 마케터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 희귀한 서울 인종으로 나는 회사 가는 것을 꽤 좋아한다. 그곳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닮고 싶은 동료들, 커피, 우리의 손길이 닿은 공간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고른 약 1000권의 책. 다시 심각해진 코로나로 몇 가지 모임을 취소하게 되어 여유가 생겼고, 이 때다 싶어 적당한 소설을 찾아 빠져 들고 싶었다. 책장을 살피던 중 익숙한 색감과 두께의 책을 발견했다. 그때 지나친 책이 제 때 돌아온 것이다. 주저 없이 읽기로 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_양귀자 장편소설]
#두 번째, 만남
목요일의 휴가, 느긋한 아침을 맞아 샐러드와 커피 포리 하나를 아침으로 먹고 침대에 앉아 책을 집어 들었다. 367 페이지의 얇지 않은 책을 두 시간 만에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담담하게 점심을 차려 먹었다. 그러다 몇 숟갈 들지 못하고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밥 먹다 말고 우는 스스로가 당황스러울 새 없이 눈물의 이유를 알 것 같다 생각했다. 김민주(*소설의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겪어보지 못했지만 겪어본 삶에 대한 감(感)이었을 것이다.
나는 날고 싶었다. 날고 싶어 하는 사람은 반드시 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 날개를 말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나는 세상의 모든 젖어있는 것들에 대한 강한 연민을 품었다. 내가 대학에서도 하지 않던 심리학 공부를 시작한 것도, 나아가 고통받는 여성의 폐쇄적 심리를 공부의 주제로 삼은 것도 사실은 내 운명의 행로가 그렇게 시켜서였다. 그리고 난 날았다. 분명 날았다. 그렇다면 지금도 나는 날고 있는가? 내 꿈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날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맑고 투명하고 아른아른 결이 비치는, 거의 신성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그 천사의 날개를. 난 그 꿈을 이루었는가? 맑고 투명함을 실현했는가? 나는, 나는, 정말 날아보기는 했는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중에서)
소설 속 김민주는 대담하고 안쓰러웠다. 용기 있고 위태로웠다. 확고했으나 수도 없이 흔들렸다. 김민주를 지지하고 존경하던 남기는 민주의 대담하고 용기 있고 확고한 면을 사랑했다. 그러니 안쓰럽고 위태롭고 흔들리는 민주를 해방시켜야만 했고 결단했다. 남기의 행동은 민주를 '지켜야만 했다.'로 주장되지만 실은 자신에게 금지된 민주 그 자체를, 자신이 금지시킨 민주의 어떠한 모습을 파괴시킨 것뿐이다.
소설 속 화자, 소설 밖 화자는 '세상의 모든 젖어있는 것들에 대한 강한 연민'을 갖고 있다. 나는 이 연민 때문에 소설 안팎의 화자가 진정으로 세상에 나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강한 것에서 강한 것이 나온다는 것은 지극히 힘의 권력이 되는 세상의 상정 법이다. 되려, 진정한 용기의 날개가 펼쳐질 때는 그 날개를 보이며 절절히 전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 위태롭고 젖은 심지에서 나온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민주만큼 극단적인 행동은 상상조차 할 리 없고 그 방법을 지지하지 않음에도 밀려왔던 동질감은 나 또한 날개를 펼쳐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눈망울에 조금의 물방울이라도 차오르면 내가 먼저 눈물을 흘리고 마는 것은 그 말려지지 않은 날개가 금세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잘 해내야 할 때 스스로에게 흔들림을 금지시키려 한다. 그러나, 결국 다시금 나의 강함이 아니라 나의 약함이 강함이 되리란 것을 믿기 때문에 위태로움을 안고 엎드릴 뿐이다. 약할 때 강함 되시니.
성의 대결이나 성의 우월을 가리기 위해 이 소설이 쓰인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을 말하자면 상처들로 무늬를 이룬 하나의 커다란 사진이다. 함께 들여다보면서, 서로 대립하지 않고, 각자 동등한 자리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데 유용하게 쓰여할 사진이다.... 나는 가능하면 이 소설이 여성소설의 범주에서만 읽히지 않고 세상의 온갖 불합리와 유형무형의 폭력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함께 읽히기를 감히 소망한다. 그것이 삶을 대하는 진정한 예의라고 믿는다.
-1992년 여름, 양귀자-
#세 번째, 만날
우리에게 여전히 금지된 것은 무엇일까.
1992년, 내가 태어나던 해에 나왔던 이 소설을 최근에 나온 소설 인양 읽었다.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이야기.
_2020년 6월 5일 양귀자 장편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