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밀크티북클럽 #2
책.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_엄기호
제2부: 고통의 사회학_고통을 전시하고 소비하는 메커니즘에 대하여
작가는 고통이 '포르노'처럼 전시되는 사회 현상에 대해 매우 경계한다. '고통에 대해 사람들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사회적으로 주목한다는 것은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장삿거리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며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를 문화 상품으로 다루는 것을 경멸한다. 작가가 경계하는 것은 이것의 선후관계이다. 고통으로 관심을 끌려는 사람보다 이들을 겨냥한 산업과 시장이 먼저 생겨 났다는 것.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미디어와 콘텐츠에서 고통이 판매, 전시되는 현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가가 강하게 비판하는 것 외에 미디어에서 고통을 다루는 것에 대한 순기능을 이야기하고 싶다.
NGO의 홍보/마케팅 담당자로 일할 적에 후원 모금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콘텐츠를 위한 콘텐츠'가 아니라, 정말 알려야 할 내용 그래서 함께 도와야 할 내용이었다. 화장실 휴지가 없어 근처의 나무를 잘라 뒷일(?)을 해결하는 미얀마 아이들의 이야기는 '사실'이었고, 그 사실을 '스토리텔링'하는 것,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마음으로 공감하여 행동하게 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20-30대 세대에게 '콘텐츠'와 '미디어'는 고통의 곁이 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정확한 통로일지 모른다. 휘발되는 전시작품이 아니라, MZ세대는 콘텐츠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상대를 이해하고 생각한 것에 따라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콘텐츠 안에서만 왈가왈부하지 않고 콘텐츠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데, 내 인스타에는 고통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사람이 본디 겸손치 못하여, 왼손이 좋은 일을 하면 좋아하는 오른손과 손뼉 치며 같이 하고 싶어서 기어이 알린다. 세상엔 이런 일들, 이런 아픔도 있는데 우리 같이 귀 기울여 보지 않을래? 같이 해보지 않을래?
고통은 인스타그램을 타고 흘러 나누어지고, 어딘가에 닿아 그곳의 온도를 조금 높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