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말할 수 있는 공동체

장마철밀크티북클럽 #3 _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by 찬란한 기쁨주의자

드디어 왜 이 책이 '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이라는 부제(*표지에 붙어 있는)를 가지고 있는지 책의 1/3을 탈탈 털어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 제3부. 고통의 윤리학 _ 고통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곁에 대하여

#고통에 관한 글쓰기

작가는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과 동행할 수 있다고 한다. 동행이 있을 때 사람은 동행의 말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응답하면서 자신과 말과 글을 쓸 수 있으니까. (써서 고통을 표현하고 알리고 깊이 돌아볼 수 있으니) 곁에서 말과 글이 나오고, 말과 글을 통해 곁이 생긴다고 말한다.


무언가 생략된 부분이 한참 많아 보이는 파트였다. 그동안 고통을 직접 겪는 이는 언어 능력이 파괴된다고 하던 작가가 왜 갑자기 고통을 당하는 이가 내면세계를 구축하는 글쓰기를 권하고 있는 것일까? 잠시 멈칫하게 됐다.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는 남들에게 이 고통을 알리기 위해 소통의 개념으로 쓰는 글이 아니라 자기를 알고자 하는 인간 스스로의 '만남'을 의미하고 있다.


#고통의 곁에 서서 써 내려가는 글

나는 고통의 곁에선 이들의 역할이 바로 이러한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통의 당사자가 아닌, 곁에선 혹은 곁의 곁에선 자들이 써 내려가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선 글이라고만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다 나누기 어려운 상황과 깊은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고통의 곁에서 아직은 말하고 듣는 힘이 남은 고통의 곁은 고통과 무관한(듯 보이는) 세계와 연결해주는 좋은 다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전제는 고통을 겪고 있는 당사자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사회)에 그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말을 했을 때 비난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들어주고 끄덕여줄 것이라는 믿음이나 신뢰 같은 것이 고통을 겪는 이에게 존재해야한다. 가볍게가 아니라 그 고통 중에도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만연해야 한다.


좋은 공동체는 '배움을 경험하는 곳'이다. 올바르고 선한 지식을 알려만 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배운 것을 직접 경험해볼 수도 있는 곳. 안에서도 밖에서도 배우고 묻고 해 보는 것이 가능한 곳 말이다. 이 이상적인 공동체를 위해 각 인격은 경청과 겸손과 인내가 필요하다.


오늘도 사랑과 환대의 공동체를 꿈꾸며,

고통의 곁을 이야기하는 책 곁에서 글을 써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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