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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Oct 03. 2020

거칠어진 것들이 보드라워지는 시간, 우리들의 러닝타임

런린이와 박코치의 티키타카

울퉁불퉁했던 모든 것들이 맨들맨들해 지는 시간, 스물아홉의 러닝타임.

 사람들이 '아홉수'라 부르며 몸을 사리는 시간. 혹은 스물의 혈기와 열기가 가시지 않은 채 느닷없이 서른이 되어버리는 것이 두려운 시간. 우리는 지금 스물 아홉 잔나비이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꿈나라의 어른이이지만, 2020년 찬란하게 등장한 이 단어는 내 삶에 큰 변화를 주었다. ‘코로나 19’가 아니고 ‘러닝’이다. 

온순한 편이지만 잘 길들여지지는 않는 성미의 스물아홉이 누군가의 말을 이렇게나(?) 잘 들으며 하라는 대로 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나에게 온유함과 건강을 선물한 대단한 코치님을 소개해볼까 한다.


김런린이와 박코치의 어느 달 밝은 밤 이야기




김 / 시작은 아시죠?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박 / 경기도 광주 사는 29살 박다니엘입니다. 구두 관련 부속을 만드는 일도 하고 투잡으로 초밥을 만드는 작은 가게도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인터뷰 끌려온 것 아닌 박 코치님

김/ 그래서.. 재미있나요?

박 /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우문현답이다.) 요즘 안타깝게도 매출이 어려운 사업들이 많은데, 저는 그래도 돈을 벌고 있으니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 소싯적에 축구도 하셨잖아요, 근데 그 많은 운동 중에 러닝을 하시게 된 이유? (물론 축구도 계속하시지만)

뺐은 거 아니고 주신 사진. 박 코치님의 초등학생 시절

박 / 러닝이 가장 기초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기본적으로 가장 쉽게 접근할 수도 있고요. 기본이 단단하지 않은데 자꾸 잔재주만 부리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 /  기본이 단단한 사람이라... 멋진 말이에요. 쫌 라떼 같긴 하지만.


김 / 그럼  운동을 해야겠다 해야겠다~ 말만 하던 저에게 ‘러닝'을 권하게 된 이유는요? (따지는 거 아닙니다만.)

박 / 러닝은 꼭 사야 하는 기구들이 별로 없고 만나기만 하면 어디서든 뛸 수 있으니까 출발점 자체가 제약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또 달리기만큼 사람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운동이 없는 것 같아요.
김 / (아니.. 나 동기부여 이런 거 별로 안 필요한데요 코치님??)


김 / 러닝 박선생이 러닝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박 / 기본적으로 (또 나왔다!) 뛰고자 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리 장비가 있고 넓은 운동장이 있어도 내가 밖에 나갈 생각이 없으면 무엇이든 시작되지 않으니까요. 기록은 그다음 문제이고요. 뛰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일단 나가야죠.

김 / 무서워 ㅋㅋㅋ(어허허허.. 그는 늘 제게 말했어요. ‘나갈까 말까 할 땐 나가라.’)

박 / 오늘 뛰어야 하니까 나가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뛴다고 생각하는 거죠. 딱히 기록보다는 마음가짐, 나가겠다는 생각이 중요한 거 같아요.

김 / 하긴.. 저에게도 꽤 자비로운 기록을 허용해주시죠. 제가 뛰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갸륵히 보셨군요.


김 / 러닝 버킷리스트 같은 게 있나요?
박 / 저는 보스턴 마라톤도 나가보고 싶고 스페인 바르셀로나 마라톤도 나가보고 싶어요. 제 러닝의 시작 동기가 되었던 200Km를 뛰는 사막 러닝도 그렇고… (네? 귀를 의심) 그래서 출전 대비(?)를 위해 이제는 좀 더 스스로에 대한 강도를 올려볼까도 합니다.
김 / 아 혼자 뛰실 때 그러신다는 이야기죠? (재차 확인)

박 / 그렇죠. 근데 뭐 맛보기로 보여줄 수도 있고.

김 / 제가 왜요? 저는 말했잖아요. 출전하시면 물통 들고 어딘가 서있겠다고. 응원차


김 / 추천하는 러닝 스팟이 있나요?

박 / 자기 집 앞, 동네! 우리 집 앞에 뭐가 있는지 사람들이 사실 잘 모르거든요. 출퇴근 밖에 하는 것 없고 주말 약속은 멀리 나가게 되니까. 동네 길을 뛰면 동네에 뭐가 바뀌었는지 아는 게 재밌을 것 같아요.

김 / 맞아 저 진짜 공감해요. 혼자 동네를 뛰다 보면 ‘아 여기 꽃집이 있네? 슈퍼가 있네?’ 알게 되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어요. 작은 동네를 여행하듯이.

 
김 / 박코치님도 러닝 하기 귀찮은 날이 있어요?
박 / 가장 싫은 건 몸이 무거워 지는날. 비라던지 핑계를 댈 수 있는 날이면 많이 고민해요. 나가지 말까 귀찮은데…. 혹은 너무 바빴던 날.

김 / 그럼 그때 어떻게 해요? (질문이 많은 편)

박 / 그럴 때도 일단 행동이 먼저 나갑니다.

김 / 네? 그래도 일단 나가라고요? 아까는 뛰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면서요?

박 / 물론 몸이 정말 안될 때는 쉬는 게 맞아요. 몸이 어떤 말이 하는지도 잘 들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생각 자체가 게을러진 거라고 판단되면 나가서 바람이라도 맞아보려고 해요. 진짜 뛰기 싫은 게 아니라 게으름이 이긴걸 수도 있더라고요. 저는 바람을 맞다 보면 대게는 다시 뛰고 싶어 져요.


김 / 반대로 정~말 러닝 하고 싶은 날은?

박 / 마음이 답답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날. 뛸 때는 깊이 생각을 잘 안 하게 되기도 하고,  뛰고 나서도 집에 오면 몸이 피곤해서 바로 푹 잘 수도 있어요.
김 / 맞아요 저도 누가 러닝에 대해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어요. 해야 할 것이 많고 생각도 많아지는 날 꼭 뛰고 싶다고. 뛰다 보면 내 발, 호흡, 옆 사람과 하는 대화, 바람, 그리고 박코치님이 시간을 숨기고 거짓말하는지 안 하는지 이런 거만 신경 쓰니까요. (찡긋) 단순해진달까. 꼭 필요한 시간이에요.
박 / 그리고 저는 비 온 다음 날 운동하는 거 좋아해요. 어렸을 적에 운동했을 적에 (이것은 박코치 시그니쳐 말투입니다.) 비 온 후  물먹은 소나무 냄새가 정말 좋았어요.

김 / 오호라……(세상에 이런 가을바람 산들바람 같은 멘트라니)


비 온 뒤 물 먹은 소나무 냄새, 숲 냄새 같은 향을 맡으면 어려웠던 것들이 차분해지고 안정이 되는 느낌이 있어요. 울퉁불퉁했던 마음이 사포로 긁은 것처럼 매끄럽게 되는 것 같아요.
 
박코치님께 물먹은 소나무가 있다면 내게는 광진교 노을이 있다!

김 / (계속 명언 날리는 박코치님, 밑줄 긋자 그읏짜)

김 / 저는 처음 러닝을 시작했을 때 제 발이나 호흡을 신경 쓴 다는 것이 굉장히 생경했는데, 코치님은 어때요? 뛸 때 호흡과 발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시죠?
박 / 네 그래서 이어폰도 잘 안 끼고 시계만 차고 최대한 저에게 더 집중하려고 하는 거 같아요. 음악에 취해 뛰면 몸이 오버페이스가 되니까요.
김 / 코치님이 처음에 제가 깡 노래 들으면서 뛰고 싶다고 했을 적에~(박코치 말투 따라하기) 되도록 노래보단 제 호흡과 발 페이스를 느껴 보라고 했잖아요. 저는 처음에 '어떻게 노래 안 듣고 3키로 6키로를 그냥 가지?' 했어요. 그만큼 뭔가가 채워지지 않은 여백들에 대한 어색함이 있는 것 같아요. 굳이 채우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김런린이와 박코치의 첫-동반 러닝 / 월드비전 Global 6k for water

김 / 호흡이나 발을 구르는 코치님의 특별한 습관이 있나요?

박 / 호흡을 되게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유산소 운동이니까. 스스로의 템포를 잘 찾아 맞추는 거죠.

김 / 제 템포는 안 맞추시나요? (늘 삐뚤어진 학생 되겠습니다.)
박 / 아니 혼자 뛸 때 말이에요. (꽉- 웃음) 같이 뛸 때는 김런린이님을 보면서 뛰죠.
김 / 혹시.. 제가 헉헉 거리는 거 못 보셨나요?

박 / 제가 호흡은 맞춰줄 수 없어요.(박단호) 속도는 맞춰줄 수 있어도
김 / 맞아요 저는 뛰다 보면 숨을 안 쉬게 되더라고요. 러닝이 유산소 운동이군요 아하.
박 / 무호흡이 아.니.랍.니.다. 숨을 쉬고 뱉고는 각자의 템포나 스타일이 있을 수 있지만 자기의 호흡을 알고 배운다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김 / 박코치님 말을 듣다 보니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왜 그런 사색적인 글을 쓰는지 알 것 같아요. 저도 러닝 하기 전까지 제 호흡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숨을 일부러 참아본 적도 없고,  고르게 쉬는지 안 쉬는지도 모르고 늘 그 덕분에 존재하지만 그 존재 자체에 대해 부러 인지해본 적 없달까?

박 / 운동을 잘 못 배운다는 건 호흡을 제대로 못하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아요. 호흡이 잘 되지 않으면 밸런스가 깨지죠. 오래 하기 위해 자신만의 호흡을 찾는 것이 중요해요. 보이는 키로수나 속도에 너무 얽매지이거나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보다는요.


김 / 제가 요즘 자주 생각하는 ‘적정성’이란 단어와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알맞고 바른 특성’이란 뜻인데요. 사람마다 ‘적정성’이란 게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이 적당히 하고 만다, 평균이다 이런 게 아니라 그 본인이 창조된 대로 가장 맞는 적절한 속도 옳은 방향, 때가 있다는 의미로.


김/ 그럼 다니엘에게 적정성을 벗어난 오버페이스란 무엇이죠?

(내.묻.내.답) 저는 사실 더 게을러지는 경우는 많지 않고 (흠흠) 글과 시를 안 쓸 때가 오버페이스를 하고 있다는 표시 같아요. 시는 자연에서 하나님 주신 영감으로 쓰는 거고 글은 사람과의 만남으로 나오는 거라 그 두 개를 멈추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은 느낌? 그때 멈춰요.

박 / 저는 지금의 상황 자체가 좀 오버페이스인 것 같네요. 하지만 꼭 지나야 할 과도기인 거 같아요. 저는 꼭 수익성을 위한 게 아니더라도 N 잡을 하고 싶어요. 조금 더 다채로운 인간이 되고 싶거든요. 지금 좀 열이 나고 피곤한 것은 그런 삶을 지향하며 겪는 열병 같은 것 아닐까요? 아니면.. 제가 러닝을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해지거나 그런 상황이 자주 오면..? 그런 때가 오면 어떻게 쉬어야 할지를 고민하겠죠.

김 / 그렇게 자기에게 제일 중요한 가치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살면서 이건 놓치지 말야겠다 이런 게 생기더라고요. 그때 그걸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것 같아요. 잘 잡고 잘 포기하는 거. 뭐가 중요하는지 아는 거.

 

김 / 앞으로도 러닝을 계속하실 건가요?

박 / 러닝은 몸이 될 때까지 계속해야죠. (그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고 한다.) 전에 스페인에 있을 때 러닝 하다가 어떤 70쯤 돼 보이시는, ‘다니’라고 부르면서 다가온 할아버지를 만난 적 있어요. 그날 하루를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한 최대한 움직여 보는 그런 점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조금 더 멋지게 늙는 법을 많이 생각하는 요즘인지라. 몸도 마음도. 기본적으로 건강해야 하니까 러닝을 하는 거예요.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니까!!
김 / 와.. 또 돌아갔네요.. 기승전. 기본, 백투더 베이직! 피곤해 보이니까 마지막 질문할게요.


김 / 뛰는 사람 박다니엘은? 어떤 존재인가요?

박/ 너무 철학적인 거 아닌가요?

뛰는 사람, 박다니엘

김 / 제가 <걷는 사람 하정우> 책을 최근에 살~짝 들쳐봐 가지고. 걷는다는 게 누군가에게 철학적인 존재의 가치를 주는 것처럼 뛰는 것도 그럴 것 같아서 이 질문은 꼭 하고 싶었습니다!

박 / 저는 뛴다는 자체에 소중함을 느끼는 사람 같아요. 크게 다쳐서 6개월간 걷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랬던 내가 이제는 누군가를 가르치기도 하고 잘 뛰고 있기도 하고 새로운 것도 도전하고 있으니 참 감사하네요. (감사 수미쌍관 무엇)


김 / 뛴 다는 것은 박코치님께 너한테 정말 큰 의미가 있군요. 달이 엄~청 주황색이네요!! (슬슬 콘센트가 뽑힌 인터뷰어의 퇴근 멘트)

 
 




#에필로그 

(티키타카 talk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이 부분은 반말로 처리하겠습니다.)


김 / 러닝메이트로서 다니엘에게 김은지란?

박 / 아하- (한숨) 우선은 너무 ‘생각보다’ 잘해주고 있고

김 / ‘생각 보다요?’ (발끈)

박 / 사실 나는 좀 잘 못 뛸 줄 알았거든. 아니 나는 운동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 치고도(사실 지기는 육상을 했지요. 밝혀지는 과거) 성인 되고도 잘하는 사람들을 못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하고 있고..

김 / 응 그래 더 해봐 칭찬

박 / 생각보다 잘 따라오고 있어. 나는 사실 빨리 포기하거나 안 할 핑계를 댈 줄 알았어. ‘곡간을 열어야 해서,’ 이번 주는 광주 내려가서’ 등등. 우리 친구 영자가 ‘멀리 가려면 같이 가고 빠르게 가려면 혼자가라고’ 이런 말을 산티아고 걸을 때 했었거든? 원래는 와 닿지 않던 말이야. 혼자 가도 빨리 갈 수 있다 생각했으니까. 내가 포기하고 싶거나 귀찮으려 할 때도 있었지만 네가 같이 한다니까 서로 좋은 시너지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김 / 그래서 됐다는 거아 안됐다는 거야 (압박)

박 / 기부런 같은 거도 지금은 조금 더 의미 있게 살펴 보게 되는 것 같고. 아무튼 러닝메이트로 김은지는 탁월했다!

김 / 오———왜 과거형이야?

박 / 탁월해!
김 / 코치님이 보시는 제 앞으로는 요?
박 / 미래를 생각하려면 조금 더 강도를 높여야 되고. 우리 7월에 10키로 뛰었어야 하는데 10키로를 도전해야지. 사실 올해 목표는 하프마라톤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이 인터뷰 이후 지기와 박코치는 10km 러닝을 완주했답니다. 하하하) 본인의 능력치가 어떤지 궁금.. 안 하지 너는?

5월에 시작한 런린이가 9월에 10km를 뛰다니!!! (셀프자랑칭찬)

김 / 응 나는 안 궁금해. 지금 행복해. 그래~도 확실히 느는 게 느껴져서 신기해. 처음엔 500미터만 뛰어도 숨찼다가 1키로는 괜찮다가.. 이제는 2키로도 안 쉬고 쭉 뛸 수 있고. 몸의 언어가 느는 것 같아.

박 / 굉장히 많이 성장했고, 성장 속도도 빠르고!!!

김 / 나 뭐든 꾸준히 못하는데 원래. 하여간 고맙다.



*  앞을 모르는 스물아홉둘은 박코치님의 부상으로  이후로 한동안 같이  뛰게 되었다고 합니다.  글은 애정 하는 나의 코치님께 언택트 병문안-으로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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