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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May 21. 2021

속초에 서핑하러 왔다가 쓰레기 주워 갑니다

느닷없는 5월의 강원도 속초여행

나 홀로 뚜벅이 속초 여행 3일 차


주의보가 내렸으니 파도는 탈만 하겄네!
속초 동명동 소호259 호스텔의 마지막 창

속초 여행 마지막 날, 어제 2만보 가까이 걸은 보람 있이 기절 같은 잠을 잤고 빗소리에 눈을 떴다. 비가 오니 파도가 좀 있으려나? 대학교 때 배운 버릇 남 못 주고(동아리의 신조 같은 것이랄까) 이불까지 잘 개 주고 나왔다.


“기사님, 코랄 서프로 가주세요!”

“코랄 호프?”

“아 아니요, 저기 외옹치항 가기 전에 해변이요! 서핑하려고요.”

“아~ 하하하 서핑은 처음이에요? 오늘 주의보가 내렸으니 파도가 좀 세겄네 허허허.”

“네...?”

“거 살아 돌아오세요 하하하하”


호탕하신 택시 기사님과의 담소를 마치고 1일 강습을 예약해 둔 코랄 호프, 아니 서프에 도착했다.

강원도 속초 서핑 코랄서프
강원도 바다 서핑 속초 해수욕장 코랄서프

사장님께서 어젯밤부터 온 비에 파도가 꽤 커져서 취소 연락을 드릴까 하자가 이미 두 번을 좋은 파도를 기다리며 일정을 바꾼 터라 아침까지 지켜봤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다행히 파도가 많이 정리되었다고.(이것은 서퍼들의 표현인가! 그 이후로도 자주 쓰셨다.)

서핑하러 들어가기 전 세상해맑

다행히 혼자가 아니라 2011년생 친구 한 명과 바다로 나가게 되었다. 이미 몇 번 강습을 받은 서핑 선배님이라고 하니 잘 따라다녀야지.


파도를 마주하는 자리

"선생님 저는 수영을 못해요. (지금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부는데) 물이 춥지는 않을까요? 서핑은 처음이에요..." 잘잘한 두려움이 보드를 이고 바다로 향하는 차 안에서 몰려왔다.


서핑을 위한 프라이빗 비치로 들어가(추측) 준비 운동을 하고, 기본 용어와 [패들링-푸시-업!]에 대해 익혔다. 서핑이라니, 내가 서핑이라니, 이 파도에 서핑이라니!

이게 정리된 파도 맞겠지..?

실제 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바다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춥지 않았고 깊고 커다란 바닷소리와 달리 보드 위에서는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다.

두 발로 서는 것이 이리도 어렵다니!

적당한 파도를 기다리다 강사님이 뒤에서 밀어주시면 파도를 타고 패들링을 해서 해안가 쪽으로 간다. 뒤에서 “푸시... 업!”하는 소리에 맞춰 몸을 일으켜 세우고 두 다리에 힘을 준다.


그렇게 12번의 파도가 준 기회 끝에 세 번 일어나며 배운 것을 정리해 본다.


•나에게 맞는 파도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같은 장소, 같은 날, 같은 시간대의 기상이라 하더라도 바다는 변덕스럽다. 한 번도 같은 파도를 보내지 않고 변주를 한다. 해안가와의 거리도 파도의 크기도 때마다 다르게 경험할 수 있었는데, 내게 맞는 파도를 타기 위해선 보드 위에서 버티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타지 않을 파도는 기꺼이 보내주면서.


•파도에도 우선권이 있다.

2011 선배님(편의상 줄여 부르겠다.)과 번갈아 가며 바다로 나가 파도를 타는데, 해변가에서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다른 강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속초 토박이라는 강사님은 코로나 때문에 작년 레슨 일정이 많이 취소돼서 새로운 사업도 시작하셨고 그래서 예전보다 파도를 자주 못 타신다고 한다.


“요즘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파도를 타는 경우들이 별로 없지만, 예전에 날이 좋아 사람들이 몰리는 날에는 각자 (바다 위) 적당한 곳에서 기다리다 파도를 탔어요. 파도에도 우선권이라는 것이 있어서 더 가까운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인데, 무리하게 다른 파도를 타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이 있는 위치로 패들링 하다 사고가 나면 일을 내는 법이죠. 변상도 해야 하고요. 보통 한 파도에 한 사람씩만 타게 돼요.”


•바다 위에서 보는 파도는 해안가에서 보는 파도보다 무섭지 않다.

패들링을 해 바다로 나가 보드 위에서 고개를 들고 눈 앞으로 쏟아져 오는 파도를 볼 때가 있었다. 막상 들어와 보니 겁먹은 것보다 춥지도 않고 무시무시하지도 않았다. 파도도 그저 제 갈길 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해치려 다가오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 방향을 잘 못 잡거나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해 귀싸대기를 제대로 얻어 맡기도 했다.


“아!!! 내 귓방맹이! 저 맞았어요 으헝헝”

“허허허, 이게 파도에게 제대로 맞으면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또 탓할 곳도 없다니까요.”

그래, 내가 좋아 온 속초 바다 위에서 파도를 탓하랴. 사람 사는 곳이나 바다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아니, 파도를 배우면 사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할 듯 하다.


나에게 맞는 파도를 탈 것. 아니라고 판단되면 기다릴 줄도, 물 위의 무료함을 견딜 줄도 알기. 혹은 이 파도가 내가 발 닫고 일어나 즐길 수 있는 파도인지 아는 감각을 키우던가.

남의 파도는 탐내지 말 것. 어차피 곧 올 다른 파도도 있는데, 눈 앞의 하얀 파도가 탐나 다른 이의 즐거움을 방해하거나 해를 가하지 말 것. 양보하고 배려하다 보면 나도 누군가의 양보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일단 바다 위에 몸을 던져볼 것. 거친 파도는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조류에 맞게 지혜로운 패들링으로 지나갈 수 있으니까. 물 위에 올라 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기쁨이란!


파도로 놀아 준 속초 바다에 쓰레기 줍기로 은혜 갚기

서핑 후 따뜻한 물로 모래를 씻어내고 다시 바다로 향했다. 실컷 놀아준 고마운 속초 바다는 안녕한지 걱정이 돼서 봉그깅(*제주말로 ‘줍다’인 ‘봉그다’를 활용한 합성어. 해안가에 버려진 쓰레기가 다시 바다로 밀려가 물고기들을 괴롭히지 않도록, 바다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줍는 것.)을 하기로 했다.

속초해수욕장에서 해변 쓰레기 줍기 대작전!

서핑으로 쑤셔오는 어깨에 배낭을 한 짐 메고 옆구리에 서핑보드 대신 쓰레기를 담을 가방을 매고 해안가를 걷다가 5분 만에 대형 쓰레기를 만났다. 아마도 해안가에서 물놀이를 한 것 같은 미니 풀장이었는데, 아부지 어무니 왜 뽀로로는 안 데려가셨어요!!!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죄 값이 큰 친구를 끌고 가 고이 접어 쓰레기 통에 집어 넣어버렸다. 에라잇!

속초 해수욕장에서 발견한 크롱. 웃지마 난 안녕하지 못해.
속초 바다에 나타난 붕어싸만코 녀석

30분 정도 쓰레기를 줍고 나니 다양한 쓰레기들이 담겼다. 담배꽁초, 비닐조각, 폭죽놀이 껍데기, 테이크아웃 커피 컵, 붕어사만코를 닮은 물고기 장난감, 직은 빨대나 물 뚜껑 그리고 마스크 등.

속초 해수욕장 해안가에서 주운 쓰레기들

모아 놓고 기념사진을 찍어 보았다. 넷플릭스 다큐 ‘씨스피라시’에서 말하듯 플라스틱 빨대가 바다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아주 미미할지 모르지만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지.


이왕 씨스피라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다큐 한 편으로 결국 나는 생선을 멀리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주 안 먹는 것도 아니고 육수에 들어간 녀석들까지 다 걸러낼 순 없지만, 봐버렸는데, 알아버렸는데 어떡하나. 조금씩이라도 바뀌어 볼 수 밖에. 아아, 바다내음 가득한 속초에서 밥을 먹기 위해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아름다운 것들
속초바다에서 주운 아름다운 조개 껍질과 돌

속초 바다에서 영 아름답지 못한 흔적들만 줍고 온 것은 아니다. 속초에서의 3일 그리고 처음 만난 거센 파도와의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작고 아름다운 것들도 모아 왔다. 6월에 오픈할 을지로 ‘공간희희’에(*회사 밖. 퇴근 후 출근하는 곳. 커뮤니티 모임 공간이자 큐레이션 책방이다. insta @heeheeco) 올려 두어야지. 책 문진용으로 딱이다.

속초 맛집 해수욕장 앞 장칼국수집

배에서 우렁찬 파도 소리가 나길래 아침에 눈을 떠 오후 3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바닷물은 빼고. 서핑하러 가는 길에 보아 둔 장칼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속초에 장칼국수가 유명한지 곳곳에 있는 메뉴이다.


수영장에서 먹는 육개장, 서핑 후 바다에서 먹는 장칼국수는 말해 무엇하랴.


여행 후에 오는 것들

“야, 노래 추천해 줘도 되냐?”

종종 탁월한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해 주는 친구가 놀라운 타이밍에 연락해 왔다.


1. 신나면서 센치 2. 완전 신나게 3. 차분한

무려 세 가지 보기를 받았고, 1번을 선택하니 친구는 8곡을 추려 보내주었다.


길고 짧은 여행을 끝내고 한강 다리를 넘을 때면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여행의 잔상이 남아 들뜨기도 하고, 그곳에서 머물렀던 시간들이 꿈만 같기도 하고, 새로 배우고 느낀 것들이 일상에 어떤 영향을 줄지 무척 기대가 됐다가도 텅 빈 집에 혼자 있을 서울이 괜히 울적하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듣는 친구의 추천 플레이리스트는 여행의 마무리에 오는 울적함은 거둬가 주고 있다. 고맙다 이 친구야!

강원도 바다 여행. 속초해수욕장

5월의 휴가를 잘 보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지갑을 잃어버린 문제의 13-2번을 다시 기다리고 있으니 정말 집에 온 것이다.


서울의 날씨는 비 온 뒤 맑음이다.

강원도 여행. 속초 바다 서핑 see u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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