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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May 25. 2021

퇴사 후 사진작가가 된 21학번 법학도입니다 <쁨터뷰>

기쁨지기의 희희한 인터뷰

당신이 기뻐하는 순간, 그 찬란한 모습이 궁금해요.
일상과 비일상 그 어디에 놓인 기쁨을
함께 발견하고 기록합니다.



쁨터뷰 Take 5.
#유정민


마케터로 살다 흘러가는 동네를 기록하는 사진작가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법을 공부한다며 21학번으로 나타난 정민님. 조금 특별한 스물여덟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경사진 아스팔트 사이를 비집고 핀 노오란 민들레 같다. 애처롭지 않고 사랑옵달까.


사람정민


오랜만이에요. 요즘의 정민님은 잘 지내셨나요?

장위동 사진관(@iann.pic) 정민 작가님의 셀프 스냅

지금의 저는 장위동을 배경으로 스냅 촬영을 하고 있는 대표....라고 하면 쑥스러우니 ‘사진작가’로 살고 있어요. 사람들에겐 "저 사진 찍어요"라고 말해요. 그리고 대학교에서 법을 새롭게 전공하는 21학번 새내기가 되었네요.

 

사전 인터뷰에 정민님의 중요한 가치를 ‘자유와 공존’이라고 답변해 주셨는데, 단어만 놓고 봤을 땐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자유와 공존은 단순해요. 내가 나인 상태로 자유롭게 있고 그만큼 상대방도 상대방 그대로 자유롭게 있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내가 나대로 있고 네가 너 대로 있되, 해를 끼치지 말고 공존하자.


누군가 그 사람 다움의 자유를 주장할 때 타인과의 공존에 문제에 영향을 줄 수 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세요?

(즉답) 그럴 땐 포기하죠. 제가 고민해서 나아지는 것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공동체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데 저 혼자 무엇이 자유이고 공존인지 끙끙대 봤자 해결책이 잘 나오지 않을 테니, 그럴 땐 포기하고 저를 그 상황에 던져요. 그것이 자유의 방법일 수도 있고요. 해결하지 않고 그 상황대로 두는 것이 때론 공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마케터에서 사진작가 그리고 법학도로

스냅 촬영 중인 장위동 사진사

어쩌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진작가가 되셨는지 전환점이 궁금해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회사를 2년 정도 다녔는데, 제 성향상 대충을 못하는지라 업무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쁨지기님도 아시죠? 마케팅은 정말 열심히, 그것도 매일 바빠야 성과가 나오잖아요. 오늘 하루 업무 처리하고 여유로워지지 않죠. 그러다 어느 날 공황장애가 생겼어요.


본인이 공황장애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 있었어요?

지하철을 탔는데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거예요. 풀썩 주저앉았어요. 그래도 출근 시간이었어서 출근은 했어요. 그 이후로도 숨이 잘 안 쉬어져서 혹시 몰라 정신과를 갔는데 공황장애에 우울증도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땐 옷 위로 심장 뛰는 게 보이는 정도였어요. 몸이 괜찮아지고 나서 다시 힘내서 일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계속 신경안정제를 찾게 됐죠. 어느 날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약을 찾다가 현타가 왔어요. 아. 이럴 바에 그만하자. 쁨지기님도 그러시지 않았어요?


2년이 뭐야, 저는 한 달 만에 탈주했어요.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일 하다 화장실에서 많이 울었죠. 현타 포인트가 특별했는데,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죠. 시가 써지지 않는 삶이라니, 스스로를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저는 퇴사를 결심한 날, 팀장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팀장님 저 포기할게요.” 그때는 그만둔다는 개념이 아니라 포기한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회사 분위기가 다 같이 으쌰 으쌰 해서 함께 성공하자는 분위기였거든요. 퇴사 후에는 원래 하고 있던 사진을 더 해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사실 ‘사진’이라는 수단보다, 떠나가는 동네를 남겨야겠다는 마음?


정민님의 장위동 사진관은 사라지는 동네를 기록해 두는 거네요. 주로 어떤 분들이 많이 오시나요?

장위동에 사시는 20대 초반 분들이 많이 오세요. 사진관 계정 인스타를 시작하면서 ‘장위동 맛집’이라고 넣기 시작하면서 특히나 더. 다른 동네에서도 종종 오시는데 인근 지역이죠.


마케터, 사진작가 게다가 이제는 법을 공부하시는걸로 아는데요.

세상을 균형 있게 보고 싶어서 법 공부를 시작했어요. 저는 계속 산업에 몸을 담갔던 사람인데, 법이라는 건 조금 더 행정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실체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공부하다 보니 법적 약자들을 보호해주는 것도 좋겠다는 마음도 들고요. 일단 시작은 순수한 학구열이랄까. 법조인을 준비하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법을 공부하게 됐을 때 영향을 미친 누군가가 있을 것 같네요.

같이 책모임을 하는 글로자의 영향이 큰데, 법에 대한 필요성을 착갈피 모임에서 자주 이야기했어요. 그 말들이 도약하게 하는 용기가 됐던 것 같아요.

*글로자: 쁨지기의 10년 지인으로서 블로그에 글을 쓰는 글 노동자이다.




쁨지기와 정민의 평행선


우리의 접점이 제 인스타인지 글로자의 블로그인지 아직도 밝혀 내지 못했지요. 곡간에 오셔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나세요?

그럼요. 그때 쁨지기님이 내려줬던 핸드 드립이 진짜 진~짜 인상 깊을 정도로 맛있었어요. 제 핸드드립 역사에 남아요. 인상 깊은 커피 탑 5에 들 정도? 맛도 그렇고 보일락 말락 한 커튼? 천? 안에서 커피를 내려주시는 그 장면도 인상 깊었고 주황빛 잔도 좋았어요. 그 커피가 그 날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 같아요.

*곡간: 창신동 언덕에 쁨지기가 2년간 프로젝트로 운영했던 커뮤니티공간이자 카페

https://bit.ly/3fn1FxH


글로자가 정민님을 이야기할 때, '너와 되게 비슷한 결의 사람이고 너 어렸을 때 보는 거 같다고' 말 한적이 있어요. 저랑 비슷한 점과 다른 부분 무엇인 것 같아요?

닮은 것 같은 부분은 우리 둘 다 단단한 사람인 것 같아요! 자존감이 깎여도 상관없을 정도로 단단한 사람 같아요. 예를 들면 상처를 받아도 ‘그 상처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행동력! 행동력이 좋지요.


이것은 마치 엎드려 칭찬받기 같군요.(웃음)

좋은데요? 저도 앞으로 사람들 만나면 이 질문해 봐야겠어요. 다른 점은 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때 지쳐하는 편이에요. 제가 뭐든 배우려고 하고 수집하는 성향이라 이 사람의 뭔가를 배우는 게 좋아서 만나는 건데, 그렇게 되기까지 기본적인 관계를 맺는 과정의 감정 교류가 피곤한 것 같아요. 쁨지기님처럼 공감능력이 뛰어나지 않거든요.


저도 공감 잘 못합니다 허허. 정민님 사람들 잘 만나시던데요.

학습한 거예요. 좋게 말하면 사회성이 좋고 나쁘게 말하면 가식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것도 저의 모습인 거 같아요.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 슬픔에 공감하기보단 눈물의 정보가 들어온달까. 쁨지기가 생각하는 공감이란 건 뭐예요?

제가 사랑하는 그분이 사랑하시는 존재들을 사랑하는 것.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 제가 좋아하는 존재들에게 공감이 잘 되는 것 같아요. 할머니도 공감이 되고, 교회 떠난 친구도, 외로운 청년도 그리고 얼마 전 씨스피라시에서 들은 돌고래의 울음소리에도. 모든 걸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공부해보고 하는 거죠. 




이제야 본격 쁨터뷰


쁨터뷰에 신청하신 이유가 재밌었는데, 인플루언서의 특권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어요. 인플루언서란 뭘까요?

쁨터뷰의 전통에 따라 쁨지기가 한 음식을 먹고 있다.

저는 제가 인플루언서라고 생각해요. 하하하. 팔로워는 400명도 안되지만(웃음) 길 가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요. “내 친구를 찍어 줬던 작가님이다!”하고 알아보시고는 나중에 DM을 보내기도 하시죠. 이제 좀 머리를 감고 동네를 돌아다녀야겠다.


인플루언서로서 장위동 사진사의 영향력은 뭘까요?

인스타 게시물 댓글들 중에 꽤 자주 있는 댓글인데, 40~50대 어른들이 장위동의 정취를 볼 수 있어서 좋다, 어렸을 때 살 던 곳이었는데 사진으로 보니 반갑다, 장위동이 브랜드로 나와서 참 감사하다고 남겨 주세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지나가는 일상들을 좀 묶어 놓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댓글 남겨 주시니 울컥하더라고요. 이건 하고 싶은 일을 떠나서 해야 하는 일이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진작가가 사진으로 감동을 주는 것은 최고의 기쁨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 좀 공유해 주시죠:)

장위동 사진사 정민님의 사진. 장위동 길가의 민들레 스냅사진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자 장위동에서 원래 찍고 싶었던 것은 아스팔트에 있는 민들레예요.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장위동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위동이 다 언덕배기라 어디를 찍어도 수평이 잘 안 맞거든요. 그런 아스팔트를 작은 민들레가 비집고 나오는 걸 보면 받는 울림이 있어요. 이렇게 펴줘서 고맙다. 그런데 이렇게 까지 폈어야 했나? 생각도 들고요. 제 모습 같아서 그런 거 같아요.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 싶으면서도 이렇게까지 살았어야 했나, 뭘 해보겠다고.
 

@rejoice_snap 쁨지기의 숨겨진 웨딩스냅계정. 스냅사진

저는 가끔 웨딩 스냅을 찍는데, 사람들이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처 받고 싸우는 일들을 보는 것이 마음이 아파 사진을 찍게 됐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다가 저렴한 비용으로 사진을 찍어 드리고 있어요. 정민님도 사진을 통해 회복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꿈이요. 사진을 찍는 것이 제 꿈이기도 했고, 내가 사는 동네를 사랑하고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 일상에서 만족하는 저를 보고 사람들이 '저런 사람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꿈을 이루네. 나도 할 수 있겠다.', '저 사람처럼 살면 일상이 소중해지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문득, 기록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보게 되네요.

퇴사, 창업, 법대 입학에 가장 많은 독려가 되었던 '어쩌다모임' 친구들과의 시간 기록

기록한다는 것은 미련이죠. 사진은 사람들의 흘러가는 일상을 붙잡아 주고 싶은 것이고요. 제가 시간에 대한 미련이 정말 심하거든요.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놓치는 뭔가가 있을 거 같아요. 일상이든 감정이든. 순간들을 붙잡아 두는 것이죠.


사진은 현재의 순간을 남기고 나중에 봤을 때 더 가치가 있어지는데, 법은 법 조항이나 판례처럼 이전의 기록물을 가지고 현재를 결정하는 것 그리고 법안 발의처럼 미래의 일을 대비하는 속성을 지니는 것 같아요. 사진과 법을 대하는 정민님의 속성은 어떤가요.

사진은 그 상황에 몰입하고, 법은 한 발짝 떨어져 보는 거 같아요. 법은 아무래도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약자와 강자의 균형을 맞추고 최대한 합리적으로 봐야 하니까요.


정민님이 법을 통해 이루고 싶은 기쁨이 있을까요?

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정책도 법 기반이고요. 행복추구권이 헌법에 있잖아요. 저는 그걸 처음 봤거든요. 행복을 추구하는 게 권리구나. 법이라는 것은 나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지 누군가를 처벌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구나.


재미난 일을 많이 시도해 보시는 정민님, 그런 삶을 포기하고 싶어 지는 순간이 있나요?

다른 사람과 나의 삶의 길이 너~무 다른 것이 보일 때요. 28살에 사업하면서 대학교 1학년인 사람이 제 주변엔 저밖에 없요. 개척해야 하고 가이드가 없으니.

개척자는 어려운 법이죠. 하지만 개척자는 인플루언서가 될 수는 있지요(찡긋) 사람들이 따르기 마련이에요. 먼저 가고 있으니까.


포기하고 싶어질 정민이에게 지금의 정민이가 해주고 싶은 한마디는?

아아 잘 들리니 미래의 정민아!

정민아 널 사랑해!


본인 말고 누군가 기쁨을 빼앗겨 보이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던진다면?

슬픔이란 감정, 좌절, 낙망 이런 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외로울 땐 외로움을 느끼고, 낙망해 있다면 충분히 낙망해 할 수 있게 기다리는 편이죠. 그 방법밖에 몰라요 사실. 위로의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은 아니라서. 이야기하다 보니 위로의 방법을 좀 찾아봐야겠단 생각도 드네요.


쁨지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지난 4월 쁨터뷰에서 은지 님이 ‘기쁨을 쟁취한다고’ 쓴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완벽히 동의가 되더라고요. 맨날 기쁠 수 없으니까요. 기쁨이란 감정이 단순하지 않은데 그 걸을 쟁취한다는 자세가 멋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완. 벽. 하. 게 동의했다!


자 오늘은 어떠셨는지

정민&쁨지기

좋았습니다! 기쁨곡간에 영향력을 의지하고자 한 마디 남기자면, 장위동에 청년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거든요. 장위동 사진관의 목표는 착한 대화, 착한 일들, 청년 커뮤니티예요. 어떻게 해아 할지 어디서 시작할지 잘 모르겠어서 혹시나 쁨터뷰를 보는 관련자들이 계시다면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저에게 연락 주세요:)

시스템에 의존해서 시작하려면 시작이 늦어지거나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하기 어려울 수 도 있어요. 리스크를 많이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해요. 기다리다간 너무 오랫동안 발을 떼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시작하는 기준을 너무 크게 잡고 있진 않았나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고! 아, 너무 라떼 같았다!

(진지모드) 용기가 되네요. 거창할 필요가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할 수 있다니.




쁨터뷰이에게 녹취를 풀고 1차적으로 내용을 갈무리한 글을 먼저 공유한다. 되도록 그 날의 대화를 보존하려고 하지만 문장을 가다듬으며 잘 못 적힌 뉘앙스가 없는지 물어보기 위해서다. 인터뷰 글은 나의 글이라기 보단 우리의 시간이니까.


파일을 보내드리니 “진짜 멋있어요. 멋있는 이유는..”이라며 애정 어린 말을 한 보따리 보내온 그녀의 기록으로 다섯번째 쁨터뷰를 마친다.


1.  몇 시간 동안 한 이야기를 빠르게, 또 잘 정리한 타이핑 실력!

2. 저에겐 인터뷰가 힘들어요.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그 안에서 좋은 질문을 파생시키고. 커뮤니케이션이란 어려운 것이니까요.

3. 다른 사람이 쓴 나의 말들을 처음 읽어봤어요. 제삼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는 기회를 준 점. 흔치 않은 기회였습니다.

4. ‘할 수 있는 선에서부터 시작하자’는 쁨지기의 말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정민님의 장위동 사진관 인스타그램
@iann.pic
https://bit.ly/3oLprGG

 

*쁨터뷰로 그대의 기쁨을 들여다보고 싶으시다면, 인터뷰 신청을 해주세요:)

insta. @soso_rej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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