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보통의 언어들>

주말엔 이 책을: 김이나 작사가, 보통의 언어들

by 찬란한 기쁨주의자

"너는 책을 읽어라, 나는 노래를 부를 테니."

그렇게 시작된 몇 시간의 노토크 노래 시간의 기록.

아주 오랜만에 준비된 프로그램 혹은 초대한 손님을 정성 들여 환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채로 공간희희에 왔다. 공간에 와서 해야 할 일도, 집에 돌아갈 시간도 정해지지 않은, 힘을 뺀 무목적의 유희 시간.

집에 돌아오는 길, 좀처럼 가시지 않는 행복감에 구름 멍을 때리다 생각해본다. 지금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시간은 어떤 모양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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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기타를 치는 친구를 앞에 두고 그러거나 말거나 얼마 전 선물 받은 김이나 작사가의 <보통의 언어들>이란 책을 읽었다. 공간희희 문을 연 이후로 처음이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도 꽉 채워 대화하지 않은 날이라니!

사실 이 책은 표지가 유치한 탓에 큰 기대감이 없었다. 다만 선물해 준 동생이 나의 취향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작은 믿음과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멀티로 읽기에 무난한 책이지 않을까 싶어 집어 들었다.

다양한 언어들 속에 담긴 뜻을 담담하고도 다정하게 풀어가는 글은 느린 노래에도 어깨를 들썩이지 않을 수 없는 노래에도 술술 읽혀 내려갔다. 책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며 김이나 작사가가 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멋들어 보이는 어려운 단어 하나 없어도 밑줄을 많이 긋게 되는 책이었다.

그중 '찬란하다'라는 표현을 풀어놓은 페이지가 있었다. 옆에 둔 엽서 뒷면에 참지 못하고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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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앞에서, 엽서에 끄적인 글

나에게 '찬란하다'는 표현은 단순히 무언가 빛나고 반짝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직을 위해 이곳저곳 면접을 보러 다니던 어린 날, 면접 1시간 전 준비를 위해 그 회사 앞 카페에 들렀다. 내가 주문한 것이 아이스아메리카노였는지, 라떼였는지는 희미한 기억이다. 하지만 26년의 나를 소개할 수 있다는 그 어설픈 종이 한 장을 잠시 내려놓고 창가에 꽂힌 시집 한 권을 꺼내들었던 때, <찬란>이란 한편의 시 귀퉁이에 닿아 바스러지던 햇살은 4년이 지금 지난도 마음 한 켠에 선연히 남아있다. 내게 '찬란하다'는 표현은 별 거 없는 그때 그 순간의 나를 선명하게 하는 말이다. 그림자 없는 눈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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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이병률 시인 / 그때 쓴 시, <찬란> 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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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7월 10일, 주말 오후의 한 때가 그대의 기억에 찬란히 남기를 바라며- 덕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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