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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May 26. 2016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서울살이편#2_북한산 둘레길(이라고 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꽤 오랫동안 나의 벗을 만나러 가지 않고 지냈다.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친구 만날 시간도 없었던 걸까.

귀하디 귀한 휴가를 이용해 친구를 만나러 가는 버스에 올랐다.

나의 25년 지기, .

(엄마가 산을 좋아하시니,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산에 올랐으리라 으레 짐작해본다:)



(혼자서도 잘하는) 느리지만 착한 2G 여행의 Today's 약속!

1. 이어폰 꼽지 않기: 바람, 나뭇잎, 물의 이야기를 듣자!

2. 스마트폰 사용 자제: 가능 방법은 사전에 조사하여 종이에 적는다.

3. 비닐봉지 받지 않기

4. 현금 쓰기

5. 앞만 보지 않기: 옆도 보고, 뒤도 보고, 위도 보고.



이렇게 스스로와의 약속을 하고 길을 나서니, 기다렸단 듯이 5개월간 보지 못했던 버스정류장의 예쁜 꽃들이 말을 건넸다.

   안녕, 어디 가는 거니?

응! 친구 만나러! 그런데 너희는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니?

   글쎄.. 오늘? 네가 우리를 알게 된 바로 오늘부터!


그렇게 나는 '김춘수 시인' 놀이를 하며 버스에 올랐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기새 등등하던 건물들은 낮아지고, 울퉁불퉁 산이 나타났다.

오늘 나의 목표지는 북한산 둘레길 1. 소나무 숲!!!.. 이었으나, 아마도 잘못 내린 것 같았다.

이왕, 어딘지 모르겠는 김에 등산계의 선구자인 우리의 아주머니들을 쫒아갔다.

 여기서 잠깐! 외국에 여행 갔을 때, 나 같은 길치들을 위한 Tip을 공개하자면,

 일단 길을 잃으면, 누가 봐도 여행객인 것 같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으로 따라가면 뭐든 나온다.


아!

경탄이 아닌, 탄식이었다.


겨우 찾은 북한산의 길은 흙이 아닌, 고무로 곱~게 수 놓여 있었다.

그러나 달갑지 않은 고무 길이라도, 북한산은 북한산이었다.

양 옆으로 우거진 나무들과 오리가 둥둥 떠있는 깨끗한 물이 그곳이 북한산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한참 고무 길을 따라 올라가니, 드디어 숲길이 보였다.

이제 두 발이 숨 좀 쉴 수 있겠지! 하는 순간, 여전히 길은 고무바닥이었다.


아!

서울의 산은, 산 마저도 이 두발이 흙을 밟지를 못하는구나.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올 수 있게끔 돕는 귀한 녀석일지도 모른다.

산을 오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산이 내려오는 것이라더니, 딱 이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잠시 나무 의자에 앉았다.


그래, 오랜만에 낮잠이나 자야겠다 싶어서 등을 뉘었는데...!

아!

무엇인가 나의 척추 중간을 강타했다.

나무 벤치 중간에는 볼록 솟은 나무 턱이 있었다.

아니! 산에 와서까지 이 한 몸 누워 쉬지도 못하나!!!

아니다, 아니야. 오히려 혼자만 편히 누워 이 좋은 산을 독식하지 못하게, 공평하게 오손도손 나눠 앉으라고 귀여운 선을 얹어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그럴 것이다.


이렇게 오늘도 지킬과 하이드의 어느 선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지친(뭘 했다고..?) 몸을 뉘었다.

나무 벤치의 사려 깊음으로 오랜 잠을 청하지 못한 나는 냉큼 일어나 김밥 두줄을 마시듯 먹고, 산(이라고 할 수 도 없을 만큼 조금 올라갔지만)을 내려왔다.


고무 길을 다시 돌아 내려오는 길에 커다란 돌팍을 만나 여기다! 하고 냉큼 누웠다.

(캄보디아 살 적부터 그렇게 아무 데나 잘 눕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하늘에선 아카시아 잎(이라고 추측되는)이 이마에 살포시 떨어졌다. 등으로 느껴지는 돌팍의 저릿한 시원함과 불어오는 바람으로 흩날리는 잎들이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아- 살것 같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너무 오랫동안 만나러 오지 않았음에, 온몸으로 하는 싱그러운 대화를 잊고 있었음에.


그래도, 널 만나러 올 때 널 아프게 하는 것들을 챙겨 오지 않았어!라며 귀여운 변명을 하곤

텀블러에 담아온 커피와 오렌지를 먹고 돌팍과 나무와 바람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뭘 했다고...)


다만, 제대로 된 흙길을 만나지 못해 여전히 답답한 발에게만큼은 미안한 터였다.

고무 길을 끝내고, 아스팔트 길로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올라올 때는 보지 못했던 조그마한 흙길이 보였다.

망설일 필요 없이 어디로 향한지 알지 못하는 길로 발을 내디뎠다.

늘 그랬듯, 일단.

냉큼 신발을 벗어, 맨발로 흙을 밟았다.


사실, 이렇게 산에 와서 맨발로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모 프로그램에 출연한 윈드시티 김반장의 하루를 보고 나서였다.


언제나 산을 갈 때는 맨발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없었다.

그런데 산까지 와서 그 무겁고 답답한 신발에 발을 가두어 놓는 것이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마음이 동했다.


김반장은 맨발로 산을 걷는 것 이외에도 진정한 '자유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마당에 낙엽을 끌어 모아 불을 피우고, 매번 뜨거운 물을 끓여서야 씻고, 채소를 직접 기르고 뽑아 아침을 해 먹으며 살고 있는데, 이렇게 살다가 부모님 댁에 가서 버튼 하나로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것과 같은 편리함에 둘러싸이면 마치 자기가 할 일이 없어진 것 같아 어서 집으로 돌아가 몸을 움직이고 싶단다.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김반장은 '자주'를 빼앗기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사실 내가 할 것이라곤 별로 없는 이 세대에

그는 '나는 살아있다'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진짜 '자유인'이었다.


내가 텀블러를 쓰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열심히 걷는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나, 세상이 바로 변하나.

늘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너 하나 불편해서 뭐가 바뀌냐. 막말로, 너 하나 에스켈레이터 안 탄다고해도,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다 타니까 에스켈레이터는 움직이고 전력은 나가는데.'

나도 안다.

그런데, 그냥 나도 살려고 하는거다.

아니,  뭐든 해야 사는거다.

그것이 내가 '자주'를 지키는 방법이고,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을 지키는 방법이다.


그래서 김반장도 맨발로 직접 땅을 밟는 것이 아닐까.

산을 오르며 만나는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찬 기운 서린 흙이 주는 생동감을 발 끝으로 느끼며,

그 숨결을 시원-하게 내뱉으려고-



그렇게 맨발로 하산하며!

산을 오르며 만난 할머니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학생은 왜 혼자 왔어? (학생이라고 불러준 것에 이미 마음이 녹았다.)

  나는 나이 드니까 친구들이랑 도통 시간이 맞질 않아 혼자 왔어. 운동 같은 거 뭐.. 혼자 와야지.

아-산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데, 나는 꼭 같이 산 다닐 사람이랑 결혼해서 같이 운동해야지!

이런 나의 말에 친구들은, 윈드시티의 김반장을 적극 추천했다. 정말 너랑 딱이라고.

아니, 이미 여자친구도 있는 분을, 아는 사람도 아닌 그 뮤지션께 결례의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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