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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Oct 30. 2021

오늘의 하늘을 보는 기록자

기쁨지기의 희희한 인터뷰 <쁨터뷰>

당신이 기뻐하는 순간, 그 찬란한 모습이 궁금해요.

일상과 비일상 그 어디에 놓인 기쁨을
함께 발견하고 기록합니다.



쁨터뷰 Take 9.
#유현석

푸르뎅뎅한 하늘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분명 낭만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나는 구름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기록할 줄 아는 거니까. 수원에서부터 들고 온 원두 봉투를 뜯어 직접 커피를 내려주는 현석님의 이야기에는 그만의 낭만, 그만의 다정함이 오롯이 묻어났다.

반가워요 현석님:) 인스타 친구의 오프라인 대면은 언제나 신기하네요. 본인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사진을 찍는 일과 커피를 좋아하는 청년입니다.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공부를 하고 있고 책 읽는 것도 꽤 좋아해요. 최근에는 심리학 관련 책을 읽었는데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새로운 시선을 가져다 주더라고요. 저만의 사진이나 영상의 방향성을 잡는 데 도움도 되는 것 같고요. 가끔 글을 읽다가 ‘이 내용을 영상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바꿀 수 있겠네.’ 상상하면서 읽어요.
 
텍스트와 영상, 콘텐츠를 접하고 새로 만드는 일은 언제나 영감을 필요로 하죠. 현석님이 일상 속에서 영감을 얻는 방법이 있을까요?

머리가 복잡하면 등산을 가거나 자연 속에서 충분히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얻어요. 특별한 것은 없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찾아가는 것 같아요. 아, 이렇게 커피 향을 맡으며 직접 내려 먹는 것도 좋아해요. 생각을 비우고, 새로 채우는 시간이에요.


수원에서 을지로까지 오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찾아와 주신 걸까요?

‘공간희희’는 어떤 곳일까 알고 싶었어요. 처음 이곳을 알게 되고 대관 가격을 찾아봤는데요, 이렇게 잘 꾸며진 스튜디오 공간을 어떻게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빌려 줄 수 있나 신기했어요. 서울에서 스튜디오 한 번 대관하면 거의 10만 원 정도 하니까요.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취지를 가지고 운영하시는 걸까 궁금했어요.

공간희희에서 직접 들고 온 커피를 내려 주시는 현석님


감사합니다(웃음) 실제로 와보시니 어떤가요?

앞으로 이런 공간이 앞으로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청년들이 편하게 올 수 있고 잘 쉴 수 있는 공간. 정말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곳이에요. 일반적인 대관 공간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진 않는데, 공간희희는 곳곳에 메시지가 가득해요. 혼자 와도 차갑지 않고 따듯할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공간을 기획할 때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 그 부분이었어요! 희희가 있을 땐 희희와 대화하는 것이 공간이 주는 메시지가 되지만, 희희가 없을 때 오시는 분들에게도 공간이 말을 걸면 좋겠다는 것. 이왕이면 다정한.



 
현재 영상을 배우고 계신다고요.
제가 기계나 신문물과 그다지 친한 사람은 아니에요.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만들어진 좋은 제품을 사는 것에 대한 욕심은 없는 편이거든요. 영상도 처음에는 무언가를 만드는 개념으로 좋아했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사진 여러 장을 연결해 만든 영상 위주였는데, 제가 만든 영상을 보면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는 게 좋았어요. 심지어 노트북도 없이 폰이나 아이패드로 만들었어요. 무려 아이패드 에어2!(웃음)


인스타에 사진 계정도 운영 중이신데 요즘 ‘핀홀 카메라’에 빠지셨다고 들었어요.
핀홀 카메라는 학교에서 처음 배웠는데, 지금 수업해 주시는 교수님 제외하고 국내에서 가르치는 분들이 별로 없다고 하더라고요. 교수님께서 ‘지금은 뭐든지 빨리빨리 하는 시대가 됐지만 조금 더 여러분들이 무엇이든 천천히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라고 이야기해주신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핀홀 카메라는 필름을 뺐다 넣었다 할 수도 없지만 내가 지금 무엇을 찍고 있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생각하게 돼요. 계산할 것이 많아요. 시간에 따라서 사진의 색감이나 무드가 많이 바뀌거든요.
*핀홀카메라: 렌즈 대신 바늘구멍 같은 작은 핀홀을 통해 박스 안으로 들어온 빛과 필름이 만나 사진이 찍히는 카메라.
 

인스타 피드 속 사진 색감이 전체적으로 푸르댕댕해 보이는데, 현석님만의 취향일까요?

지금 올리는 사진들은 필름 본연의 색깔이기도 한데요, 따로 보정하지 않고 살리고 싶었어요. 파란 색감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제 사진의 방향성을 찾는 중인 것 같아요. 사람들 눈에 편한 색깔이 뭘까 고민을 많이 하기도 하고 사진기마다 색감이 다르니 다양하게 시도해 보려고 해요.


저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 사진 찍는 사람들은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제주도를 한 바퀴 걸어서 돌았던 적이 있어요. 성산 일출봉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으려다가 두 번이나 실패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제주 날씨는 변화무쌍하잖아요. 해가 보일까 말까 하며 바람이 부는 데 결국 못 찍었거든요. 아쉬움 때문에 기억에 남나 봐요. 또 이호테우 해변에서 해 질 녘에 찍은 사진도 좋았어요. 제주는 바다마다 노을 색이 다르더라고요.


최근에 찍은 사진 중에 베스트 컷이 있다면?

제가 존경하는 은사님 두 분이에요. 여러 면에서 저를 이끌어 주신 가족 같은 분들인데요, 제가 가장 힘든 시기에 버팀목이 되어주셨어요. 어느 날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보는데 이제 두 분도 나이가 많이 드셨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함께 보인 하늘이 애잔하고 예뻐서 찍어 뒀어요.

현석님이 버팀목, 은사님들의 뒷모습


글이나 사진,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담아내는 일이잖아요. 저는 인스타그램에 그날 만난 분들과 찍은 사진을 올리고 그날 나눈 대화나 느낀 것에 대해 글을 쓸 때 행복해요. 기록의 매력이랄까요.
찍어둔 사진을 보다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시간이 오래도록 흘러 한 사람의 성장 스토리가 보일 때? 특히 아이들 사진 찍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네요. 제가 눈이 많이 안 좋은 편인데 이렇게 사진으로 소중한 존재들을 담아서 오래도록 두고 보고 싶어요.
 
특별히 기뻤던 기록의 순간이 있을까요?
제가 정말 아끼는 동생이 있는데 동생의 첫째 딸 돌 사진으로 제가 영상을 만들어 보내준 적이 있거든요. 아이를 사랑하고 자랑하는 동생도, 자라날 아이도 너무나 사랑스러웠어요.


‘이런 사진을 찍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봤다!' 하는 것이 있나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하루에 30km를 걷는 그 길에도 삼각대부터 모든 사진 장비를 다 짊어지고 다녔어요. 심지어 겨울이었죠. 그렇게 찍은 사진이 이 사진인데요. 하늘이 다 보라색이에요.

그가 말한 대로 보정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빛깔의 하늘이다

주변 지인들이 이 사진을 보고 색 보정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 정말 오리지널 노을 색이거든요. 지중해성 기후라 우리나라 하늘과 또 다른 빛깔이 있더라고요. 사진 찍기 전에 창문 밖 하늘을 보고 무슨 난리가 난 줄 알았어요. 어떻게 하늘이 이런 색이지? 그때 사진 찍으려고 슬리퍼를 신은 채로 허겁지겁 좁은 담장을 기어 올라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 순간을 꼭 담아내고 싶었어요.


기록에 대한 열정! 저도 한 기록하는데, 어떻게 하면 ‘잘 기록하는 사람’이 될 수 있냐고 주변에서 자주 물어봐요. 저는 별생각 없이, 욕심 없이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라고 이야기해요. 습관은 곧 충분한 연습이 될 테고, 경험은 언젠가 실력으로 보이니까요.

‘이렇게 해야지’가 기준이 되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아요. 저마다 잘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있고, 이 사람만큼은 사진을 찍어야지, 글을 써야지, 자주 해야지.. 비교의 기준이 생겨버리면 시작할 엄두가 안 나는 것 같아요. 기록을 하려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기록하는 일에 대한 본인만의 가치와 재미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자신의 스타일과 속도대로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현석님이 습관적으로 찍는 무언가가 있나요?
하늘을 많이 찍어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구름이 너무 예쁜 거예요. 그러면 구름을 찍어요. 사람을 찍을 때는 무언가 잘 찍어야 한다는 압박이 더 있는데 하늘이나 구름, 자연 사진은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찍을 수 있어요. 찍고 나서 볼 때 눈도 편하고. 그리고 구름 사진만 보면 몇 월 며칠인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거든요. 그런 부분이 저에게 주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행복에 대해 올리신 피드글을 봤어요. 행복을 찾아 나아가고 있다는 말의 의미가 궁금해요.

사람들이 행복하려고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하는 것들을 보면서 내가 진짜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고민해 보게 되더라고요. 가족이나 가장 사랑하는 이들과 보내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까이에 스며들어 있는 나머지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행복을 얻기 위해 쫓았던 것들을 뒤로하고 멈춰보면 부모님 얼굴에 이마 주름이 보이기 시작해요. ‘내가 이 주름 생기는 것 볼 시간 도 없었나.’ 싶죠.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각자 책을 읽고 tv를 보더라도 함께 있는 순간이 소중한 것 같아요.


사전 질문에서 쁨터뷰가 세바시처럼 선한 영향력을 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해 주셨는데, 그 선한 영향력이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까요?

세바시가 지금은 방향이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쁨터뷰가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보다는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어요. 보통 인터뷰는 무언가에 있어서 굉장히 성공하고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느낀 공간희희나 쁨터뷰는 누구나 와서 자기 이야기를 편히 할 수 있는 벽이 없는 공간 같아요.

아주 정확한 쁨터뷰의 타겟이었군요. 적중했네요(웃음)




지난 쁨터뷰이가 남겨둔 질문 시간이에요. “기쁨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지금 당신이 즐겁다고 하는 일이 정말인지 정말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 일이 맞는지 묻고 싶네요. 때로는 의무감을 느낄 때도 있으니까요.”라고 하셨거든요.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하는 것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 순간순간들이 쌓여 공부가 되는 것 같고요. 가끔 학교에서 팀플 조장이 되면 부담감을 느끼기도 하지만(웃음) 그런 의무감이 들 때는 내가 이끄는 자리에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배우려고 해요. 제 주장은 조금 더 비우고요. 그렇게 함께 무언가가 굴러가는 과정에서 의무감을 잊고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다음 쁨터뷰이에게 남기고 싶은 질문?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진짜 마지막으로 오늘의 쁨터뷰는 어떠셨는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보니 스스로를 재정립하는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 이렇게 따뜻한 공간을 알게 되어 기쁘네요.

현석님이 좋아해주신 따뜻한 공간희희, 을지로에 있다.

"공간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그 공간을 만든 사람들을 대변하여 주는 것 같다."

_쁨터뷰 후 쁨지기가 선물한 꽃을 현석만의 방, 책상 위에 놓고 쓴 글 중.


insta. @soso_rej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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