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지기의 희희한 인터뷰 <쁨터뷰>
당신이 기뻐하는 순간, 그 찬란한 모습이 궁금해요.
일상과 비일상 그 어디에 놓인 기쁨을
함께 발견하고 기록합니다.
쁨터뷰 Take 8.
#이재훈
노래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노랫말 몇 마디와 곡조로 사람의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들뜨게도 한다.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장난을 치다가도 무대 앞에만 서면 금세 '바리톤'이 되어버리는 재훈님. 그의 노래는 어쩐지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는 그의 깊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었던 재훈의 이야기.
우리 원래 그냥 밥 약속이었잖아요, 쁨터뷰 제안이 느닷없진 않았어요?
이 전의 쁨터뷰들을 많이 봤어요. 쁨지기 브런치에 알림을 켜놨거든요.
오오(박수)
제안을 받고 ‘이게 내가 해도 되는 건가? 나 같은 사람이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러웠어요. 너무 좋은 기획인데 제가 피해를 끼칠까 봐요. ‘기쁨’이라는 인터뷰의 주제를 생각해보니 내가 무엇으로 기쁘게 살아왔나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싶어서 냉큼 하겠다고 했어요.
보통 유명인들이 많이 하게 되죠. 하지만 저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저마다의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일상을 기록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믿어요. 저에게도 쁨터뷰이에게도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지금의 기쁨과 나아가야 할 기쁨을 고민하는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요.
제 최애 성악가, 바리톤이 재훈님인거 아시죠? 사심 가득 담은 질문 폭격이 이어질 예정인데요, 성악은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부터 이야기해 주시겠어요?(초롱초롱)
처음엔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제가 주변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해서 개그맨이 되고 싶었는데 대학을 안 나오면 공채에 갈 수 없어서 학력이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공부에는 큰 흥미가 없어서 조금 더 가능성 있는 대체제로 노래를(허허)…
고등학교 때 합창부를 했는데 성악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목소리가 좋으니 성우 해보는 것이 어떻냐는 이야기는 종종 들어왔는데 성악이라니! 제가 음역대가 정말 낮거든요. 재능도 없고 클래식에 흥미도 없었죠. 그 이후로도 꽤 많은 사람들이 성악을 해보라고 권유했어요. 고2 때 특활 시간에 만난 선생님께서도 성악을 추천하시면서 “나는 네가 나중에 네 목소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다. 목소리에 재능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물론 그때도 거절했죠. 그러다 고3이 되기 직전에 교회 청년 선생님들이 또 성악을 권하시는 거예요. ‘왜 이렇게 다들 성악을 하라고 부추기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고 집에 슬쩍 이야기를 해봤죠. 성악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는다, 나 이거 해보고 싶다. 그런데 한국에서 성악을 한다는 것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드는 일이다 보니 가족들의 우려와 반대가 있어서 그 후로도 우여곡절이 많았답니다.
...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온 가족이 앉아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 형이 “정말 하고 싶으면 해라 대신 네가 직접 돈을 벌어서(알바를 하면서) 스스로 이뤄내 봐라”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일하고 노래하고 정신없이 고 3을 보낸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는 걱정과 생각을 바꿔봐야겠다. 된다는 걸 보여주자! 그런 마음으로요.
성악으로 대학을 준비하며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요?
겨울이었어요. 정시 신청 기간에 유리한 순서로 신청을(뒷 순서)하려고 피시방에 가서 타이밍을 기다리다가 갑자기 제 컴퓨터가 셧다운이 된 거예요. 그 많은 컴퓨터 중에 하필! 원서를 다 작성해 놓고 확인만 누르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피시방 컴퓨터는 전원을 껐다 켜면 다 초기화가 되잖아요. 손발이 떨리고 패닉 상태가 왔어요. 정말 제 인생 최고 속도로 달려 교회에 갔고 마감 1분 전에 컴퓨터를 딱 켰는데! 이미 늦었죠. 그 자리에서 바로 오열했어요. 그 순간엔 성악을 이미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 후에 1년을 더 준비를 하게 됐죠. 마음을 다시 붙잡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렇게 스펙타클한 시간을 지나서 성악을 배우게 된 첫 순간이 기억나나요?
전공 수업을 들으며 ‘나도 전문성을 가진 음악인이 되는구나’ 기대로 가득 차 있었는데 곧 현실을 깨달았어요. 저는 노래만 연습했어서 이론을 잘 모르는데 타고난 천재들, 소위 말하는 절대음감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내가 이런 사람들과 동등해지려면, 저 재능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있어도 될까?'하는 생각이 폭풍처럼 밀려왔죠.
노래를 부르며 가장 기뻤던 순간이 궁금하네요.
제가 노래를 시작할 때부터 생각한 것이 있었는데요,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라는 곡을 꼭 부르고 싶었어요. 성탄절에 부르게 됐는데 꿈꾸던 순간이 이루어진 것에 정말 감사하고 기쁘면서도 목이 좋지 않던 상태였어서 아쉬움도 남았던 것 같네요.
재훈님의 노래 인생을 음악 기호로 표현한다면? 제가 최근에 코다라는 영화를 봐서 말이죠. 하하
아, 이거 수업 때도 한번 했었어요! 저는 ‘메사디 보체’. 크레센도와 데크레센도 사이의 구간을 의미하는데요, 점점 커졌다가 줄어드는 거죠. 제 인생이 그런 것 같아요. 점점 커질 때도 있고 점점 줄어들 때도 있고. 삶의 전성기를 그 사이의 빈 공간이라고 한다면 저는 커지고 있는 초반부쯤에 있는 것 같네요.
(*messa di voce: 일정한 음을 길게 뻗으면서 서서히 크레센도하다가 이어서 데크레센도하여 끝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발성 훈련에는 널리 사용되지만, 연주에서 사용되는 일은 적다. _ 네이버 지식백과)
음악적으로 그런 구간은 어떤 느낌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특별한 규칙이 있나요?
그건 하는 사람의 재량인데, 제가 생각하는 ‘빈 공간’은 그 사람의 모든 걸 보여주는 타임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걸 찾아 해나가고 있는 것도 엄청난 기쁨일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면 하나의 직업일 뿐이었는데, 지금은 그 직업을 넘어서 해내고 싶은 ‘목표’라는 게 생겼거든요. 그 목표도 계속 넓어지고 있는 것 같고요.
재훈님이 말하는 삶의 목표란 무엇일까요?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일이요! 지금은 제가 노래를 하고 있잖아요.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도 주고 응원도 하고. 특별히 제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슬픈 때를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 불러 주고 싶은 노래가 있나요?
‘세상을 사는 지혜’라는 곡이요. 하늘을 볼 겨를 없이 세상을 살다가 인생이 허무함이 내 삶을 짓누를 때 그제야 하나님을 찾는다는 가사인데요, 무언가 불안하고 확신이 없는 때에 들으면 좋더라고요.
-> 재훈님이 부르는 '세상을 사는 지혜'가 듣고 싶다면
노래 외에도 위로를 전하는 가치를 이루고 싶은 다른 일,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스탠딩 코미디!
와.. 우리나라에 하는 사람 별로 없잖아요. 유병재 씨 정도?
맞아요. 주로 해외에서 많이 하는 편인데,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고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강연이 될 수도 있어서 매력적인 것 같아요.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재훈님의 노래를 더 들려줄 생각은 없나요?
네! 저는 제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네?(웃음)
그런데 아직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은 것은 아니고 나중에 자연스럽게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재훈님처럼 노래를 했으면 바로 유튜브 했을 거예요. 하하. 저는 주로 인스타나 브런치에 기록을 하는 편인데, 그걸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같이 해나갈 사람들도 만나고 하면서 세상이 확장되는 것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재훈님께도 잘 맞는 기록과 소통 채널이 곧 생기길! 팬 1호 기다립니다:)
재훈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쁨의 모습은?
가족 앞에서 “나 오늘 이런 노래 했는데 들어봐 줄 수 있어?”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모습을 상상해봐요. 가족 앞에서 노래해 본적이 많지 않거든요. 그래도 최근에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 모습에 조금씩 발을 내딛고 있어요. 가족 식사 때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하고 학교 연주회에서 독창할 때도 부모님이 오셨거든요.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었어요. 저희 아버지께서 평소에 되게 무뚝뚝한 분이신데 처음으로 제게 “잘하네~ 우리 아들 너무 자랑스럽다. 우리 집에서 음악 하는 사람이 몰랐는데 네 목소리 듣자마자 타고난 가수라고 생각했어. 영상 다 보내줘라 친구들한테 자랑하게.”라고 말씀하셔서 울컥했죠. 그 연주회 때 관객석 멀리 어머니 실루엣이 보였는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로 우리 가족 행복하게 해 줄게.’라는 마음으로 노래하게 되더라고요. 노래를 다하고 내려와서 어머니가 고생했다고 멋있었다고 하는 순간 또 울컥!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눈물 참기네요 저도. 그렇지만 지금 이렇게 사랑하는 일도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오겠죠? 그때의 재훈이에게 한 마디 남겨 놓는다면?
최근에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저는 누군가에게 타박을 받을 때 마음이 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말을 또 들을 때를 대비해 “왜 네가 기죽어? 일어나야지!”이렇게 사랑의 매를 남겨 놓고 싶네요. “재훈아 너는 너만을 위해 노래하는 것이 아니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봐. 너 자신 말고 네가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봐.”라고 해주고 싶네요.
다음 쁨터뷰이에게 남기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기쁨’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지금 당신이 즐겁다고 하는 일이 정말인지, 정말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인지 묻고 싶네요. 때론 그런 것들에 의무감을 느낄 때도 있으니까요.
스스로에게 많이 묻는 질문 같은데요.
맞아요. 예전에는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했어요. 감사하게도 지금은 나름의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쁨지기에게도 질문 하나 해주세요!
쁨지기는 쁨터뷰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 혹은 일을 할 때 기쁨이 있나요?
오브 콜스! 저는 제가 어떨 때 기쁨을 느끼고 기쁜 존재로 살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렇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죠. 예를 들면 재훈님을 만나 함께 기뻐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평소에 운동을 하며 체력관리를 한다던지, 건강하고 좋은 마음을 잘 정돈하며 산다던지? 바쁜 일상에 치이다가 남은 에너지로 누군가를 만나기보다 정말 중요한 것을 위해 소중한 것을 미리 떼어 놓고 준비하는 것이랄까요.
자 이제 정말 마무리. 오늘의 쁨터뷰, 어땠어요?
이번 기회로 여태까지의 기쁨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었고, 앞으로 다가올 제 기쁨이 무엇인지 계획하고 실현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 쁨지기님과 인터뷰하면서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자체로 또 하나에 기쁨을 얻었습니다!
(시킨 거 아닙니다. 빙그레☺️)
insta. @soso_rejo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