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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Jul 29. 2022

이천은 쌀밥 말고 테르메덴이 제철

7월의 북스테이, 오월의 푸른하늘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오늘오 푸르른 칠월의, 아니 오월의 푸른하늘

 아침 시편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한 우리. 다정한 숙소 사장님께서 주신 체리와 오렌지, 오설록 곶자왈 차를 마시며 나무 의자에 앉아 매미소리 그득한 7월의 아침 햇살을 맞았다.

 그저 걱정 없이 행복한 때를 지나는 요즘, 스스로가 지닌 유복함에 감탄하며 감사할 때가 많다.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고 있고, 희노애락을 함께 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여럿 있으며, 빨래와 곰팡이 그리고 음식 냄새와 함께 잠들지 않아도 되는 넉넉한 집에 살고 있고 또 이렇게 책이 가득한 숙소에 드러누워 원 없이 독서를 할 수 있다.

 고등학교 윤리 수업에서 배웠던 에피쿠로스 학파가 생각난다. 스토아학파와 늘 대비되었던 그들에게 붙었던 꼬리표는 오직 ‘쾌락’이었다. 지금 내 옆에 두고 읽고 있는 책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을 보니 얼마나 오래도록 이 검소한 이들에게 무례한 편견과 질투를 보내왔는가 싶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가치를 같이 하는 친구들과 아테네에서 ‘정원’ 공동체를 설립해 공동생활을 실험했고 ‘돼지’라고 불리던 소문과 달리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다. 무려 치즈를 사치로 여길정도로. 이들은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탐구했고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만 우정을 나눌 서로를 필요로 했다.


“자연스럽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은 제한적이며 쉽게 구할 수 있는 반면, 공허한 허영에는 끝이 없다.”

 계절 절기에 맞게 온갖 이유를 대며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나를 멀-찍이 보면 인생의 목적이 ‘기쁨’뿐인 인간인가 싶으려나(오죽하면 직접 만들어 입은 티셔츠 뒤 글씨도 REJOICE냐며!)

 에피쿠로스 학파와 같은 오해를 사지 않으려 일찌감치 해명해 본다면, 나의 ‘평정’은 내 삶의 과거와 현재의(더불어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들이 없어서가 아니다. 정말로 결단코 아니다. 단지 내가 나의 정체성답게, 자연의 일부인 인간 1로 자연스럽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 여기기 때문이다.


 이천 오월의 푸른하늘, 북스테이 2일 차를 맞이하며 나와 수빈이 가장 많이 한 말은 “와, 진짜 너무 행복해!”이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복에 양껏 감사해하고, 이 기쁨을 숨길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이는 복이 있나니!


#아무튼, 김은지

 책이 가득한 북스테이를 오면서도 기어이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여행길엔 비교적 가벼운 에세이를 선호하는 편이라 <아무튼 할머니>를 골라 들었다. 작가의 할머니에 대한 회고록일까 했는데 뒤로 갈수록 사회에서 노년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를 해냈다.

 나는 종종 “핵인싸 할머니가 될 테야!”라는 장래희망을 밝힌다. 동네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책을 읽어가며 장래희망을 표현하는 문장들을 조금 더 추가했다. 매일이 신나는 할머니, 여전히 무언가 배우는 할머니, ‘약자’로만 보이는 것이 아닌, 지혜와 너그러움 그리고 위트의 능력이 있는 노년 여성. 아무튼, 언제고 김은지를 잃지 말고 살아야지.


#여름엔 물놀이가 제철

이천 온천 풀&스파 테르메덴 수영장 야외풀

 여름엔 물놀이라니. 이 무슨 당연한 말인가.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순리(?)를 거스르며 살 때가 많다. 봄엔 꽃향기를 맡지 않고, 여름엔 햇살에 익어가길 두려워하고, 가을엔 낙엽에 일렁이지 못하고, 겨울엔 하이얀 눈에 폭 안기지 못한다.

 여름에 태어난 아이는 여름에 가장 많이 큰다.(어디 유명한 사람이 남긴 말 아니고 내 생각) 8월의 아이인 나는 여름을 사랑하다 못해 1년 내내 타오르는 열망을 지니고 산다. 그러니 그 해 여름엔 손 발이 다 쪼그라들 때까지, 발등이 타 하얗게 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원 없이 물놀이를 하며 보낸다. 올해도 이미 6월부터 시작해 제주 바다며 동해 바다며 열심히 누볐는데 오늘은 이천 산 아래, 테르메덴 수영장을 말 그대로 휘젓고 다녔다.

지이이이인짜 행복해 보인다 물 속에서 갓 태어난 것 같네

 자타공인 취향 동지 수빈은 물놀이 좋아하는 것까지 같구나. 구불구불 미끄럼틀도 여러 번 타고 쏟아지는 물 바구니 아래 서서도 등짝을 내맡겼다. 부지런히 놀다 잠시 실내 수영장 쪽으로 들어와 뽀글뽀글 온천수처럼 물이 나오는 기슭에 몸을 뉘었다. “어으~좋다.” 어깨와 머리를 뒤로 하고 두 발을 동동 띄워보니 제법 풍류를 즐기는 으른답다. 아래서 위로 솟구치는 물보라의 휘말리며 모든 감각을 잠시 발 끝에 집중해 본다. 과거의 상념도, 다가올 월요일의 어지러움도 아닌 오롯한 지금의 발가락들.


#귀여운 게 최고야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이목구비가(?) 야무지게 귀여우면 생존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부모의 보호를 더 확실히 받는다나…?(어디서 봤는지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다만)

 오월의 푸른 하늘을 지키는 고양이 버번. 사람 인기척이 나면 기똥차게 다가와 그릉거리며 엉덩이와 머리를 대고 배를 까뒤집는다. 본서점에 읽을 책을 고르러 들어갔다가 버번 앞에서 떠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서점지기님이 오셔서 츄르를 내미신다. “걔한테 빠지면 책 못 읽어요.” 이 친구 손님을 한 두 번 만나본 것이 아니다. 그래도 어떡해! 이렇게나 귀여운데! 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KBO 후반기 기아타이거즈vsSSG 11:2 승리!!!

 그리고 오늘 최고 귀여운  해설위원이 “나스타가 이끄는 나스 타이거즈~!!!”라고 외치게 만드는 우리의 나스타! 리그 1위인 SSG 상대로 홈런을 두방, 안타를 뻥뻥 쳐서 혼자 7타점 하신 성범씨 되시겠다.


#별은 자꾸만 볼 수록 반짝이는 춤을 춰요

 곤히 잠든 수빈을 두고 잠시 마당으로 나갔다. 네가 이 밤에 깨어 있다니 별 일이다 싶겠지만 별 수 있나 별은 늦게 뜨는 걸. 거센 산모기를 쫓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며 별구경을 했다. 서울에선 많은 별을 보기 어려우니 조금이라도 도시를 벗어난 곳에 오면 별을 본다.(나를 아껴주는 고마운 이가 있다면 큰 맘 먹고 졸라 별을 보러 가자고도 하고.) 밤 잠이 많다 못해 칸트 같은 수면 루틴을 가진 내가 기다렸다가 보는 이가 별님이다.


 머리 위를 빙 둘러싼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아는 별자리들도 반갑게 보인다. 어둑한 하늘을 보면 별이 많이 보이지 않다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곳저곳에서 신생 별이 발견된다. 그 빛이 내게 오기까지 몇억광년이 걸렸다는 신비가 무색할 만큼 몇 초, 몇 분 차이로 자꾸만 별이 늘어난다.


 오래 보아야 어여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별도 오래 보고 자꾸만 다시 보아야 하나 둘 드러난다.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을 그 자리를 1.0 미만의 시력을 가진 인간은 잘 보지 못한다. 저마다의 밝기와 박자로 아름다운 춤을 추는 존재들을 기다려 보지 못한다. 사람에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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