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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Jul 30. 2022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7월의 북스테이, 오월의 푸른하늘

#글솜씨

 글을 시작하고 맺는 솜씨, 밀고 당기는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나는 내 글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한비야씨의 책을 읽으며 ‘나도 커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묘사하는 것들이 그려지는 것 같은 글을 써야지.’ 싶었는데, 인스타와 브런치 그리고 뉴스레터에서 내 글을 읽어 주는 분들의 말에 따르면 “딱 봐도 김은지다.”라고 칭찬을 받고 있으니 이미 글로서의 꿈은 다 이룬 셈이다.

 한 자 한 자, 한 문장에 온 힘을 들여 마침표를 찍는 진실된 작가님들과 달리 나는 글을 쉽게 써낸다. 쉽게 쓰이지 않는 글은 좀처럼 쓰지 않는 것 같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당장에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열망과 보호대를 차지 않은 손목이 필요할 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쉽게, 긴 글이 잘 써지는 때는 여행을 다닐 때다. 꼭 멀리 나오지 않더라도 스스로 여행이라 여긴 쉼의 때들도 그러하다. 모든 순간이 영감이고 만나는 모든 존재에게서 배우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되도록이면 그날 밤 1시간이라도 들여 일기를 쓴다. 글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에 가장 생생한 감각을 남겨둘 수 있다.


#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 아닌가

오월의 푸른하늘 본서점

 이번 2박 3일 여행은 북스테이였다. 말 그대로 책이 가득한 숙소에 와서 책을 읽는 시간을 주로 하는 머무름이다. 아아, 누군가 내게 책을 얼마나 좋아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줘야 할까. 어디선가 인간이 느끼는 행복감의 순위를 나열한 조사를 본 적이 있는데 1위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의 연인이 되었을 때”였다. 내게 책은 거절 없이 반드시 사랑받는 연인이다. 그의 옷자락(책등)만 봐도 설레고, 뒷모습(책 뒤의 추천사, 요약 등)은 그를 만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든다. 내가 그를 잊지 않기만 한다면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이다. 말은 또 얼마나 잘 통하는지! 책 읽기를 정말, 오죽 좋아하는 사람이면 이런 글을 쓰고 있을까.


#아침엔 산책을 해줘요

 벌써 2박 3일이 다 지났다니. 말도 안 돼! 8시 반쯤 눈을 떠 숙소 앞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어느새 버번이 눈앞에 어슬렁 거리며 와서는 드러눕는다. 이거 지금 내 독서 방해하겠다는 귀여움 공격 맞지? 미안하지만 버번아, 나는 너보단 에피쿠로스가 더 좋다….. 고 말하면 좀 지독하려나. 나는 곧 이 고을 떠나고 책은 마저 읽어야 하거든.


 밖으로 나온 수빈이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하기로 했다. 여행 내내 사진을 참 멋지게, 열심히 찍어주는 수빈 덕분에 오늘도 아침부터 파란 모자와 리죠이스 티셔츠가 반짝이는 사진들을 건졌다. 백일홍처럼 밝고 뚜렷한 색을 내는 너와 함께한 산책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야. 물론 이천 덕평리 골목길에 생겨난 우리 둘만의 비밀도!


#믿음문고

양재역 양재시민의숲 믿음문고
큐레이션 독립서점

 우리가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냐면, 2박 3일 북캉스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양재역에서 헤어지기 전에 평소 가보고 싶었던 독립서점을 들르기로 했다.

 아치 모양의 내부 구조가 멋진 믿음문고. 꼭 와보고 싶었는데, 나와 책 취향이 잘 맞지는 않아서 여러 번 오진 않을 것 같다. 하하

마지막까지, 양재동커피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번 여름 북캉스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을 꼽으라면, 테르메덴에서 신나게 물을 맞던 순간, 수영 후 국룰 육개장 사발면, SSG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양현종 대투수의 호투, 멋진 노을을 보며 친구랑 통화하다 헌혈왕이 된 것, 고영희씨 순간포착, 백일홍이 가득했던 동네… 수도 없이 많겠지만 ‘가장’이라는 어려운 선택을 해 보자면 오월의 푸른하늘을 지키는 서점지기, 최린 대표님(혹은 사장님)이다.

 나에게 이번 숙소를 고르는 과정은 단순히 예산에 맞게 쾌적한 곳을 고르는 숙박 그 이상의 것이었다. 책을 조금 놓아두고 ‘북스테이’ 흉내를 내는 곳이 아닌, 진짜 서점, 진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곳이야말로 책이 건네는 말을 오롯이 전달할 수 있고 지친 도시여행자들이 누울 만한 푸른 초장이 될 수 있으니까.


 숙소에 있는 3일간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았다. 책을 골라둔 그의 안목, 오래된 할아버지 집을 잘 살려 꾸며낸 솜씨, 자연주의(?)로 자라게 두되 그 나름의 질서가 조화로운 정원, 고양이들을 대하는 다정함, 체리와 오렌지를 건네는 상냥함 그리고 마침 파업한 버스 때문에 고생할 우리를 위해 이천역까지 데려다준 친절. 이 멋진 사람과의 대화를 놓칠 수 없었던 나는 드디어 차 안에서 기회를 틈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일본에서 지역학(마을 공동체, 노령화 등)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건축을 공부했다는 최린님은 원래 NGO에 들어가려다가, 이천에 와서 보고 바로 여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생각했다고. 많은 지식, 훌륭한 사유, 여러 가지 기술을 갖춘 사람은 있겠지만 그것을 가장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만들어 내는 ‘진짜’는 드물다.

 공간 곳곳에 십자가가 보였다. 믿는다는 것은 삶에 어떤 의미일까, 일상에 어떤 변화를 줘야 하는 걸까? 믿음은 무엇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의심 없이 신뢰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미 그러한 것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믿음은 나의 삶을 변화시켰을까? 나와 함께 사는 이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을까? 사랑의 회복력을 믿는 나는, 기쁨의 활력을 소망하는 나는 어떤 인상을 주고 살고 있을까. 작은 십자가 하나가 던지는 질문 앞에 다시 꿇어앉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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