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마을에 연탄을 나르고 와서
나를 부를 때 너희는
거기도 강남이라고? 를 호처럼 단다
나는 그렇게
거기도 강남인 구룡마을 선생이 된다
나는 종종 건넛마을에 사는 아파트를 보며
머리에 시멘트도 안 마른 것들이라고 흘겨보지만
내가 흘겨보는 것은 그들의 口*뿐이다
너는 언제나 나를 내려다본다
사실 대충 흘려보기를 더 즐겨한다
내가 하얗게 불탈 때 가만히 있던 너희들은
다시 까만 연탄을 한 아름 안고 내게 왔다
하얀 자리가 첫눈이라도 되는 양
소복소복 밟으며 내게 온다
어느 시인이 연탄을 소중하게 여기랬다고*
진짜 연탄은 소중하게 여긴다
연탄만큼은.
*한자: 입 구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시를 쓰고]
어제 구룡마을로 연탄 1,000장을 나르고 왔다. 얼어 있는 연탄을 떼어낼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단체명)을 했다는 작은 보람이 어딘가에 숨겨둔 양심을 콕 찔렀다. 천호동에 사는 나에게 구룡마을도, 건너편 아이파크도 무관하지만, 실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 자꾸만 껄끄러워졌다. 단발성의 봉사 활동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연결을 통해 우리는 마주칠 수 있으니까. 오히려 마주침을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서 자꾸 소리치는 것을 외면하기 어려워 시를 썼다. “그곳이 불탈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