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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Aug 19. 2017

내 힘을 빼고,

#패기휴가: 미국 방랑기6. 보스턴 6일차

#미국까지 왔으니.. 영화 한 편 찍을까요 우리?


카우치서핑을 하면 꼭 선물로 한 끼 정도는 직접 한 요리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곤 했다. 지난번 유럽 배낭여행 때는 미리 고추장까지 가방에 넣어가서 매운 닭볶음탕과, 찜닭을 양손으로 동시에 해서 온 가족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적이 있던 터라, 이번 여행에서도 꼭 한 번은 5남매를 먹이느라 매일같이 고생하시는 여림이의 어머니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 끼의 식사를 쉬는 쉼이라도 드리고 오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집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날씨가 꾸물 꾸물하더니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기로 했는데, 일이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엄청난 트래픽으로 탄 버스는 우리가 갈아타야 할 막차 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우릴 내려주었고, 설상가상으로 전혀 어딘지 모르는 곳에 내리게 되었다.

비바람과 싸우며 우리는 지나가는 차가 튀기는 물을 피하며 재난 영화 한 편을 찍고 있었다.


와 이거 진짜 영화 아니야?
빨리 우버 부르자 (우버는 이곳의 카쉐어링 어플이다.)


내가 유심을 뺀, 인터넷도 되지 않는 바보 폰을 가지고 있는 터라, 이것 저것 어려움이 있었다.

여림이가 우버로 등록한 카드에는 돈이 없고, 심지어 다시 쓸 일 없겠지 싶어 어플도 지운 상태였다. 이것저것 시도를 하고 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직감이 왔다. 아 이거 비전트립이다. 기도하자 우리. 히치 하이킹하자.


그렇게 우리는 물을 잔뜩 튀기는 차를 피해 종종걸음으로 나름 차를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되는 곳으로 가서 종이도 펜도 없이.. 우두커니 섰다.

그리고

그 작고 조그만... 엄지를 척!


처음엔 서로 깔깔대며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는데,

내가 먼저 엄지를 척하고 들고 있노라니.. 뭐 낯부끄러움 따위 사라지고- 집에 가서 우리 가족들을 먹여야 한다는 의지로,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엄청 사랑하시고 책임지시니 집에 보내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웨얼 두유고-?

드디어 차 한 대가 서더니 빗속으로 창문을 내리며 물었다. 우리는 감격하며 윈체스터 뱅크라고 외쳤다.

차를 타고 나눈 대화는 더욱 영화 같은 이야기였다.


Thank you, thanks a million. We've got missed the last bus to go there and heavy rainy... I'm just praying.
That's why i came back


알고 보니 이 가족은 윈체스터에 살지도 않고, 그저 돌아다니는 중이었는데, 우리를 보고 지나가다 마음에 걸렸는지 가던 길을 되돌아왔던 것이었다.

아..


여행은 언제나 이렇게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생긴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혹은 바람따라 다녀도..

내가 절대로 예측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마구 일어난다. 때로는 유쾌하지만, 때로는 조금 힘들 수도 있는..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난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내 힘을 완전히 빼고 그분께 의지해야 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 


-


집에 돌아와서 황급히 요리를 했다. 고기 부위가 어디인지 몰라 아무 고기나 샀더니 고기가 조금 뻐시긴 했지만 국물까지 맛있게 먹는 가족들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맛있다며 레시피까지 열심히 받아 적는 어머니의 소녀 같은 어머니에게 마요네즈를 소스로 활용하는 한나's 레시피를 전해드리고 왔다. 이렇게 우리 어머니들은 단 한 끼만이라도 누가 해준 음식으로 쉬는 것이 정말 큰 선물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도 광주에 내려가면 단 며칠 있는 것이라, 어머니도 본인이 직접 한 음식을 내게 주고 싶어 하시고- 나도  그런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아 나는 소파에 기생하는 밥충이가 되지만,

이제 집에 내려갈 때 꼭 한 끼는 모두를 쉬게 해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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