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책리뷰. 셋 / 미래, 경제 클라우스슈밥


누구를 위한 혁명으로


#Prologue

황금연휴의 시작을 사랑스러운 조카들과 함께 보내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상어와 악어떼를 그리느라 진을 빼서 인지 아니면 안 하던 운동을 과하게 해서 몸이 놀란 것인지 (언니를 따라 Gym에 가서 다이어트 댄스를 불살랐더랬다.) 이것저것 핑계 댈 필요도 없이 정직한 몸이 그저 쉬게 해달란 대대적 폭동을 일으켜서인지 근 3일간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그 와중에 또 광주 집이 아닌 산과 들 속에 쌓인 장흥 시골집에서..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느끼자마자 언제 파업할지 모르는 몸을 달래며 노트북을 들고 집을 나섰다. 오늘 연 카페가 있으려나-



# 5차 산업혁명이 와도 없어지지 않을 것-

조금 길을 헤매다 결국 집 앞에 새로 생긴 깔끔한 분위기의 카페에 들어서서 홀로 앉아 플랫화이트를 시키니 라즈베리맛 마카롱까지 따라왔다. 왠지 주인 분 작업실에 찾아든 손님 마냥 앉아 호사를 누린다.


온라인 네트워크가 발전하여 추석에도 나와 내 친구들의 카톡방은 전국 방방 곳곳에 흩어져서도 온라인 마피아 게임을 하며 피를 나눈 형제 이상의 우애를 보여주다. 그러나 아무리 온라인상에 모든 사물이 등록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완연히 도래한다더라도 이 카페라는 것만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 아고라에서 사람들이 모였듯 이제 한국 사회에서 이 Cafe라는 공간은 내 공간의 부재 속에 살아가는 개인들이 적당한 사용료를 내고 쾌적한 공간을 얻는 공간 소비의 주축이 되었다. 혹여 혼자 컴퓨터나 책을 보며 있더라도 백색 소음이란 것이 적절히 외롭지 않게 하는 이야기 소리가 되어주며 이에 더해 날 위해 내려지는 커피 향이란- 시각/청각/후각/미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최고의 공간인 것이다. 오늘은 본격적인 책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서두가 길어졌다. 조금



#꼭 일어나야만 하는가


많은 것을 나열하고 있기에 또한 많은 것을 하나하나 곱씹게 한 이 책을 읽고 난 생각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막막했다. 결국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다분히 직업정신에 입각한 생각의 부분만이라도 정리해보기로 했다.


책은 우리가 지나온 산업혁명들을 소개하며 지금의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역사적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증기기관의 1차 산업혁명, 전기의 2차 산업혁명, 인터넷의 3차 산업혁명을 지나 물리학-디지털-생물학 모든 것에서 메가트렌드를 가져오는 4차 산업혁명의 길을 걷고 있다. 이미 왔으나, 아직 오지 않은 그- 혁명이다. 이러한 혁명들은 거듭하며 사회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인간들은 저 혁명의 순서를 응당 거쳐할 것으로 여기며 반대로 거치지 않은 것을 열악하고 조악하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일종의 책무성 혹은 도덕성을 가지고 앞선 혁명의 시기에 있는 이들은 그 이전 단계의 혁명의 세계에 손을 뻗치며 신문물을 전파하였다. 그것이 결국 원조가 가지는 부정할 수 없는 ‘성질’이 되었다.


인터넷을 쓰는 나라에서는 전기가 없는 나라에 전기를 배급하고 VR을 쓰는 나라에서는 인터넷이 없는 나라에 컴퓨터를 놓고 인터넷 사용법을 가르쳐 정보 접근성을 높이려고 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법을 알려주자는 논지가 전 세계 원조 흐름을 휘어잡았고, 빈곤국의 진정한 자립을 꾀하며 너도나도 기술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전파한 기술이란 것이 결국 위에서 말한 그다음 혁명으로의 준비물들이었다.

과연 꼭 그래야만 했을까?
진정한 자립은 어째서 모두가 같은 사회의 모습이 되어야만 이루어지는 것일까?
물고기는 왜 빌딩 숲에서만, 원자력 발전소에서만 잡아야 했을까?


국제기구들과 소위 말하는 선진국, 여러 NGO단체들이 입을 모아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자립이라지만 그 자립의 모습에는 이미 그들이 맞다고 생각하는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을 아닐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것이 맞는지는 더더욱 의구심이 간다. 어쩌면 '혁명'이 꼭 모든 사회에 필연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을지 모른다. 세계화의 흐름과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이 이 지구에 더 큰 다양성을 가져온다고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보는 것은 그 반대이다. 다분히 강압성을 지닌 획일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큰 획일화 속에서 ‘소소한 다양화’를 누리며 그저 만족할 뿐 아닌가.



#피할 수 없다면


필연적이었을 그 혁명 속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가고 있을까. 3D 프린팅을 통해 인간은 필요한 많은 것들을 직접 제작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 여기서 직접이란 결국 공급자와 소비자가 일체화되감을 의미하는 것인데, 한 개인이 공급자이자 소비자인 프로슈머가 되는 것이다. 또한 여러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질병과 수명에 대한 변혁이 일어날 것이며,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은 교육 불평등과 정보 접근의 불평등을 해소하여 세계 곳곳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도 한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놀라운 생산량의 증가는 인간을 노동을 통한 생산 주체에서는 한 발짝 빼게 하여 소비하는 인간으로만 존재하게 하는 새로운 흐름을 부여할지도 모른다. 노동을 신성시해왔던 인간은 더 이상 노동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는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될 수 도 있는 것이다. 노동 자체에 대한 패러다임, 공급과 소비에 대한 패러다임에서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이 책에서 2025년 안에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한 티핑포인트들 중 몇몇은 다소 늦어지더라도 결국 우리에게 올 것이다. 우려 가득한 말들만 쏟아놓았지만 실제로 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가져오는 유익들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어차피 막지 못할 일 속에서 뾰로통하여 있어 뭐하겠나. 오히려 큰 파도를 맞이하기 위해 열심히 서핑 보드를 갈고닦으며 파도를 탈 훈련을 하는 것이 반드시 올 파도에 현명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파도에 무턱대고 휩쓸리지 않으려면-


그러나 인간이 생명을 마음껏 창조하고 중단하고 연장하고 되살릴 수 있기까지 한 이 엄청난 파도 앞에서, 개인이 기술만 있다면 한 국가를 해킹할 수도 수백만의 몸속에 심긴 칩을 조작할 수도 드론에 어떤 약과 무기를 실어 나를 수도 있는 아찔한 혁명 앞에 인간은 그것을 Control 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체계를 갖추었을까. 방향키가 존재하느냐 말이다.


도덕과 윤리의 기준 또한 혁명에 맞추어 변화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이 세상에 절대성을 가진 것이란 것은 없을까. '기준'이 없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오늘도 정리되지 않는 의문들만 머리에 잔뜩 이고 이 책 밖으로 나왔다.

책 밖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것일 뿐.

그것이라도 해서 그 존재를 증명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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