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

책리뷰. 일곱 / 신학, 문학, 철학, 에세이

by 찬란한 기쁨주의자


모든 사막은 샘을 품고 있기에 아름답다고 한다.


작가는 정호승 시인이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에서 인식한 메마름 자체의 사막인 서울과 생텍쥐페리가 '샘'의 존재로 사막의 아름다움을 가치화한 것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그러면서 똑같이 사막을 유랑한다 하더라도 단순히 '사막'을 사는 사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막 속에서 '샘'의 삶을 사는 사람의 삶은 같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샘을 발견하는 순간, 그때까지의 건조한 삶은 윤기를 드러낸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해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 또한 발견하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정호승 시인은

서울에는 바다가 없고

서울에는 동백꽃이 피지 않고

사람들이 이슬에 젖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그의 시와 글 속에선

서울 한강엔 바닷내가 물씬 풍기며 갈매기가 날고

매연 가득한 버스정류장 한가운데로 동백꽃이 피어나며

이른 새벽 부지런히 도 출근하는 사람들 가방 위로 이슬이 젖는다.

그것을 그가 적나라하게 써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을 읽는 내 마음이 그러해진다.

결국 정호승 시인은 내게 사막에 살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모래언덕 밖에 없는 곳에서 샘을 노래하며 그 노래를 듣는 이로 하여금 샘을 보고 느끼게 하는 이다.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시인처럼 사막 속에서도 샘을 보아 목청껏 노래하는. 나만 홀짝홀짝 마시며 음미하는 것이 아니고, 한 모금 시원히 마시고 괄괄하게 친구 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샘'의 삶을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사막 속에 발을 디디고 서있음에도 어딘가에 샘이 있음을 굳게 믿고, 눈에 보이는 모래 언덕이 주는 '두려움'이 아니라 그 샘에 '가치'를 두고 끝끝내 샘을 찾아내는 인고와 도전의 삶일 것이다. 또한 이에 더하여 중요한 역할 한 가지는 그 샘의 물을 맛보아 얻은 생명력을 가지고 그 환희와 그 목마르지 않는 생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는 구도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끊임없이 부는 거센 바람과 급변하는 모래언덕 사이에 그 길을 따라올 수 있게 하는 발자국이나 어떠한 흔적을 남기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버선발로 뛰어가 마중이라도 나가야 할 것이며, 그 자리에서 목놓아 소리로 외칠 수도, 하늘로 폭죽을 쏘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역할이 분명히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구더기 떼가 들끓는 장독에 푸른 강낭콩 잎을 넣으라고 말해줄 수 있는 노파가 되어야 하며, 누군가는 우리와의 '만남' 속에서 '생명'을 얻었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냄새'가 아닌 '향기'를 전할 수 있는 사람. 즉 사막 속에서도 샘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고, 그것에 가치를 두게 하며 심지어 함께 찾아 나서 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 처절하고도 외로운 외침은 심지어 자신이 찾아놓은 샘으로 되돌아 가는 길을 잃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구도자의 사명으로 뒤이어 올 이를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잃더라도 이미 그 물을 맛보아 생명을 알게 된 이는 분명히 또다시 사막 속에서도 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간절히 그러한 사람이 되어 그러한 삶을 살고 싶다고 진심으로 고백한다.

그것은 내가 그 샘을 <소유>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나 또한 그저 매일 나를 이끌어줄 구도자가 내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고 기대고 싶어 하는 객일 뿐이다.

단지, 그 샘이 있다는 것을 간절히 믿으며 시시 때때로 잊기도 하지만 결국 내 인생을 바꾼 '만남'으로 인해 그 샘의 생명력을 얻어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해 노래하는 이일뿐. 잘하지도 못하는 이 노래를. 언제나 부르고 싶을 뿐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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