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여덟 / 인문,사회,철학
#책 속에서.
피로사회에서는 부정성의 규율 사회에서는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 다면, 긍정 과잉의 성과사회에서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낳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긍정성의 폭력은 박탈하기보다 포화시키며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시키는 것이고 인간은 자기를 착취할 때 가장 효율적 착취를 할 수 있는데,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인간이 되어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계속적인 자기 착취를 이어간다........
책 제목처럼 참으로 피곤한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이 피로한 단어들을 이해하느라 자기 착취를 하고 있던 나는 72페이지에 가서야 잠시 책을 덮었다. 덮을 수밖에 없는 내용이 있었다.
신은 창조를 마친 뒤 일곱째 날을 신성한 날로 선포했다. 그러니까 신성한 것은 목적 지향적 행위의 날이 아니라 무위의 날, 쓸모없는 것의 쓸모가 생겨나는 날인 것이다.
한트케는 이러한 막간의 시간을 평화의 시간으로 묘사한다. 피로는 무장을 해제하고 피로한 자의 길고 느린 시선은 단호함이 아닌 태평함에 머물게 된다고 한다. 결국 '피로'는 우리 삶의 균형과 유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그날 어려운 단어들을 이해하기 위해 세워놓았던 긴장의 피로를 무장 해제하고 태평히 자버렸다. 다음 날 생각하기로 하며....
#나에게는.
다음날, 다시 단호함을 장착하고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인간은 늘 무엇인가 한다. 그리고 그 행위를 통해 생산하며 그 생산물을 통해 만족감을 얻는다. '쓸모'있는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쓸모'있는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다소 생산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일을 할 때에는 나도 모르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나는 지극히 규율적이고 통제적인 사람이었다. 지독히도 '쓸모'란 놈을 따지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놀고 쉬는 것조차 철저한 시간관리 속 '쓸모'의 행위였다. 그렇게 24시간을 48시간처럼 쓰며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인'이나, 나는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현재에 주어진 학교 공부를 충실히 하면서 내게 맡겨진 영혼들을 돌보고 스스로를 훈련시키며 더 나아가 울타리 밖에 나가서도 진짜 실력에 기반한 설득력을 갖출 준비들을 해야 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는 않았으나 현재의 누군가를 사랑함에도, 미래의 누군가를 더 잘 사랑할 준비들에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
이런 나의 삶의 방식이 크게 바뀐 것은 반년 간 캄보디아에서 살면서이다. 현지 아이들과 한마디라도 더 하며 친해지기 위해 마을로 들어가는 뚝뚝이 안에서도 열심히 단어를 외우던 나를 무능하게 한 것은 바로 '비'였다. 아무리 마을에 가고 싶어도 비가 많이 오면 일을 하러 오지 않아도 된다며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혹은 열심히 곡괭이로 땅을 파다가도 비가 오면 너나 할 것 없이 평상에 누워 수다만 떨었다. 다 설명하지 못할 여러 일들이 있지만, 내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냥 그렇게도 산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삶의 모습들이 서울에서의 치열한 그 누구보다 결코 덜 가치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냥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사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자기통제의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사명이란 포장지를 살포시 덮어놓은 나를 너무도 잘 아셨기에 절대적으로 항복할 수밖에 없는 자연을 쓰시고 그렇게 그 이후로 자연은 내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가장 큰 통로가 되었기도 하였다.
그렇게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공강 시간이면 그냥 학교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하고, 큰 벚꽃나무 아래서 벌의 위협을 받으며 책을 읽기도 하고, 시험기간에도 점심 먹고 한두 시간 호수 길을 걸으며 산책을 했다. 공부도 사역도 관계도 좀 덜 잘해도 괜찮다고 여기게 되었고, 실제로 그랬어도 어딘가 조급하지 않았다. 물론, 무엇을 하든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나라는 사람이므로 여전히 참 열심히도 살고 있고, 나에게는 그것이 내 자유로 선택한 기쁨의 삶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쉰다는 것의 기준이 다르니까. 그렇지만 무엇을 조금 달라진 것은 정말 그 무엇도 '하지 않아도' 이제는 조급하지 않고 평안하다는 것. 딴짓도 꽤나할정도로 바뀐 것 같다.
요즘은 이분야(?)의 2차 성장을 겪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놀라운 선물처럼 알고 가까워진 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근 10년간 잘 보지 못했던 내 모습을 보는 중이다. 노느라(이야기하느라) 자. 발. 적.으로 집에 안 들어가고 밤을 새우다니.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물론 다음날 안 졸고 열심히 일도 끝냈다.) 버스 끊키고 까지 밖에 있다니!!!! 친구들이 알면 놀라다 못해 서운해할 판이다. 그만큼 나는 내 삶에 빈 공간을 늘리며 그 빈 공간에 사람들이 더더욱 쉽게 오게 하는 중이다. 그리고 밤늦게 남의 여백의 방에도 잘 침범하고.
#다시 한번의 생각.
그런데, 어제 누군가와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부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던 계기가 있었다. 그는 자기 인생에 가장 중요한 선택 2가지 중 하나를 나를 만난 것이라는 놀라운 말을 하며, 자신과 너무 다른 나의 치열한 삶을 보고 나와 깊은 교제를 하며 비전에 대한 많은 도전을 받았다고 한다. 그 말을 집에 오는 길에 곱씹어보니, 첫 생각에는 내게서 그가 보았던 그때만큼의 열정이 아직도 살아있는 가에 대한 점검이자 반성을 했고 그리고 이어진 생각에는 그와 깊게 교류하지 않았던 시간 동안 조금 달라진 나의 삶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동향 파악이 안 된다며 안 그래도 걱정 근심 많아 보이는 그 얼굴상이 더 쳐지기 전에. 그래서 이 피로사회에 대한 독후감을 빌어 그에게 조금 긴 이야기를 전하련다. 당신이 피로해하지 않고 잘 읽길 바라며.
#요즘 열 일하는 당신의 스톱워치에게.
나에게나 어울릴 것 같았던 네가 내 집만큼이나 시골인 그곳에 가서 째깍거릴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애처롭다. 그 집 총각김치가 참 맛있는데, 네가 그걸 알 여유가 있나 모르겠네. 열 일하느라 바빠서.
듣자 하니, 네 주인이 요즘 널 꽤나 애정하고 있다고 들었어. 무엇을 하던, 심지어 그 파트별로 세심히도 분류하여 시간을 잰다더라고. 꾸욱-꾸욱- 그 투박한 손이 널 괴롭히고 있겠네. 내가 직접 말하긴 요즘 별로 안 친해서- 좀 뭐 하니까, 네가 나 대신 잘 이야기 좀 전해줘. Got it? Listen up.
당신의 현재의 그 치열함이-
사실 이미 못지않게 치열했다고 칭찬할 수 있는 대학생활보다 어쩌면 더 외로이 치열한 지금의 이 시간들이-
당신에게는 '여백'을 만들고 있는 시간인 것 같아요. 아주 치열하게 말이죠.
쓸모 위주의 사회에서 우리에게 여백이 있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사회적 알람은 그걸 갖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게 좀 생길라치면 여지없이 울려대죠. 그런데 사실 지금 '여백'을 가지고 있어 보이는 사람들은 말이에요, 그 '여백'을 만들어 내기 위해 치열히 싸워왔고 또 싸우고 있어요. 여전히.
그 치열함이란 대단히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것이죠.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이면 충분하다는 그 본질적 충만함의 매일이고,
그러면서도 나의 여백으로 나그네를 초대해 쉬게 할 수 있는 마음과 물질의 여유이며,
이웃의 목소리를 내어줄 수 있는 실제적 실력과 힘이에요.
그리고 그 여백은 결국 내가 마음껏 숨쉴 공간이기도 하죠.
그러니, 지금 당신이 치열히 만들고 있는 그 여백은 일단 한 두 사람 정도가 들어갈 자리가 확보되고 나면, 나름 또 그 공간 지붕이 단단해져서 한동안은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알잖아요, 그 여백이 더 깊고 넓어지기 위해서는 여러 훈련과 성숙의 단계들도 필요하고-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도 남아 있을 매일의 충만한 사랑도 필요한 것을. 양자택일이 아니고, 동시적이면서도 점진적이죠.
피로한 자는 또 다른 오르페우스로서 가장 사나운 동물조차 그의 주위에 모여들어 마침내 피로를 나눌 수 있게 된다. 피로는 흩어져 있는 개개인을 하나의 박자 속에 어울리게 한다.
내가 여백의 방 문을 조금 닫았을 때, 그 방 문고리를 참 귀신같이도 찾아내 놀러와 나를 참 귀하게 여겨주었던 당신에게 내가 지금 드리는 말은 이거예요. 당신이 잊지 않길 바래요. 당신의 지금 이 피로가 결국 당신의 '여백'속에 가장 사나운 짐승조차 와서 쉴 수 있게 할 거라는 걸요. 그러니, 부디 당신의 여백을 만들어 내는 것이 매일의 사랑이자 그 사랑을 비롯한 치열함이길 바랄게요. 그러나, 적당한 피로의 신호는 필요하단 것을 늘 알고 있으면 좋겠네요. 안그래도 처진 그 눈이 더 처지면 어쩌나.
나는 사실 알아요, 당신이 아주 잘 해낼 것이라는 걸. 아마 지금의 내 여백 방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클 것 같네요. 그러면 그땐 나도 좀 초대해줘요 다시. 이번엔 총각김치 말고, 따뜻한 밀크티나 먹어야겠어. 그럼 그때 이 시를 그놈의-캘리로 써서 선물할게요.
결핍에 대하여.
밤하늘은 자신의 가슴을 별들로 가득 채우지 않는다
별들도 밤하늘에 빛난다고 해서 밤하늘을 다 빛나게 하지 않는다
나무가 봄이 되었다고 나뭇잎을 다 피워 올리는 게 아니듯
새들도 날개를 다 펼쳐 모든 하늘을 다 날아다니는 게 아니다
산에서 급히 내려온 계곡의 물도 계곡을 다 채우면서 강물이 되지 않고
누가 인생의 시간을 가득 다 채우고 유유히 웃으면서 떠나갔는가
어둠이 깊어가도 등불은 밤을 다 밝히지 않고
봄이 와도 꽃은 다 피어나지 않는다
별이 다 빛나지 않음으로써 밤하늘이 아름답듯이
나도 내 사랑이 결핍됨으로써 아름답다
_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