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_오늘도 불안한 당신에게

책리뷰: 아홉 / 인문, 철학_알랭드보통 불안

by 찬란한 기쁨주의자


<책 갈무리>


#사랑결핍

알랭드보통은 언제나 사랑에 관심이 많다. 그의 철학은 언제나 사랑으로 시작한다. 알랭드보통이 이야기하는 이 사회의 불안은 지위와 사랑이라는 단어로 설명된다. 우리가 끊임 없이 불안한 이유는 다른 이들 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은 지위를 얻기 위한 과정인데, 그 지위는 결국 '사랑'을 얻기 위해서 인간이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듯 했다.

자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결정하며, 결과적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는지 결정한다.....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인격을 따라 살 수도 없다_알랭드보통 불안 中


#평등,기대

'지위'라는 것은 결국 상대적 위치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긴 하지만, 아예 상관 없는 사람들을 놓고 비교 하는 것은 아니고, 나름 자신이 비슷하다고 설정한 '준거집단' 속에서 비교가 일어난다. 그 집단 속의 다른이가 키가 조금이라도 더 자라면, 불안, 불만족, 질투심에 빠지게 된다.


#능력주의

사회적 위계에서 낮은 지위를 차지하는 이들에 대한 가치 재정립을 한 사례로 알랭드보통은 예수님의 전도를 이야기 한다. '가난은 사난한 사람들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라는 그의 가르침은 지위의 낮음으로 인해 끊임없이 불안을 겪는 이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었으나 지위가 높은 이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불확실성

우리의 지위의 문제를 우연적 요소들에 맡긴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그러나 합리적 통제라는 관념에 완전히 물들어, '불운'이 실패를 설명하는 그럴듯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관념을 폐기해버린 세상에 산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_알랭드보통 불안 中


#기독교

톨스토이의 삶을 예로 들며 죽음에 대한 사고의 변화가 결국 더 의미 있는 인생의 길의 안내자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지위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서 다른 데로 방향을 트는데 죽을병이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하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수의 가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다.....그럼에도 패자나 이름 없는 사람이라는 잔인한 규정과는 다른 규정을 받을 자격기 있는 사람들이 정당성을 얻는 데 도움이 주었다. 이들 덕분에 우리는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는 하나 이상의 길, 판사나 약사의 길과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와 확신을 얻을 수 있다_알랭드보통 불안 中



<생각>


#우리의 불안.


1.자존감

겨울수련회를 준비하며 청년들에게 원하는 주제를 몇가지 주고 설문지를 받았다. 자존감, 일과영성, 연애와결혼, 독서, 기도 이 다섯가지 중 청년들이 듣고 싶은 선택식 강의 주제 1위는 자존감이었다. 우리의 공통된 관심사는 '나', 자존의 문제이며 그 속에서 끊임 없이 고뇌한다.


알랭드보통이 이야기하는 지위에 대한 기대 그리고 그 지위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사랑은, 인간 '자존'의 문제가 건강히 해결되지 않을 수록 강하게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결국 불안은 불완전한 자존감이 보내오는 신호이지 않을까.


2.자기긍정vs감사

이러한 자존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자기긍정의 마약에 심취하곤 한다. 나의 이런 면이 멋지고 아름답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또한 그것은 대부분 준거집단에 속한 이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인정받기 위한 과정으로 형성된다. 적당히 하면 감기 걸렸을 때 먹는 부루펜 수준이어서 이 팍팍한 광야의 삶 속에서 꽤 괜찮은 약이 되겠지만, 과한 자기긍정은 자기착취로 이어지며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중독이 된다.


그러나, 자기긍정과 ‘감사’에는 차이가 있다. 감사는 자기를 착취하는 '경주'의 행위가 아닌, 주어진 피조세계에서 영혼과 영혼의 대화를 '걷기'처럼 해내며 즐거워하는 '자족'의 삶이 된다. 경주를 할 때는 내가 아무리 잘 달려도 결국 옆사람 페이스에 맞추거나 비교하게 된다. 결과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설정 자체가 경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걸을때 우리는 주위를 둘러 볼 수 있게 된다. 즉, 높낮이-지위의 진보를 성취하기 위해서 발생되는 자기착취적 긍정인지, 높낮이-지위-와 상관없이도 감사할 줄 아냐인지가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양에 큰 영향을 준다.


3.불확실성

인간에게 주어진 결코 바꿀 수 없는 숙명은 '유한성'이다. 보는 것에, 먹는 것에, 키가 크는 것에, 무엇인가를 가지는 것에, 시간을 살아가는 것에..... 모든 면에 유한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은 불확실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한한 우주를 다 알아낼 수 없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


#우리의 불안.


1.자존감

겨울수련회를 준비하며 청년들에게 원하는 주제를몇가지 주고 설문지를 받았다. 자존감, 일과영성, 연애와결혼, 독서, 기도이 다섯가지 중 청년들이 듣고 싶은 선택식 강의 주제 1위는 자존감이었다. 우리의 공통된 관심사는 '나', 자존의문제이며 그 속에서 끊임 없이 고뇌한다.

알랭드보통이 이야기하는 지위에 대한 기대 그리고그 지위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사랑은, 인간 '자존'의 문제가 건강히 해결되지 않을 수록 강하게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결국불안은 불완전한 자존감이 보내오는 신호이지 않을까.


2.자기긍정vs감사

이러한 자존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자기긍정의 마약에 심취하곤 한다. 그것은 대부분 준거집단에 속한 이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인정받기 위한과정으로 형성된다. 적당히 하면 감기 걸렸을 때 먹는 부루펜 수준이어서 이 팍팍한 광야의 삶 속에서꽤 괜찮은 약이 되겠지만, 과한 자기긍정은 자기착취로 이어지며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중독이 된다.

그러나, 자기긍정과‘감사’에는 차이가 있다. 감사는 자기를 착취하는 '경주'의 행위가 아닌, 주어진 피조세계에서 영혼과 영혼의 대화를 '걷기'처럼 해내며 즐거워하는 '자족'의 삶이 된다. 경주를 할 때는 내가 아무리 잘 달려도 결국 옆사람페이스에 맞추거나 비교하게 된다. 결과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설정 자체가 기준이 남에게 있는 경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걸을때 우리는 주위를 둘러 볼 수 있게 된다. 즉, 높낮이-지위의 진보를성취하기 위해서 발생되는 자기착취적 긍정인지, 높낮이-지위-와 상관없이도 감사할 줄 아냐인지가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양에 큰 영향을 준다.


3.불확실성

인간에게 주어진 결코 바꿀 수 없는 숙명은 '유한성'이다. 보는 것에, 먹는 것에, 키가 크는 것에, 무엇인가를가지는 것에, 시간을 살아가는 것에..... 모든 면에 유한할수 밖에 없는 인간은 불확실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무한한 우주를 다 알아낼 수 없다.



#그래서, 나름.


1.

우리에겐 자존감의 회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자존감의 궁국적 근거를 수평적 관계의 소유에 두는 것이 아니고 수직적 관계의 존재에 두어야 한다. 사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면서도 자존감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다.그래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결국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울이 바울이 되기까지 자기들을핍박하고 죽이던 그를 품어내는 공동체의 인내, 보호, 가르침, 인정과 사랑이 있었다. 아나니아와 사도들이 있었다.


2.

우리는 감사와 자족이 필요하다.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진 그 많은 것들보다 없는 단 한가지에 눈과 마음을 둔다.나 또한 가정과 직장과 친구들 사이에서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용케 그 사이 속에서 없는 단 하나의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그것에 집중할 때가 있다.

어느날 아침 문득 묵상을하며 나의 그런 모습을보게되었다. 다 가져도 하나가 없어 외로워 하는 공허한 모습을. 그래서다시 눈을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받은 복을 세어보라는 뻔한 말이 가장 쉬운 답일 때가 있다.


3.

이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소유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결국 우리는 소유에 대한 감사가 아닌존재론적 감사로의 비중이 커졌을때야 비로소 그만큼의 불안을 상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타고난성향들도 있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연습이 필요한 ‘훈련’이다.


4.

그러나, 나는단지 불안을 조금 더 줄일 수 있는 삶의 방법들을 이야기해본 것이지 사실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이 불안에서 완벽히 벗어날려고 발버둥 치다가 지금 보는 꽃과 부는 바람, 혹은 지금 먹는 베이글과 커피향에 완전히 무더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지 않을까.

나를 갉아 먹을 만큼의 불안은 떼어내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게 할 수 있을 정도의 불안을 남겨두는 것이 우리의 바벨탑의 완성을 막는 겸손을 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불안은 그러므로 우리가 절대자에게 본질을 두고 돌아갈 수 밖에 없게하는 장치일도. 인사이드아웃의 슬픔이처럼 이 세상엔 기쁨이로만 돌아가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


<질문>

1.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죽음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남은 수명을 알게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너무 추상적이라면, 2년 7개월만남았다고 생각해보자.)

2. 우리의 자존감은 완벽할 수는 없다. 특히 우리는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는 말과 판단에 대해 불편함과 불안함을 느끼곤 한다. 당신이 가장 듣기 싫은말, 판단의 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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