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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Jan 27. 2018

호이안에 불이 커지면

#다낭 가족여행기. 셋째날

#인생

동남아시아 어디를 가든 하나씩은 있는 것 같은 곳이 자연 동굴 속 불상들이다. 유럽 여행을 다닐 때 나에게 쉼이 되어 주었던 성당들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높고 깊고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인생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꺼내어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슬픔과 기쁨의 인생이 함께 있는 곳은 또한 신비로워지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손오공의 수련장소(?) 였다는 이곳은 지옥, 연옥, 천국으로 구성되어있었다. 들어가면 평지에 인생을 심판받는 연옥이 있고, 심판의 저울이 놓여있었다. 종종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은 나쁜 소식들을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불확실성의 시간을 사는 인간이, 자신의 죽음의 때와 그리고 죽음 이후의 모습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또 그것을 그대로 믿는다면, 우리의 삶이 조금은 달라질까? 최근 본 신과 함께 영화에서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비하여 심판을 받게 된다. 새치 혀를 잘못 놀렸다면 혀가 뽑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배신했다면, 거울 속에 들어가 산산이 깨지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한 행동들의 결과를 우리가 다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세상이 달라질까. 잘은 모르겠다.


지옥 그리고 천국

지옥으로 내려가는 길은 쉬웠다. 내려가는 것은 언제나 쉽다.


천국으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고 쉽지 않았다. 워낙 미끄러워서 한걸음 한걸음이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경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내렴감이 쉽지만 가도 가도 어둡고 무서운 것들 뿐이었던 지옥과 달리, 천국에는 머리 위로 빛이 분명히 보였다. 그리고 그 확실한 빛이 보이니 조심조심 오를 수 있었다.

그러니 '은혜'가 놀라운 것 아닐까. 그 시간과 공간의 길들을 걸어야 하는 것이 우리긴 하지만 빛은 그 길에 발을 디딘 모든 이에게 조건 없이 비치고 있었고 한발 한발 내딛을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했으며, 몸과 마음을 녹여주었다. 함께 가는 이가 있구나, 혼자가 아니구나 알게끔 볼 수 있도록 해 준 것도 빛이었다.


#로맨스

우리 팀에 함께 있던 사람들 중 젊은 부부가 있었다. 투닥투닥 거리는 듯하면서도 언제나 커플티를 입던 이들은 비가 오니 미끄러질까 서로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지. 비가 오면 미끄러우니까 그냥 서로 손을 잡아주면 된다. 각자 우산을 쓰는 것이 안전할 수도 있겠지만, 우산을 접어버리고 때론 비옷과 삿갓을 쓴 채 내민 손을 잡는 것이 더 안전할 때가 있지 않을까. 인생에 이 정도 로맨스는 있어야지.

베트남 여행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또다시 광주리이다. 광주리 배를 태워주는 이들은 그 위에서 트로트를 틀고 노래를 부르며 춤도 춘다. 가장 베트남스러운 장면에 울려 퍼지는 한국 트로트가 굉장한 이질감과 불편함을 주다가도, 그 노래를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 듯한 사공의 표정과 춤사위에 괜한 삿대질이 멈춘다. 알록달록 오색찬란한 저 광주리 위의 삶. 무엇이 실렸을까. 실려왔을까.


#멀리 와서도 소소한 것

고양이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할 일(그루밍)을 하는 녀석이 매력적이다. 요즘 한국은 반려동물 열풍이다. 개, 고양이, 토끼부터 시작해서 반려식물까지-. 나 또한 동물들을 참 좋아하기 때문에 종종 랜선 집사가 되곤 한다. 사람의 빈자리에 동물이 그리고, 그 동물의 실체가 빈자리에 SNS 속 동물이 들어왔다.  


우린 우리의 반려동물들에게 큰 위로를 받기도 하고 또 부러워하기도 하는 것 같다. 사람이 못하는 일을 이들은 한다고 느낀다. 아무도 반겨 주지 않는 쓸쓸한 원룸 자취방 문을 열면 매일 처음 본 것인 양 꼬리를 흔드는 댕댕에게도, 내가 그에게 무엇을 해주든 간에 내 사랑을 갈구하지 않고도 잘만 지내 보이는 냥이도 우리보다 낫다 여기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되고 싶은 것 아닐까.


물빛 가득한 달맞이꽃이다. 휘황찬란한 도자기 용 조각상보다 이 녀석에게 마음이 갔다. 호이안의 달을 맞는 이 녀석은 참 노랗기도 하다.


골목을 지나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한쪽 길에서 다른 길로 이어지는 그 통로가 참 매력적이다. 이쪽 길을 지나면 저쪽 길이 나오는데, 서로 겹치지 않았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이어준다. 인생을 이어준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판매대를 사이에서도 골목만은 조용했다. 그 바쁜 공기가 매워지지 않은, 유일한 나의 안식처였다.


슬슬 불이 켜졌다. 비가 젖은 강 둑이 어둑어둑해지며 하나 둘 불이 들어오는 길이 참 좋았다.


길을 걷는다. 조금 삐딱하게 본다. 멈춰 서서 본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어디서 왔을까. 조금 더 사람이 없을 때 왔었더라면... 싶다가도, 거리의 한 부분을 차지한 나를 보고 또 누군가 그런 생각을 하겠다 싶으니, 결국 사람 맘 다 같지-하고 만다.


이곳 저곳 다니다 보면 한 장면 한 장면이 새롭기도 하고 또 그 속에 사람 사는 게 결국 거기서 거기지 싶다가도, 아직도 더 보고 더 만나고 싶어 진다. 나는 사람이 참 좋다. 그래서 그 인생들이 사는 게 참 하나하나 신나고 귀하고 좋다, 궁금하다.


여전히 빛 밝은 화려함을 뒤로하고 호이안을, 다낭을 정리했다.

언제부터 화려했을까 조금은 고즈넉했을 이곳이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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