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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Sep 30. 2021

장소성, 기억의 집적과 애착

19-1012


기억-집적-애착-장소성



건축과 관련된 책이나 잡지, 기사를 읽다 보면 심심치 않게 '장소성'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게 된다. 장소에 머금은 기억을 매개로 다시 그 장소를 재-기억하게 하는 추상적인 단어에 금방 매료되었고 어떻게 보면 장소성은 건축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장소성에 대해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장소성이란, 어느 장소에 개인의 추억이 쌓이기 시작했을 때, 때로는 집단의 기억이 함축되었을 때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집이라는 장소에서 온 가족이 모여 있던 거실의 훈훈함이나 늘 집에서 나던 공기의 냄새, 그리고 집 밖에서 들리던 익숙한 소리들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장소성, SPACENESS


그렇다면 장소성은 어떻게 획득될 것인가,

우리 동네에는 하얀 모래가 가득한 놀이터가 있었다. (장소)

장소에서 친구들과 한바탕 놀이를 하고 나면 현관에서 툭툭 턴 신발에서 모래가 쏟아졌다. (기억)

장소는 항상 우리의 약속 장소가 되었고 놀이공간이 되었으며 비밀기지가 되었다. (집적)

어느새 장소는 나의 추억으로 가득했고 그 장소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애착)

그렇게 그 놀이터는 기억의 파편으로서 나에게 남았고 이는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장소성)


어느 장소에서 꾸준한 기억의 집적이 장소에 애착을 만들고 그로 인해 평범했던 그 장소는 장소성을 획득한다.(기억의 집적/장소에 대한 애착/장소성)


하나의 장소에서 시작하는 건축이 장소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기억-집적-애착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풀어서 말하면 기능과 공간에 대한 공간사용자의 내적 경험을 이끌어내고 그로 인한 기억이 형성되어야 하며 단발적인 공간 사용이 아닌 공간을 향한 지속적인 발걸음을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기억의 집적을 통해서 공간사용자로 하여금 장소에 대한 애착심을 형성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건축이 '집적'의 과정을 겪게 하진 않는다. 예를 들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는 숙박시설을 상상해보면 이는 기능 사용의 빈도가 적기 때문에 공간사용자로 하여금 지속적인 발걸음을 유도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러한 건축과 기능에서는 장소의 기억이 집적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장소-애착이 형성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론적인 접근은 아직 해보지 않았지만 기능과 공간의 분위기, 자연과의 관계, 이로 인한 특수한 내적 경험의 창출을 통해 집적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그 장소는 공간사용자에게 높은 질의 경험과 기억을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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