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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Sep 30. 2021

죽음, 삶과의 거리감

19-1010

삶과 죽음의 완벽한 대립성

항상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왔다. 잠들기 전, 나를 가장 괴롭히는 생각 중 하나이다. 이를 글로 쓰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삶이라는 범주 안에서 죽음은 항상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죽음을 마주하는 추모시설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조그마한 씨앗이 된다.


하지만 현재의 추모시설은 어떠한가, 도심 속의 사람들은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기억하는, 그리고 그리워하는 시설을 기피한다. 그것들이 지니는 분위기 때문일 수도, 환경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어쩌면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바라보기 힘든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네 삶에서 죽음은 저만치 떨어져 있다.


소음-지배적인 도시에서 침묵-지배적인 추모시설로의 물리적인 거리감, 그리고 현재의 삶에서 과거를 기억하는 장소로의 급격한 전환은 현재의 추모시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물리적인 거리감과 중간적인 영역 없이 전환되는 공간적 성격 때문일까, 추모의 시설은 위치적으로 고립되어 있거나 완벽하게 통제되고, 또한 폐쇄적인 공간 구성을 보인다.


도시의 일부분으로서 작용하는 San Cataldo Cemetery (Aldo Rossi)


나는 새로운 도시를 상상한다. 추모의 시설이 외딴곳에 고립되어 침묵만이 장소를 떠다니는 것이 아닌, 도시의 곁에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도 있으며, 몇 발짝 뒤에서 흐느끼는 어깨를 보며 치열하게 살아온 개인의 과거를 성찰하는 사람도 있는, 그러한 시설을 상상한다.


도시와 추모시설 간의 새로운 관계 속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소음-지배적인 도시(침묵이 자리 잡기 힘든 도시)에서 침묵-지배적인 시설로의 급격한 변화가 아닌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지향한다. 완벽하게 통제되고 폐쇄적인 공간이 아닌, 그 너머에 중간적인 성격을 가지는 공간이 존재한다. 소음-지배적인 도시에서 도시적 성격을 지니는 공적인 공간과 추모의 성격을 가지는 정적인 공간이 단계적으로 배치되고 이것들을 지나친 후에 침묵-지배적인 시설에 당도한다. 단계적인 공간 구성이 진행됨과 동시에 도시민들이 자유롭게 활용 가능한 도시-여백(가능성 공간)을 삽입하고 그로 인해 추모의 시설이 가지는 초월적인 성격이 순차적으로 도시에 유입되는 상상을 한다.


지금까지 삶과 죽음이 완벽한 대립성을 띄었다면 이제는 그 경계가 느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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